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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사찰 & 함께 가고 싶은 곳

여행-전북29

순창 채계산(釵笄山) 출렁다리 순창 채계산(釵笄山) 출렁다리 전북 순창군 적성면에 있는 채계산은 순창 적성면과 남원 대강면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해발 342m의 산이다. 채계산은 회문산, 강천산과 더불어 순창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일명 화산(華山)이나 적성산과 책여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채계산처럼 많은 전설과 수식어가 붙은 산도 드물다. 예컨대 비녀를 꽂은 여인을 닮아서 채계산(釵笄山),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형상이어서 책여산(冊如山), 적성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赤城山), 화산 옹바위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서 화산(華山)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고시된 지명은 화산이다. 채계산은 적성강변 임동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읊는 모습인 월하미인(月下美人)의 형상을 하.. 2023. 3. 4.
순창 용궐산(龍闕山) 하늘길 순창 용궐산(龍闕山) 하늘길 전북 진안에서 출발한 섬진강 물줄기가 임실의 옥정호에 모였다가 순창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용궐산이 솟아 있다. 높이는 해발 645m로 하늘에서 보면 평면이 대략 마름모꼴인데 북, 서, 남으로 이어지는 두 변이 섬진강에 닿아 있다. 원래는 용골산(龍骨山)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용의 뼈다귀'라는 의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꽤나 오랫동안 강력하게 개명 요구를 했다. 2009년, 정부는 중앙지명위원회를 열어 '용골'을 '용궐'로 바꾸었다. '용궐(龍闕)'은 '용이 거처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용궐산의 남서 가슴께에는 커다란 암벽이 훤히 드러나 있다. 이처럼 평평하고 매끄럽고 넓은 암벽을 등산 용어로 슬래브(slab)라 한다. 등산꾼은 대개 '슬랩'이라 하고, 슬래브가 크면 '대슬랩'.. 2023. 3. 4.
진안 마이산 탑사 마이산(馬耳山)과 탑사(塔寺) 전북 진안군 진안읍과 마령면 경계에 있다. 명칭유래는 시대별로 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 때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 조선 태종 때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노령산맥은 용의 몸, 진안고원은 옹의 머리, 이 산은 용의 뿔과 같다 하여 용각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단풍이 곱게 물들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도 쌓이지 않아 먹물에 찍은 붓끝과 같다 하여 문필봉 등으로 불렀다. 마이산은 진안고원에 있는데 두 개의 거대한 암봉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멀리서 보면 흡사 쫑긋한 말의 귀처럼 생겼다. 마이산은 암마이봉(686.0m)과 숫마이봉(679.9m)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산봉우리가 서 있는.. 2021. 10. 19.
구례 지리산 천은사 천은사(泉隱寺) 전남 구례군 지리산 노고단 성삼재로 올라가는 길목에 천은사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828년(흥덕왕3)에 덕운선사(德雲禪師)와 인도에서 온 승려 스루가 창건하였고,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이름을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불탄 뒤 중건할 때, 샘에 큰 구렁이가 자꾸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泉隱寺)라고 바꾸자 그 뒤로 원인 모를 화재와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절을 지키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두려워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李匡師)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는 듯 한 서체로 써서 일주문 현판으로 걸었더니 그 뒤로 재앙이 그쳤다.. 2021. 10. 19.
남원 지리산 정령치 정령치(鄭嶺峙) 전북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 사이에 있는 고개(해발 1,172m)인 정령치는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의 황령암기(黃嶺庵記)에 의하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鄭將軍)을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령재 정상에 올라서면 바로 눈앞에 유순하게 흘러내리는 만복대가 다가오고, 운봉평야가 멀리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꾸불꾸불하게 포장된 정령치 도로도 보인다. 반야봉의 큰 덩치가 시야에 잡혀 사방의 전망이 탁 트인 게 시원하다. 또한 동쪽으로는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성삼재와 왕시루봉, 서쪽으로는 남원시가지가 보여 전망이 뛰어나다. 이 뿐만 아니라 지리산 주능선 일백리를 한눈에 바.. 2021. 10. 19.
남원 실상사 실상사(實相寺) 전북 남원시 산내면(山內面)의 지리산(智異山) 기슭 평지에 있는 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 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었는데.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풍수지리의 자리인 것을 알고 실상사를 지어진 것이라 한다. 특히 증각대사 홍척은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로 그의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절을 세운 것이다. 증각대사의 높은 불심을 높게 기린 흥덕왕이 절을 세울 수 있게 해줬고 왕은 태자(太子) 선광(宣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다. 증각은 .. 2021. 10. 19.
