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충북 제천시 덕주사의 마애불과 충주 미륵사(세계사)의 미륵불에는 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德主公主)와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의 이야기가 간직되어 있다.
이에 관해 제천의 덕주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덕주사는 왕건이 신라를 합병하면서 경순왕의 첫째 공주 덕주공주를 감금했던 곳이라 한다. 왕건은 이곳에 덕주공주를 감금하고 세 겹으로 성을 쌓았으며 이곳에 이만여 명의 병사를 주둔시켰다고 하는데 지금의 마방골이 말과 군사들이 주둔을 하였던 곳이라 한다.
또한 왕건은 마의태자를 충주의 미륵사에 감금을 했다. 이렇게 떨어져 살게 된 남매는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두 남매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혈육의 정으로 덕주공주는 남쪽에 있는 동생의 모습을 그리며 남향으로 마애불을 조각했고 마의태자는 북쪽에 있는 누이의 모습을 그리며 북향으로 미륵불을 조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륵사지 앞에는 커다란 석탑이 있는데 마의태자가 이곳에 머물던 옛날에는 이 탑 정상(頂上)에 보주(寶珠)를 옥(玉)으로 만들어서 올려놓았다고 한다. 이 미륵사지의 석탑에 있는 보주가 빛을 발하여 해가 뜰 무렵에는 북쪽에 있는 덕주사 마애불상의 머리를 비춰주고, 해가 질 무렵에는 마애불로부터 빛이 나와서 미륵사지 석탑의 보주를 향해서 비쳤다고 한다. 이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 보면서 조석으로 빛을 발하며 서로 이야기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충주의 미륵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조금 차이가 있다. 신라가 고려에 병합된 후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망국의 한을 풀고 권토중래(捲土重來)하기 위하여 병사를 양성할 장소를 오대산(五臺山)으로 정하고 길을 떠났다. 마의태자 일행은 문경을 지나 계속 북상하다가 산간 협곡에 자리 잡은 계곡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일행이 야영을 마련하고 한밤중이 되자 마의태자는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 그날 밤 꿈에 마의태자는 관음보살을 만났다. 관음보살은
“이 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서 서천에 이르는 한터[大垈]가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건조하도록 하라. 또한 그 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이르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마의태자는 꿈이 하도 신기해서 덕주공주를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에 덕주공주의 꿈에도 관음보살이 나타나 그와 같은 말을 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두 남매는 곧 맑은 계곡 물에 목욕제계를 하고 서천을 향해 합장배례를 하여 관음보살의 현몽에 감사를 드렸다. 다음날 새벽 마의태자 일행이 서쪽을 향해 고개를 한터에 이르러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파란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을 확인 한 후 그 자리에 석불입상을 세우고 마주보는 영봉 밑에 마애불상을 조각했다.
마의태자 일행은 이곳에 미륵사를 짓고 팔 년을 머물렀는데 그 동안 많은 신하가 법도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덕주공주는 마의태자를 붙잡고 이곳에서 정착하기를 권했으나 마의태자는 애초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일부의 무리를 데리고 오대산을 향해 떠났다. 덕주공주는 이후로도 미륵사에 머물며 마의태자의 안녕을 빌며 평생을 지내다가 입적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