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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함안 합강정

by phd100 2020. 1. 5.


합강정(合江亭)

경남 함안군 대산면 구암로 469에는 함안 낙동강변 용화산 반구정(伴鷗亭)(날아가는 갈매기와 여생을 살고 싶다는 의미)의 서쪽 강변에 합강정이 자리한다.

지리산 천왕봉의 천왕샘에서 발원한 남강과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해 남으로 흘러온 낙동강이 이곳에서 합류해 합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합강정은 낙동강이 흘러가는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 앞에는 수령이 350년쯤 되었다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합강정(合江亭)은 조선 후기 문관이며 학자인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1585~1664]가 수학하던 정자이다. 조임도는 인조 때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1647년 대군 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되어 창녕까지 가다 역시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 공조 좌랑으로 일하다가 노환으로 사직하였다. 사헌부 지평에 증직되고, 함안에 있는 송정 서원(松汀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관규 쇄록(管窺瑣錄), 추모록(追慕錄), 취정록(就正錄),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 간송 문집(澗松文集)등이 있다. 19791229간송 문집책판 및 금라전신록책판이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금라전신록은 함안의 역사와 고려 말 이방실 장군 등 함안 출신들의 업적을 기록한 책이다

 

정자는 인조 11년인 1633년에 건립한 것으로 이후 중수와 보수를 거쳐 지금은 새것과 같은 모습이다.

 

간송 선생은 1639년 합강정에서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을 저술했다 한다. 선생의 나이 50대 중반이었다 한다. 소년시절 전쟁을 겪고 이후에는 당파싸움의 한가운데에서 살아내야 했던 선비. 흘러가는 강물처럼 어지러운 시대는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랐던 걸까.

합강정에 서면 봄을 기다리는 강변은 보이지 않고, 오직 멀리 멀리로 흘러 하나의 점으로 사라지는 강물만이 있다.

 

건물 내부에 여러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좌측 방 1칸은 와운헌(臥雲軒), 1칸은 망모암(望慕菴)이 걸려 있다. 대청마루 내부에 합강정사(合江精舍)와 우측면에 사월루(沙月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합강정 좌측에는 상봉정(翔鳳亭)이라는 편액이 걸린 정면 3, 측면 2칸 목조 기와 건물이 있는데 중앙에 방을 넣고 우측 면에 마루를 구성하여 맞배지붕을 얹었다.

 

 

<참고>

반구정(伴鷗亭)은 조선 중기 학자 조방(趙垹)[1557~1638]이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조방의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반구정(伴鷗亭)이다. 조방은 함안 출생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현손이며, 이황(李滉)성학십도(聖學十圖)를 연구하였고 도학(道學)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 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를 따라 창의하여 정암진(鼎巖津)과 기강(岐江) 등을 지키는 등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화왕 산성(火旺山城) 의진(義陣)에서 군무를 도와 많은 적을 무찔러 고을 사림들이 그의 충의에 감복하여 조정에 상소하여 포창(褒彰)을 청하였다. 난이 평정되자 낙동강 우포(藕浦)의 말 바위[斗巖]위에 반구정을 짓고 마주 바라보이는 곽재우의 창암정(滄巖亭)을 수시로 오가며 산수의 자연과 함께 은둔생활을 하였다. 조방은 충효 사상을 일생의 신조로 삼았으며 두암집(斗巖集)3권과 가훈 팔잠(家訓八箴), 충효 실감(忠孝實鑑)등의 저술을 남겼다. 호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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