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인천17 무의도 해상관광탐방로 1. 무의도 가는길(하나개해수욕장) 2. 해상관광탐방로 3. 호룡곡산 무의도(舞衣島) 무의도로 가는 대중교통은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내려, 3층 출국장 7번 게이트 앞에서 “무의1번” 버스를 타면 약 30분 만에 하나개해수욕장 또는 광명항에 도착할 수 있다. 인천시에서 소개한 무의도 내용은, “무의도는 춤출 무(舞), 옷의(衣) 섬도(島)라고 표시한다.섬의 형태가 장군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 같아 무의도라 하였고, 함께 있는 섬 중 큰 섬을 대무의도, 작은 섬을 소무의도라고 하였다.부근에 실미도, 해리도, 상엽도 등 부속 도서가 산재하며 특히 실미도는 영화 실미도 촬영지로 유명하다.하나개해수욕장에는 드라마 천국의 계단과 칼잡이, 오수정 촬영 세트장이 있어 무의도를 찾는 관광객.. 2025. 3. 14. 월미도 ”문화의 거리“ 선착장과 영종도 구읍뱃터 ◇ 월미도 ”문화의 거리“ 선착장과 영종도 구읍뱃터 이곳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는 월미도에서 영종도 구읍뱃터를 왕복하는 선착장이 있다. 매시 정각에 구읍뱃터로 향한다. 어른 편도 3,500원이다. 월미도 선착장과 구읍뱃터를 오가는 데 편도 20분 정도 소요 된다. 만약 월미도를 관광하고 서울로 가는 코스로 영종도를 경유해서 간다면 구읍뱃터에 내려 선착장입구 버스 정거장에서 203번 버스를 타고, 영종역에서 공항철도를 타면 된다.(시간은 서울역 기준, 월미도에서 인천역으로 가서 1호선을 타는 전철과 거의 비슷하다) 구읍뱃터 또는 영종(도)선착장은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위치한 뱃터(선착장)이다. 예로부터 구읍뱃터(영종도선착장)는 영종도와 인천의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던 뱃길의 기반시설이다. 아직도 선착장이.. 2024. 11. 29. 월미전망대(월미공원) ◇인천 월미공원과 월미전망대 1호선 인천역앞에서 월미바다열차를 타면 첫 번째 정거장에 내리면, 월미공원과 월미전망대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월미공원은 가을에는 가을의 정취가 가득하고, 봄, 여름에는 푸른 정원 숲길이 피톤치드를 선사한다.또한 월미전망대에 위치한 ‘달빛마루’ 카페에서는 따뜻한 커피와 함께 멋진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달빛마루’ 카페는 인천 중구 시니어 분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소박하고,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월미공원은 넓고 잘 정비된 산책로와 가을이면 단풍, 봄여름이면 꽃과 푸른 숲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다. 혼자 걷기에도, 친구나 가족들과 산책하기도 좋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햇살을 즐기며 쉬어갈 수 있다. 바.. 2024. 11. 29. 차이나타운2 ◇인천 차이나타운 2 인천 차이나타운은 1호선 연장 인천역 바로 앞에 있다. 수인선을 타고서 인천역에 내리면 길 건너 바로이다.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제물포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 (治外法權, extraterritoriality)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형성된 곳이다. 그리고 'China'라는 영어 국호를 쓰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이 마을은 큰 관계가 없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그저 한적한 해안가 어촌이었다. 조용하던 어촌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후반부터다. 강화도 조약에 의해 1883년 인천항이 강제 개항되고, 인천항을 통해 청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은 물론 서양 사람까지도 몰려들면서 세계 각국의 문화가 유입됐다. 구한말에는 일본인과 화교들이 섞여 살았.. 2024. 11. 29.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지역이 청의 치외법권(治外法權, extraterritoriality)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겨났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거의가 중국 음식점이다. 현재 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내 거주 중국인들은 초기 정착민들의 2세나 3세들이어서 1세들이 지키고 있었던 전통문화를 많이는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의 맛만은 고수하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인천역 바로 건너편에 있다. 중국 음식점이나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이 많은 편이다. 화교중산학교가 있다. 매년 9월과 10월엔 각각 인천-중국의 날 문화축제와 짜장면 축제가 열린다. 1883년 인천항 개항 후 1884년에 만들어진 중국(청나.. 2022. 11. 21. 인천 월미바다열차 월미바다열차 월미바다열차는 2019 한국관광공사가 제시한 한국인이 가봐야 할 곳 한국관광100선에 선정된 인천 월미도를 순환하는 국내 최장 도심형 관광모노레일이다. 승용차 보다는 전철 이용이 편리하다. 전철1호선 인천역 종점에 내리면 바로 “월미바다역”이 있다. 총 운행거리 6.1km이며, 평균시속 9km의 속도로 월미바다역에서 출발, 월미공원역→월미문화의 거리역→박물관역으로해서 월미도를 한방향으로 한 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42분 정도 소요된다. 운행도중 한번만 내렸다 다시 탈 수 있어서 주의를 해야한다. “월미공원역”에는 옥상에서 보는 경관이 좋아서 그냥 내렸다 출구로 나가지 않고 볼 수 있다.(1회 승하차에 해당되지 않는다) “월미문화의거리역”에서 하차하면 어린이 놀이공원, 먹거리 거리등이.. 2022. 11. 21. 