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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얘기

한식의 유래

by phd100 2017. 4. 5.

오늘은 식목일이자 한식날이다. 비가오지 만 그래도 살만하다. 잘 아시겠지만 한식의 유래를 한 번 더 더듬어 보자.

 

공자가 살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403),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제후들이 권세를 떨쳤다.

그 가운데 군사력을 바탕으로 제후국들을 호령하던 다섯 명이 '춘추 5패'다.

제(齊)나라 환공(桓公), 진(晉)나라 문공(文公), 초(楚)나라 장왕(莊王), 오(吳)나라 합려(闔閭),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그들이다.

 

제나라 환공에 이어 두 번째 패자로 군림한 진나라 문공도 만만찮았다.

적국 군주의 딸을 받아들인 아버지로 비롯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19년 동안 천하를 떠돌다가 62세에야 권좌에 올랐으니 그 과정이 오죽했을까.

 

진나라 문공 옆엔 개자추(介子推)가 있었다. 개자추는 망명 생활을 하던 문공이 굶주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내 고기반찬이라며 대접한 충신이다.

그런 개자추가 문공의 논공행상(나라를 세우는데 공을 세워 도와 준 명단)에서 빠졌다. 개자추는 공을 다투는 사람들이 가볍게 보였을 테고,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 문공이 섭섭했을 테다.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깊은 산에 칩거했다. 입신 대신 입산을 택한 셈이다.

문공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나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산에 불을 지르면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오리라 여긴 것이 비극의 발단이었다.

오히려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나무를 껴안고 버티다 산화했다. 개자추의 포목소사(抱木燒死)다.

 

문공은 개자추를 애도하며 해마다 이날 하루만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겠다고 다짐했다.

한식(寒食)의 유래로 알려진 이야기다.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 바로 오늘이다.

 

개자추는 이런 말을 남겼다. '군주에 대해 탐천지공(貪天之功)을 다투는 것은 도둑질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다'.

탐천지공은 남의 공을 도용함을 비유한 말이다. 요즘 화법으로 하면 오직 시대적 요구인 사회 통합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힘을 보탤 뿐, 자리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여러분은 진나라 문공, 개자추 어느 분의 행동에 한표를 던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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