남원 지리산 달궁 달궁유적 (達宮遺蹟) : 지리산 기슭에 거의 망가진 채로 남아 있는 옛 성터가 있다. 마한의 궁터였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전북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달궁마을에 사다리꼴의 평탄한 대지에 동서로 100m, 남북으로 80m나 되는 황성옛터가 달궁 터라고 알려져 있다. 삼한시대 때 마한(馬韓)의 효왕(孝王)이 진한(辰韓)의 공격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도성을 쌓고, 궁을 세웠는데 그 궁이 있었던 자리가 바로 달궁 터라고 한다. 이에 관련된 기록은 조선 숙종 때 쓰인 “용성지(龍城誌)”에 적혀 있다. 건물의 초석으로 보이는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열을 이루는 석축들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기와 편과 토기 편 들이 수습되었는데 토기 편 중에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있다. 돌탑이란 옛 부터 전.. 2021. 10. 19.
임실 논개생가 주논개(朱論介) 生家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 위치한 논개생가마을이 있다. 임진왜란 때 적장인 게야무라 로꾸스매를 껴안고 진주 남강 의암에서 투신한 논개. 열아홉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오로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그녀를 잉태한 마을이다. 이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대곡리 저수지를 지나게 되는데, 원래는 논개 생가가 저수지로 수몰되기 전에 이곳에 있었는데 1986년 대곡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위쪽으로 옮겨 지금의 마을로 복원하였다. 깊고도 깊은 산골, 장수에서도 깡촌에 속하던 대곡리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400년쯤 전이다. 논개의 부친인 주달문(朱達文)진사가 건너편 범바위골이라는 마을에서 이주해 터를 잡고 서당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사람들은 이곳을 주 진사가 사는 곳이란 뜻으로.. 2021. 10. 19.
임실 장구목(천담리) 천담리 장구목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암리 진메(뫼)마을 ,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 전북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내룡마을 장구목. 세 곳의 주소를 둔 천혜의 비경으로 딱히 어느 곳이라고 지명하기 힘든 곳이다. 걷기를 작정하고 걷는 다면 덕치면사무소에서 진메(뫼)마을→천담마을→구담마을→장구(군)목 순서로 약 8.5Km 를 트래킹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메마을을 건너띄고 천담마을 부터 시작한다면 강진면사무소에서 717번 국도를 따라 10분정도 남하하다가 천담교에서 우회전해서 천담리로 진입히면 된다. 편도 5km 정도의 거리이다. 네비게이션이면 천담리로 직접 안내한다. 평지이고 강변을 따라 걷기 때문에 누구든 가능하고, 시간도 천천히 걸어서 편도 약 2:30 시간 정도면 족하다. 500리 강줄기를 굽이 굽이 돌.. 2021. 10. 19.
임실 오수견공원 오수견(獒樹犬)과 의견비(義犬碑)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원동산(園東山) 공원에 있는 개의 비석. 이 비석은 높이 220㎝, 폭 95㎝, 두께 30㎝로 화강암 소재에 전후로 각자(刻字)가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우며, 냇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55년 4월 현 위치에 다시 옮겨 놓았다.  의견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거령현(임실군 청웅면(靑雄面)의 백제시대 행정구역이지만, 지금의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사는 김개인(金蓋仁)은 개를 아주 사랑하여 항상 데리고 다녔다. 어느 해 이른 봄, 개를 데리고 장이 선 오수로 장보기를 나갔는데 너무나 술을 좋아하여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버렸다. 그는 몹시 취하여 개와 함께 집으로 가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만 .. 2021. 10. 19.
부안 내소사 내소사 (來蘇寺) 내소사는 百濟 무왕 34년(633)(新羅 27대 선덕여왕 2년)에 혜구두타(僧 惠丘頭陀)스님이 창건하면서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다. 중국 당나라 고종 때 武將이던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와 연합으로 백제를 칠 때 나당(羅唐)연합군을 지휘하며 이곳에 들려 시주하면서 소래사(蘇來寺)에서 내소사(來蘇寺)로 이름을 고쳤다고 전하지만 근거는 없다. 그래도 재미있는 전설이다.(혜구두타 僧은 이름이 바뀔 것을 예견했다는데 정말일까(?))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모든 이는 가벼운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50년 생 전나무 5백여 그루가 만든 600여m 숲 터널은 사람을 작게, 겸손하게 만든다. 호젓한 숲길을 한 걸음 내딛고 심호흡 한번하고, 하늘 한번보고, 또 한.. 2021. 10. 19.
부안 개암사 개암사(開巖寺)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절.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弁韓)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開巖)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634년(무왕 35) 묘련(妙蓮)이 창건한 백제의 고찰이다.「개암사지」에 의하면 개암사는 옛 변한(弁韓)의 왕궁 터였고, 그후 백제 때 묘련(妙蓮)왕사가 궁전을 고쳐 개암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작은 나라의 궁터가 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676년(문무왕 16)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이르러 우금암(禹金巖) 밑의 굴속에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1276년(충렬왕 2) 원감국사(圓鑑國師)는 조계산 송광사에서.. 2021.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