벽송사(碧松寺)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지리산 칠선계곡(七仙溪谷)에 있는 절.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하여 사적기(事蹟記)가 없어 창건연대 및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조선 중종 15년에 지엄대사가 암자를 짓고 벽송사로 개창, 숙종 때 그리고 한국전쟁 때 차례로 소실된 것을 1963년 원응스님이 다시 짓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다만, 현 위치에서 50m 위의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 절의 창건 역시 신라 말 내지 고려 초로 보고 있다.
1520년(중종 15)에는 벽송(碧松)이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으며, 6·25 때 소실된 뒤 곧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전(普光殿)을 중앙으로 좌우에 방장선원(方丈禪院)과 간월루(看月樓)가 있으며, 전면에는 산문(山門)과 종루를 배치하였고, 후면에는 산신각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4호인 벽송사삼층석탑 1기가 있다.
그리고 도인송과 미인송으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다. 벽송사의 어느 위치에서도 보이는, 가장 강력한 시각물이다.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해지고 한 가지 소원을 이룬다 하고,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고 한다.
벽송사는 한국 전쟁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 한다. 그러다 토벌대와의 교전을 거치며 전소, 전멸되었는데, 지금도 절터 주변을 일구면 간혹 인골이 발견된다고 한다. 벽송사 주변은 그런 곳이다. 모두 죽은 곳, 무덤 없는 묘지.
전래되는 설화로는 승려 서룡(瑞龍)의 이야기가 있다. 만년에 이 절에 머물렀던 서룡은 1890년(고종 27) 12월 27일에 문도를 불러서 입적할 것을 고하였으나, 제자들은 그믐의 바쁜 일이 끝나거든 입적할 것을 청하였다. 정월 초이튿날 다시 입적하려고 하자 제자들은 불공하러 오는 신도들이 많다는 이유로 다시 며칠을 미루도록 하였다. 4일에는 “이제 가도 되겠느냐?”고 물은 뒤 제자들을 불러 “불법을 닦을 때 생사를 해탈하려면, 먼저 생사가 없는 이치를 알아야 하고(知無生死), 둘째 생사가 없는 이치를 증득하여야 하며(證無生死), 셋째 생사가 없는 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用無生死).”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