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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전설

<오대산·상원사> 세조와 고양이

by phd100 2021. 2. 21.

<오대산·상원사>

세조와 고양이

 

『마마, 정신 차리십시오.』

잠자리에 든 세조는 악몽을 꾸는지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은 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옆에 누웠던 왕비가 잠결에 임금의 신음소리를 듣고 일어나 정신차릴 것을 권하니 잠에서 깨어난 세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 신열이 있사옵니다. 옥체 미령하옵신지요?』

세조는 대답 대신 혼자 입속말을 했다.

『음, 업이로구나, 업이야.』

『마마, 무슨 일이세요? 혹시 나쁜 꿈이라도 꾸셨는지요.』

『중전, 심기가 몹시 불편하구려. 방금 꿈에 현덕왕후(단종의 모친·세조의 형수) 혼백이 나타나 내 몸에 침을 뱉지 않겠소.』

『원, 저런….』

꿈 이야기를 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세조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린 조카 단종을 업어주던 모습이며, 생각하기조차 꺼려지는 기억들이 자꾸만 뇌리를 맴돌았다.

이튿날 아침. 이게 웬일인가. 꿈에 현덕왕후가 뱉은 침자리마다 종기가 돋아나고 있다니, 세조는 아연실색했다. 종기는 차츰 온몸으로 퍼지더니 고름이 나는 등 점점 악화되었다. 명의와 신약이 모두 효험이 없었다.

 

임금은 중전에게 말했다.

『백약이 무효이니 내 아무래도 대찰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를 올려야겠소.』

『그렇게 하시지요. 문수도량인 오대산 상원사가 기도처로는 적합할 듯 하옵니다.』

왕은 오대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월정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로 가던 중 장엄한 산세와 맑은 계곡물 등 절경에 취한 세조는 불현듯 산간벽수에 목욕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신하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늘 어의를 풀지 않았던 세조는 그날도 주위를 물린 채 혼자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즐겼다.

 

그때였다. 숲속에서 놀고 있는 조그마한 한 동자승이 세조의 눈에 띄었다.

『이리와서 내 등 좀 밀어주지 않으련?』

동자승이 내려와 등을 다 밀자 임금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단단히 부탁의 말을 일렀다.

『그대는 어디 가서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했더니,

『대왕도 어디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이렇게 응수한 동자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왕은 놀라 주위를 살피다 자신의 몸을 보니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게 됐다. 왕은 크게 감격했다.

환궁하자마자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본 문수동자를 그리게 했다. 기억력을 더듬어 몇 번의 교정을 거친 끝에 실제와 비슷한 동자상이 완성되자 상원사에 봉안토록 했다.

 

현재 상원사에는 문수동자 화상(畵像)은 없고, 얼마 전 다량의 국보가 쏟아져 나온 목각문수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또 세조가 문수동자상을 친견했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갈라지는 큰 길목 10km 지점은 임금이 그곳 나무에 의관을 걸었다 하여 「갓걸이」또는 「관대걸이」라고 부른다.

 

병을 고친 이듬해 봄, 세조는 다시 그 이적의 성지를 찾았다. 상원사에 도착한 왕은 곧바로 법당으로 들어갔다.

막 예불을 올리는데 어디선가 별안간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세조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 자꾸 앞으로 못 가게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예감이 든 왕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병사들을 풀어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세 명의 자객이 세조를 시해하려고 시퍼런 칼을 들고 숨어 있었다.

그들을 끌어내 참하는 동안 고양이는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하마터면 죽을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위해 세조는 강릉에서 가장 기름진 논 5백 섬지기를 상원사에 내렸다. 그리고는 매년 고양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도록 명했다.

이때부터 절에는 묘답 또는 묘전이란 명칭이 생겼다. 즉 고양이 논, 또는 고양이 밭이란 뜻. 궁으로 돌아온 세조는 서울 근교의 여러 사찰에 묘전을 설치하여 고양이를 키웠고, 왕명으로 전국에 고양이를 잡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했다. 최근까지도 봉은사 밭을 묘전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또 지금도 상원사에 가보면 마치 이 전설을 입증하는 듯 문수동자상이 모셔진 청량선원 입구 계단의 좌우에는 돌로 조각한 고양이 석상이 서 있다.

속설에 의하면 「공양미」란 말도 고양이를 위한 쌀이란 말이 변하여 생겼다는 일설도 있다.

 

고양이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 세조는 다시 상원사를 찾았다.

자신에게 영험을 베풀어준 도량을 중창하여 성지로서 그 뜻을 오래오래 기리기 위해서였다.

대중 스님들과 자리를 같이한 왕은 상원사 중수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이 올렸다.

소탈한 세조는 스님들과 둘러앉아 공양 채비를 했다.

 

『마마, 자리를 옮기시지요.』

『아니오. 대중 스님들과 함께 공양하는 것이 과언은 오히려 흡족하오.』

그때 맨 말석에 앉아 있던 어린 사미승이 발우를 들더니, 세조의 면전을 향해 불쑥 말을 던졌다.

『이거사, 공양하시오.』

놀란 대중은 모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가. 정작 놀라야 할 세조는 껄껄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도인 될 그릇이로다.』

왕은 그 사미승에게 3품의 직을 내렸다. 그리고는 그 표시로서 친히 전홍대(붉은 천을 감은 허리띠)를 하사하였다. 아마 세조는 지난날 자신의 병을 고쳐준 문수동자를 연상했던 모양이다.

그 후 세간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귀하게 되라는 징표로 붉은 허리를 졸라매 주는 풍속이 생겼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