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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하동 칠불사

by phd100 2021. 9. 21.

 

칠불사(七佛寺)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의 지리산 토끼봉의 해발고도 830m 지점에 있는 사찰로,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그들의 외삼촌인 범승(梵僧) 장유보옥선사(長有寶玉禪師)를 따라 이곳에 와서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103년 8월 보름날 밤에 성불(成佛)하여, 칠불사라 이름지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협시불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고 본존불 뒤 후불탱화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탱화 배경이 아니라 조각되어진 후불 목탱화와 김수로왕의 칠왕자가 성불한 칠불목탱화와 신중 목탱화를 조성하여 모시고 있어 그 화려함과 정교함이 다른 사찰과 달라 신비감이 더해진다.

 

◇아자방(亞字房)

신라 효공왕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화상(曇空和尙)이 만든 온돌방으로 아자방(亞字房)은 세계건축대사전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독특한 양식으로, 서산대사가 좌선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방 모양이 亞자와 같아, 아자방이라 하였다. 1951년 소실되어 초가로 복원하였다가 현재와 같이 신축하였다.

방안 네 귀퉁이에 70cm씩 높인 곳이 좌선처이며,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이 행경처(行經處:좁은길)이다. 한번 불을 지피면 100일 동안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며, 100명이 한꺼번에 좌선할 수 있는 방이다.

 

◇일곱 왕자와 허왕후

가야국 김수로왕은 어찌된 영문인지 왕비를 맞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걱정하던 신하들은 어느 날 아침 조정 회의를 마친 후 왕에게 좋은 배필을 골라 왕비로 모실 것을 권했다.

 

『경들의 뜻은 고맙소. 그러나 내가 이 땅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었고 왕후를 삼는 일 역시 하늘의 명령이 있을 것이니 경들은 염려치 마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배와 말을 준비하고 바닷가에 나아가 손님이 오거든 목련으로 만든 키와 계수나무 노를 저어 맞이하도록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신하들이 바다에 다다르니 갑자기 바다 서쪽에서 붉은 빛의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휘날리면서 해변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20여명의 신하와 노비 그리고 금은 보석을 잔뜩 싣고 온 배안의 공주는 선뜻 따라나서질 않았다.

이 보고를 받은 왕은 친히 바닷가로 거동, 산기슭에 임시 궁정을 만들어 공주를 맞이했다.

 

『저는 이유타국(중인도에 있던 고대 왕국)의 공주인데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상제로부터 가락국왕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저를 보내라는 명을 받고는 즉시 이곳으로 보내셨기에 용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공주가 올 것을 알고 있었소.』

그날로 왕과 공주는 결혼을 했고, 그 해 왕후는 곰을 얻는 꿈을 꾸고는 태자 거등공을 낳았다.

 

그 후 왕후는 9명의 왕자를 더 낳아 모두 10명의 왕자를 두었다. 그 중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김씨의 시조가 됐으며, 둘째·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가야산에 들어가 3년간 수도했다. 이들에게 불법을 가르쳐 준 스승은 왕후와 함께 인도에서 온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보옥선사)이었다.

왕후가 아들들이 보고 싶어 자주 가야산을 찾자 장유화상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왕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들을 그리는 모정은 길이 멀면 멀수록 더욱 간절했다. 왕후는 다시 지리산으로 아들들을 찾아갔다. 산문 밖에는 오빠 장유화상이 버티고 서 있었다. 먼 길을 왔으니 이번만은 부드럽게 면회를 허락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가까이 다가갔으나 장유화상은 여전히 냉랭했다.

 

『아들의 불심을 어지럽혀 성불을 방해해서야 되겠느냐. 어서 돌아가도록 해라.』

왕후는 생각다 못해 산중턱에 임시 궁궐을 짓고 계속 아들을 만나려 했으나 오빠에게 들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일곱 왕자는 누가 찾아와도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수행에 전념했다.

 

궁으로 돌아와 아들들의 도력이 높다는 소문을 들은 허왕후는 아들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마음을 달래던 왕후는 다시 지리산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8월 보름달 빛이 휘영청 밝은 산문 밖에서 장유화상은 전과 달리 미소를 지으며 반가이 맞았다.

 

『기다리고 있었다. 네 아들들이 이제 성불했으니 어서 만나 보거라.』

왕후는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으나 아들들은 기척이 없었다. 그때였다.

 

『어머니, 연못을 보면 저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달빛이 교교한 못 속에는 황금빛 가사를 걸친 일곱 아들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났다. 왕후에게는 이것이 아들들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후 김수로왕은 크게 기뻐하며 아들들이 공부하던 곳에 대가람을 이루니 그곳이 바로 오늘의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지리산 반야봉에 위치한 칠불사다.

