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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강원

평창 오대산월정사

by phd100 2021. 9. 3.

 

월정사(月精寺)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 자장율사는 임시로 초암(草庵)을 얽어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그가 머물던 3일 동안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자장율사는 636년에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 마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정진하였다.

 

그러나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 들어가 입적하게 된다. 정암사에서도 문수보살을 친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오만 때문에 기회를 날려버렸다.(정암사 얘기 참고)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뜻은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이로부터 월정사는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

 

그 뒤 유동보살(幼童菩薩)의 화신이라고 전하는 신효거사(信孝居士)가 이곳에 머물렀고, 범일(梵日)의 제자였던 두타승(頭陀僧) 신의(信義)가 자장율사가 휴식하던 곳을 찾아와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가 죽은 뒤 이 암자는 오랫동안 황폐해 있었는데, 수다사(水多寺)의 장로 유연(有緣)이 암자를 다시 짓고 살면서 월정사의 사격(寺格)을 갖추었다.

 

그 뒤 1307년(고려 충렬왕 33) 화재로 전소된 것을 이일(而一)이 중창하였고, 1833년(순조 33)에 다시 화재로 전소된 것을 1844년(헌종 10)에 영담(瀛潭) · 정암(淨庵) 등이 중건하여 내려오다가 1·4후퇴 당시 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하여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다.

 

1964년 탄허(呑虛)가 법당인 적광전(寂光殿)을 중창한 뒤 만화(萬和)가 꾸준히 중건하여, 현재 삼성각(三聖閣) · 대강당 · 심검당(尋劍堂) · 승가학원(僧伽學院) · 범종각 · 용금루(湧金樓) · 일주문 · 요사채 · 창고 등이 있다.

 

이 중 적광전은 남향으로 된 정면 5칸, 측면 4칸의 매우 큰 건물이다. 전내(殿內)에는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형식의 대불이 봉안되어 있다.

적광전에는 대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것이 통례지만 여기서는 그 통례를 깨고 석굴암 불상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또한, 본존불만 모시고 협시불을 모시지 않은 것도 특이하다.

 

중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48호인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과 보물 제139호인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국보 제292호인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平昌 上院寺 重創勸善文) 등이 있으며, 월정사 육수관음상(月精寺 六手觀音像)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부도 22기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2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월정사의 보물 및 유물들을 모아놓은 전시실 보장각(寶藏閣)에는 팔각구층탑과 같은 모양의 축소판 목조탑이 있다.

 

그리고 대장경을 넣었던 경궤, 『금강경』 3권, 『범음집 梵音集』 2권, 『진언집 眞言集』 1권, 『보권문 普勸文』 1권, 『지장경 地藏經』 2권, 인도 불상, 인도 패엽경, 난초족자 2, 독성탱화 1폭, 관음보살변상도(觀音菩薩變相圖) 1폭, 신중탱화, 바라 1쌍, 조선시대 의상·기와, 고려시대 궤짝 13개, 구리거울인 무문경 · 파문경 · 쌍룡경 · 사룡경이 있고, 향낭 · 향합 · 수정사리병 · 진신사리병 · 은합 · 청동합, 청동갑옷을 쌌던 보자기, 목향 등이 소장되어 있다.

 

<월정사석조보살좌상>

국보 제48-2호. 높이 180cm. 〈월정사사적기〉에 의하면 탑 앞에는 손에 향로를 들고 꿇어앉아 공양하는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 있었다고 한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강릉일불우(江陵一佛宇)에는 자장의 옛 절에 문수보살이 있어 탑 위로 1,000년 동안 새가 날지 못한다고 하는 고려시대 정추(鄭樞)의 시가 전해지고 있어 이 보살상의 이름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머리에는 길다란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관 밑으로는 보발(寶髮)이 내려와 양 어깨 위를 덮고 있다. 얼굴은 길고 통통한 편으로 눈·코·입이 조그마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코와 인중이 짧게 처리되어 있어 이목구비가 얼굴 중심부에 몰려 있으며 턱 밑이 유난히 살쪄 보인다.

신체는 비교적 가늘고 밋밋하게 처리되었으며, 하체에 비해 상반부를 크게 표현하여 전반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비례감을 보여준다. 특히 둥근 연화대좌 위에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듯한 공양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은 연산 개태사(開泰寺)에 있는 석조보살좌상(머리부분 파손)을 비롯하여 강릉의 신복사지3층석탑 앞에 있는 석조보살좌상 등 고려시대의 다른 공양보살상에서도 볼 수 있다.

빈약한 가슴 위로 걸친 번잡한 천의는 목걸이·팔찌와 함께 장식적인 효과를 주며, 옷주름선은 굵고 투박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오른팔 밑에는 동자상이 놓여 있는데 뒤에 보수한 것으로 보이며 세부표현이 분명하지 않다.

이 보살상의 통통하고 부은 듯한 얼굴 표현, 높은 원통과 같은 보관, 굵직한 주름으로 나타난 옷 표현 등은 같은 지역인 강릉에서 출토된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국립중앙박물관)이나 신복사지석조보살좌상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높은 관은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형태로 고려와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중국 요나라의 보살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보살상들은 대체로 강원도 명주지방을 중심으로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던 조각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국보 제48호. 높이 15.2m. 6·25전쟁 때 일어난 화재로 이 절의 건물과 함께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현재 일부가 보수되었으며, 특히 상륜부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팔각형의 2층 기단 위에 9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올려진 특이한 형식의 석탑이다.

기단부는 낮은 편으로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데, 하층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이 2개씩 조각되었으며 그 위를 덮고 있는 갑석 윗면에는 복련의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하층기단과 상층기단 사이에는 상층기단의 중석을 받치는 별석이 끼워져 있다. 상층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고 그 위로 갑석과 탑신을 받치는 별개의 8각 받침돌이 차례로 얹혀 있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옥신석의 크기에 따라 1개 또는 2, 3개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층의 옥신에는 우주를 새겼는데 특히 1층 옥신에는 4면에 장방형의 감실이 표현되어 있다.

옥개석은 전반적으로 수평을 이루고 있고, 밑에는 각형과 반원형의 받침돌이 있는 것이 특이하며 처마 끝에는 풍령이 달려 있다.

상륜부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노반(露盤)·복발·앙화·보륜은 석재로 만들어진 반면에 보개·수연(水煙)·용차(龍車)·보주 등은 금속제로 되어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비율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2층 탑신부터는 거의 같은 폭으로 되어 안정감을 주며, 기단이나 탑신이 팔각형이고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점 등에서 고려시대에 유행한 다각다층(多角多層) 석탑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해체·보수할 때 1층 옥신석에서는 동경·경문·향목 등의 사리장치가 나왔으며, 5층 옥개석에서는 은도금 불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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