강화군 청련사 청련사(靑蓮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고려산(高麗山)에 있는 삼국시대 인도 승려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416년(장수왕 4) 인도승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인도승은 진나라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절터를 물색하였다. 고려산에 이르러 다섯 빛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꺾어서 공중으로 날려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이 곳에는 청련이 떨어졌기 때문에 청련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창건시기를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절의 중창에 대한기록은 조선 후기부터 보여지고 있다. 182 1년(순조 21) 비구니 포겸(包謙)이 폐허화된 이 절을 중창하였고, 1906년 비구니 계근.. 2022. 7. 3. 강화 고려산 적석사 와 적석낙조 고려산(高麗山). 적석사 : 고려산은 강화읍(江華邑)과 내가면․하점면․송해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36.3m. 강화도 6대산(마니산, 고려산, 봉천산, 혈구산, 해명산, 진강산)의 하나이다. 강화군의 정 중앙 진산이 되며, 고구려 때는 둘레 5.8㎞가 되는 토성을 쌓았다. 꼭대기에 치마대(馳馬臺)가 있어서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말을 달렸다고 전하며, 또 적련사(적석사) 동편 돌틈에서 나오는 샘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영천(靈泉)으로 이 물을 마신 아래 동네에서는 장상(將相)이 많이 난다 하여, 중국의 술사가 쇠말뚝을 우물 가운데 박고 흙으로 메워서 그 기운을 눌렀다고 전한다. 또 신기한 것은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물이 마르거나 물이 흐려지게 된다.(1916 한일 합방, 6․.. 2022. 4. 27. 강화 철종 외가 와 찬우물 강화도령 철종외가(哲宗外家) 철종외가(哲宗外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철종(재위1849∼1863)의 외숙인 염보길이 살던 집이다. 철종 4년(1853)에 지은 이 건물은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두고 H자형 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려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一자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안채)과 밖(사랑채)의 공간을 작은 담장으로 간단히 분리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예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이다. 철종외가묘(哲宗外家墓)는 철종외가에서 좌측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길 바로 옆에 있다. 묘역에는 염성화(廉星華)·염덕석(廉德碩).. 2022. 4. 27. 강화 오읍약수 오읍약수(五泣藥水) 강화도 읍내 내성인 북산 진송루 부근(고려궁지 정문을 바라보아 왼쪽 차도길을 5분, 강화 산성 북문 밖)에 오읍약수가 있다. 이곳은 바다 건너 북녘 땅인 개풍군 일대를 마주 바라보는 곳으로서 매년 실향민들의 망향제와 종교단체의 통일축원기도회가 열리는 곳이다. 오읍약수는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이 강토를 침입해오자 왕족과 비빈, 그리고 많은 백성들이 강화도로 피신해 와서 내성을 축조할 때였다. 오랜 가뭄으로 성을 쌓던 장정들이 목이 타서 몹시 허덕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더니 큰 바위가 깨지면서 그곳에서 샘물이 솟아 나오므로 장정들이 갈증을 풀게 되었고 그 후 이 약수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인근 주민들이 아끼는 약수터가 되었다. ‘오읍(五泣)’이라는 이름은 고.. 2022. 4. 25. 강화 용흥궁 용흥궁(龍興宮) 고려 궁지 주변은 볼거리가 많다. 고려 궁지로 오는 길에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은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는 용흥궁이다. 이 집은 옛 동네노인들 사이에 ‘원범이네 집’으로 불리는 곳으로서, 원범은 강화 도령으로 알려진 철종의 이름이다. 조선 말기 안동 김씨의 세도가 한창일 때 24대 헌종이 자손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뜨자 대신들은 똑똑치 못한 왕족 중에서 후계자를 정하여 정사를 손아귀에 쥐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강화도에 살고 있던 이원범이 지목되었다. 영조의 현손인 그가 강화에서 자라게 된 것은 할아버지인 은언군이 신유사옥 때 강화로 쫓겨나 사약을 받고 죽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그는 임금으로 봉한다는 대왕대비의 교서도 읽지 못하였다. 이 집은 본래 초가삼간이.. 2022. 4. 24. 강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대한성공회 강화 성당 용흥궁 바로 위쪽에는 사적 424호로 지정된 성공회 강화 성당이 있다. 고요한 초대 주교가 1900년 축성한 건물로 주도하였다. 전체적인 건축 양식은 한국 정통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 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 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 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시간의 섬 중심부를 거닐며 지상의 배 한 척을 본다. 강화읍 내 성공회(聖公會) 강화성당 터는 ‘구원의 방주’ 형국이다. 한옥 건물은 자연스럽게 배의 선실이 된다. 터키 아라라트(Ararat)산 구원의 방주가 떠오른다. 개화기 때, 성공회 초기 선교사들이 이곳 강화도에 한옥 성당을 세운 건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이오나(Iona) 섬처럼 신앙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뜻에서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눈에 익.. 2022. 4. 23.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