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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전설

<양양·낙산사> 조신(調信)의 꿈

by phd100 2021. 2. 20.

<양양·낙산사>

조신(調信)의 꿈

 

신라시대 강원도 명주 땅 세규사(世逵寺)에 장원(莊園)이 있었는데 그곳 관리인 조신 스님은 20세를 갓 넘긴 젊은 스님이었다.

어느 날 낙산사 관세음보살 앞에 나아가 정진하던 조신 스님은 그만 멍청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다시 염불 정진을 하려 해도 가슴 만 뛸 뿐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스님은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저녁으로 낙산사에 올랐다. 그러나 기도보다는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먼발치서나마 바라보는 기쁨이 더 컸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던 날. 조신 스님은 낙산사에 다시 왔으나 낭자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기도를 마치고 떠난 것이었다.

 

침식을 잃을 정도로 사모의 정에 빠진 조신 스님은 그날부터 산사 관음보살님께 낭자와 혼인할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했다.

 

『관세음보살님! 소승 출가한 신분으로 욕심을 내었으므로 다음 생에 축생으로 돌아올지언정 금생에 꼭 김태수의 딸과 연분을 맺고 싶사옵니다. 소승의 소원을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조신 스님이 애태우며 기도하는 가운데 무심한 세월은 수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낭자는 혼인을 약속한 준수하면서도 늠름한 한 청년과 함께 낙산사 부처님께 인사드리러 왔다.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이 모습을 목격한 조신 스님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조신은 해가 저물도록 관음상 앞에 앉아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면서 하루만이라도 낭자와 좋은 인연이 맺어지길 간곡히 발원했다.

 

어느덧 밤은 깊어 파도소리와 솔바람소리 만 들릴 뿐 주위는 적막한데, 울며 기도하던 조신은 그만 법당 안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조신은 문득 인기척을 느껴 둘레를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꿈속에서 그리던 낭자가 바로 옆에 와 있었다. 스님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스님, 죄송합니다. 기도에 방해가 되실줄 아오나 스님을 잠시 뵈온 이래 하루도 잊을 길이 없어 몰래 빠져나왔사오니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세요.』

 

『사모의 정으로 말한다면 소승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이미 정혼한 몸 아닙니까?』

『부모의 명을 거역 못해 억지로 정한 혼사입니다. 이렇게 밤중에 스님을 찾아왔사오니 속히 이 몸을 데리고 어디로 가주세요.』

『어디로요?』

『어디로든 스님과 제가 단둘이만 살 수 있는 곳으로요.』

정녕 애타는 듯 발을 구르는 낭자를 보는 조신은 기뻐 어쩔 줄 몰라 관음보살을 향해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소원을 이렇게 들어주시다니….』

 

조신은 낭자와 함께 남의 눈을 피하느라 산속 깊은 곳으로 걷고, 칡뿌리로 요기를 하며 향리로 돌아갔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비록 벽뿐인 집에서 입에 풀칠하기 바빴으나 내외의 금실은 더없이 좋았다.

그렇게 40년을 사는 동안 조신 내외는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 아이들이 커가매 내외는 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초야를 두루 돌아다니게 되었다.

 

때마침 명주(溟洲) 해현령(蟹縣嶺)을 지나는데 15세 된 큰아들이 이름 모를 열병과 배고픔을 못이겨 그만 죽고 말았다. 조신 내외는 통곡을 하며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아들을 묻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우곡현(羽曲縣(지금의 우현)에 이르러 이들은 초가집을 짓고 정착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이라더니 가난한 조신 내외는 병을 얻게 돼 열두 살 된 딸아이가 밥을 얻어다 여섯 식구가 연명해야 하는 눈물겨운 살림에 봉착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마을 개에게 물려 다리를 절룩거리며 돌아와 몸져 눕게 되자 조신의 아내는 목이 메어 흐느껴 울었다. 슬피 울던 조신의 아내는 무슨 결심이나 한 듯 입을 열었다.

『여보, 이제 우리 헤어집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사모의 정이 깊어 어떤 고생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지요. 그로 인해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두터운 인연을 맺게 됐으나 이제 늙고 병들고 가난에 쪼들려 아이들을 추위와 굶주림에서 구하지 못하다 보니 지난 세월이 그저 무상하기만 합니다.

형색 좋던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위의 이슬처럼 사라지고 지란(芝蘭)같은 백년가약도 버들가지가 바람에 날아간 듯 없어져 버렸으니 당신은 나 때문에 괴롭고, 나도 또한 당신 때문에 근심을 하게 되는군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지난날의 기쁨이 바로 우환의 터전이었어요. 만나고 헤어짐이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니 제발 지금이라도 헤어집시다.』

 

이 말을 들은 조신은 같은 생각이었는지 크게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아이를 둘씩 나누고 헤어졌다.

『저는 고향으로 갈 터이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부인의 말을 듣고 막 작별을 하려는데 조신은 그만 꿈에서 깨어났다.

 

날은 거의 다 밝았는데 법당 안에는 등잔불만 깜빡이고 있었다. 조신은 한 생을 다 살은 듯 세상사가 싫어지고 망연할 뿐이었다. 탐욕의 마음도 그리움도 눈 녹듯 깨끗이 녹아 버리고 말았다. 앞에 앉아 계신 관세음보살 뵙기가 면구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날이 밝자 조신은 해현령에 가서 꿈에 아들을 묻었던 곳을 파 보았다.

 

그곳에선 돌 미륵불이 출현했다. 조신은 삼배를 한 후 물로 말끔히 씻어 부근의 절에 모셨다. 그 후 조신은 장원 관리의 소임을 그만두고 서라벌에 돌아가 사재를 털어 정토사(淨土寺)를 세우고 수행에 전념하여 낙산사 성중(聖衆 또는 神衆)의 한 스님인 조신대사가 되엇다.

그후 조신대사는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