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정방사(堤川 淨芳寺)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에 정방사가 있다.
비 오는 날 분위기가 더 근사해지는 여행지가 있다. 보슬비가 내려도 좋고, 주룩주룩 장대비가 내려도 좋다.
제천 정방사가 그런 곳이다. 비 내리는 날이면 운치가 더 살아난다.
법당 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노라면 세상 시름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멀리 보이는 청풍호도 꿈처럼 아련하게 비에 젖는다. 정방사는 금수산 의상대라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 자리한 사찰이다.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로, 동국여지승람 에는 산방사 라고 소개되었다.
청풍읍지에는 “정방사는 도화동에서 오리허에 있으며 전해오길 신승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다. 동쪽에 큰 반석이 있는데 동대 혹은 의상대라 부른다”고 나온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원스님이 부처님 설법을 널리 펴고자 의상대사에게 절터를 알려주십사 청했다고 한다.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내주며 이 지팡이가 멈추는 곳에 절을 세우라 했고, 그곳이 지금의 정방사 자리다.
정방사는 찾아가는 길 또한 여간 아름답지 않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수려한 청풍호 풍경이 따라온다.
정방사 표지판을 보고 능강계곡으로 오르는 길을 따르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이 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절 주차장에 닿는데, 차를 대고 다시 가파른 길을 5분 정도 올라야 한다.
절 앞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한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한국에서 절로 들어가는 가장 좁은 길이라고 했다.
절은 의상대 아래 마치 제비 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청풍루와 유운당, 원통보전, 나한전이 의상대 아래 일렬로 섰다.
요사채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다. 이 마당에서 바라보면 월악산과 청풍호가 발아래 펼쳐진다.
정방사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해 뜰 무렵이다. 해 뜨기 전 월악산 골짜기와 청풍호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어울려 다니며 선경을 빚어낸다.
물안개가 산자락을 휘감으며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모습은 부처님이 손바닥으로 구름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688년 4월 3일 정방사를 찾은 조선 중기 학자 삼연 김창흡도 이곳 풍광에 반해 “창으로는 월악산을 긷고 손바닥에는 구담봉을 올려놓았네”라는 시를 남겼다.
원통보전에서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는 편액이 마음을 지그시 누른다. ‘원하는 게 있다면 반드시 응답한다’는 뜻이다.
원통보전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모셨는데, 1689년(숙종 15)에 만들어진 이 불상은 지난 2004년 도난당한 뒤 경매에 나왔다.
당시 총무원 문화부, 불교중앙박물관 직원들이 확인해서 문화재청,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공조수사를 통해 되찾았다.
원통보전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해수관음보살입상이 청풍호를 바라보고 섰다. 청풍호가 ‘내륙의 바다’라고 불리는 점을 감안하면 해수관음보살입상이 있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나무 의자에 앉아 구름이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걸 보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서둘러 처마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한다.
절에 찾아온 이는 아무도 없다. 절과 풍경이 오롯이 내 것이 된다. 절 마당에 후드득후드득 깃드는 빗소리가 부처님 설법처럼 들리는 듯하다. 별안간 내리는 비가 오히려 고맙다.
<정방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 및 복장 유물(淨芳寺 木造觀音普薩 坐像-腹臟遺物)>
정방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법주사의 말사로 고려 시대에 창건되어 현재까지 법통을 이어오고 있다.
정방사는 조선 시대에 작은 규모의 암자로서 세 곳에 있었으나, 지금은 한 곳만 남아 법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방사의 법당에는 목조관음보살상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개금불사(改金佛事) 때 한지에 자경 1~2.5㎝ 크기의 묵서로 된 복장기[62×80㎝]가 발견되어 불상을 제작한 절대 연대가 확인되었다.
(복장이란 불교의 교리 체계를 집약시켜 구성한 상징적인 물품들을 부처상의 뱃속에 넣음으로써 부처의 생명력과 신성성(神聖性)을 높이는 것이다.
불상의 32길상, 80종호가 외면적인 형태로서 부처의 특성과 형상을 설명한 것이라면, 복장은 내면적인 불성(佛性)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복장과 복장 의식의 의미는 바로 살아 있는 생명력의 부여에 있는 것이다. 제천 정방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 및 복장 유물은 2001년 3월 30일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불상은 문화재로 지정된 직후 도난당하여 현재까지 행방을 알 수 없다. 현재 사찰측에서는 모습을 본뜬 모사품을 봉안하고 있다.
정방사를 갔다 내려오는 길에는 “능강솟대문화 공간”을 관람할 수도 있다.
<능강솟대문화 공간>
정방사에서 내려오면 솟대를 테마로 한 능강솟대문화공간이 있다. 마당에 ㅎㅁㅅㄷ 이라는 하얀 조각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희망 솟대”라는 뜻이다. 다양한 솟대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희귀 야생화도 만날 수 있다.
인간의 기원을 담은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청풍에서 옥순대교로 향하는 그림 같은 호반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그네의 눈길을 끄는 곳이 있으니 능강리에 위치한 솟대전시관이다.
솟대는 고조선 때부터 하늘을 향한 인간의 소망(마을의 안녕과 풍요)을 기원하는 의미로 나무나 돌로 된 긴 장대위에 오리나 새 모양의 조형물을 올려놓아 마을 입구에 설치하던 것이다.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인 솟대를 현대적인 조형물로 재조명하여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솟대조각가 윤영호 선생의 솟대작품 수백여 점을 실내외에 전시한 곳으로 솟대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며놓았다.
능강솟대문화공간이 있는 능강리에는 제천에서 유명한 능강계곡이 있는 곳이다. 능강계곡은 단양군 적성면과 수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금수산(1,015m)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6㎞에 걸쳐 이어지며, 계곡물은 청풍호로 흘러든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맑은 물이 굽이치고 깎아 세운 듯한 절벽과 바닥까지 비치는 맑은 담(潭), 쏟아지는 폭포수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상류 지역은 지대가 높고 하루 중 햇빛이 드는 시간이 짧아 한여름에도 얼음이 나는 곳이라 하여 얼음골(한양지)이라 불린다.
이곳 얼음은 초복에 제일 많이 생기며 중복에는 바위틈에 만 있고 말복에는 바위를 들어내고 캐내야 한다. 계곡 왼쪽 능선 암벽 아래에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세운 정방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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