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계승사(桂承寺)
태고의 신비로움과 암벽의 경이한 모습을 품고 있는 공룡의 나라 고성 고성군 영현면 금태산 기슭에 자리한 계승사는 시간의 흔적만큼이나 계승사 바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억년 전 이 곳이 공룡들의 땅이라고 증명하듯 초대형 공룡발자국을 남겨두었다. 또 거대 암반 위에는 파도가 밀려가면서 모래사장에 만들어내듯 한 물결무늬 화석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승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은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가 하면, 태고의 빗방울이 남긴 자국에 까지, 그야말로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품이 따로 없다.
용두봉에서 발원하여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는 석간수는 그 옛날 매일 부처님의 공양미로 올릴 석 되 두 홉의 공양미가 쏟아졌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맑고 청정하다.
그래서 계승사는 절벽 틈에서 솟아나고 있는 석간수로도 그 명성이 높다. 절 뒤에 있는 산봉우리가 용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두봉이라 부르기도 하고 독수리 머리를 닮았다 하여 취산봉이라고도 했다.
또는 호랑이 머리를 닮았다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석간수가 발원되어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다고 했다. 석간수가 나오던 구멍에서 옛날에는 매일 3되2홉의 공양미가 쏟아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욕심 많은 시봉행자가 더 많은 공양미를 받기 위해 구멍을 키웠더니 공양미가 약수로 변해 버렸다고 했다. 무모하고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석간수는 피부병을 비롯해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타전 곁에는 1977년 9월 18일 새벽 3시 45분 뒷산 상봉 소나무 밑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커다란 바윗돌 ‘하심석’이 있다. 그 후 하심해 정진을 했다는 주지스님의 안내문 옆에는 절터에서 발굴했다는 반질반질하게 닳아빠진 오래된 맷돌들이 겨울에도 진한 녹색을 발하는 부처손 사이에 쌓여 있다.
화석들과 하심석을 뒤로하고 돌계단을 따라 약사전에 올라서 아득하게 펼쳐진 첩첩 산줄기들이 펼치는 풍경은 아름답다. 사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와룡산(799m) 봉우리까지 한눈에 잡힌다.
또 금태산 계승사에서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삼남도를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수행하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웠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의 수행한 산의 이름에 ‘금’자를 붙여 하명했는데, 바로 고성의 금태산(金太山)과 남해의 금산(錦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조용히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신라 천년 고찰 계승사는 천연자연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그 호젓함을 더해주고 있다. 번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조용한 여유를 찾고 싶다면 바위 위 계승사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와 풍경소리가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계승사 백악기 퇴적구조(桂承寺 白堊紀 堆積構造)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으로, 고성군 영현면 금태산 계승사 경내에 있다. 보호면적은 8,046㎡(6필지)이다.
절 입구 왼쪽 요사체 앞 너른 암반에는 연흔(漣痕: 물결자국)이 있다. 이곳의 연흔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가로 13.5m, 세로 7m 정도 되며 보존 상태도 우수하다.
또 옛 대웅전 뒤쪽에는 우흔(雨痕: 빗방울 자국)이 남아 있는데 그 무늬가 너무나 선명하여 마치 금방 생긴 자국처럼 또렷하다. 물결의 파장과 파고는 각각 4mm 정도이다.
그 뒤쪽 약 50㎡ 정도 되는 암반에는 공룡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용각류(네 다리로 걷는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7개 있는데 각 발자국의 평균 크기는 각각 67㎝, 90㎝ 정도이다.
그밖에 이 지역에는 퇴적구조 층리와 수각류(두 발로 걷는 육식공룡)로 추정되는 공룡발자국 화석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 고환경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곳의 암석과 암벽은 모두 백악기의 퇴적구조로, 퇴적층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2006년 12월 5일 천연기념물 제47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