 

칠불의 명호는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로 이 성불로 인하여 칠불사라 불리운 이 절은 한 번 불을 때면 100일간 따뜻했다는 아(亞)자방(경남 지방문화재 제144호)으로도 유명하다.

 

절 대부분이 여순반란사건 때 소실되어 최근 중창 불사가 한창인데 불자 화백 손연칠 씨가 요즘 일곱 왕자의 전설을 벽화로 묘사하고 있다.

 

수로왕이 머물렀다는 「범왕부락」, 허왕후의 임시 궁궐이 있던 곳은 「천비촌」, 수로왕이 도착했을 때 저자(시장)가 섰다는 「저자골」, 어두워질 때 왕후가 당도하여 어름어름했다는 「어름골」등 칠불사 인근에는 지금도 이 전설과 관련 있는 지명이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해석>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며,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이자, 동국제일선원이기도 한 칠불사.

지리산 중심봉인 반야봉의 남쪽 800m고지에 위치한 칠불사는 1세기경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왕자가 그들의 외숙인 범승(梵僧) 장유보옥(長遊寶玉)화상(和尙)을 따라와 이곳에서 동시 성불한 것을 기념하여 김수로왕이 국력으로 창건한 사찰로서, 가야불교의 발상지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태어나 남해바다를 통해 가락국으로 온 인도 황하상류의 태양왕조인 아유다국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삼아 10남 2녀를 두었답니다. 그 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아 김해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왕자는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하였답니다.

 

그들은 장유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의령 수도산과 사천 와룡산으로 거쳐 서기 101년에 이곳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지 2년 만에 모두 성불 하였다 합니다.

 

칠불의 명호는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로 이 성불로 인하여 칠불사라고 하였답니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은 "옥룡자결(玉龍子訣)"에 의하면 지리산 칠불사는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으로, 제일의 양맥이라고 하였답니다. 임진란에 퇴락한 가람을 서산대사와 부휴대사가 중수하였답니다.

 

그후 1800년에 큰 화재가 나서 보광전, 약사전, 미타전, 벽안당, 칠불각, 보설루, 요사 등 10여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는데, 대은율사와 금당율사에 의해 모두 복구되었다가 6.25전란으로 인해 1951년 1월경에 전소되었습니다.

 

27년간 폐허로 남아있던 것을 제월통광(霽月通光)스님이 1978년부터 15여년을 걸쳐 대웅전, 문수전, 아자방, 운상원, 설선당, 보설루, 원음각, 요사, 영지, 일주문 등을 복원 중창하고 이 외에 선다원, 사적비, 다신탑비 등을 세웠습니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문수보살이 일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곳이라고 한다. 지리산이라는 이름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지(智)”자와 “리(利)”자를 각각 따온 것이라 한다. 지리산은 상봉인 천왕봉과 주봉인 반야봉으로 연결되는데 반야봉은 문수보살의 대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와같이 지리산은 문수도량인데 특히 칠불사는 생문수(生文殊)도량으로서, 칠불사에서 참선을 하거나 기도를 하면 문수보살이 근기에 맞게 회현하여 기도를 성취시켜 준다는 영험있는 도량이라고 한다.

 

동국제일선원 지리산 칠불사는 아자방 선원과 운상선원이 있어 우수한 도승을 배출한 동국제일 선원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정명선사, 조선시대의 서산대사, 부휴대사, 초의선사, 이외에 백암, 무가, 인허, 월송선사 등 선승들이 주석하며 수안거했고, 근현대에는 용성선사, 금오선사, 서암선사 등 큰 스님들이 수안거 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협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님 그리고 후불 목탱화와 김수로왕의 칠왕자가 성불한 칠불목탱화와 신중 목탱화를 조성하여 모시고 있다.

 

문수전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님을 모셔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월 음력4일 문수재일을 기하여 특별히 문수보살께 공양 올리고 법회를 열어 법문을 한다고 합니다.

 

아자방(亞字房)은 스님들이 참선수행을 하는 선방입니다. 벽안당이라고 하는 이 방은 신라 효공왕때 담공선사가 축조하였는데 방안 네 귀퉁이의 50cm씩 높은 곳은 좌선처이고,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경행처입니다. 축조 당시에는 한 번 불을 지피면 100일동안 고루 따뜻하였으므로, 신비한 온돌방이라 하여 세계건축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 14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아자방에서 참선공부 할 때는 장좌불와(長坐不臥, 늘 앉아있고 눕지 않는 것), 일종식(一種食, 하루 巳時(사시)에 한끼만 먹는 것), 묵언(默言, 말하지 않는 것)의 세가지 규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규칙들을 지키면서 공부를 하였기에 무수한 도승이 배출되었답니다.

칠불사 들어오는 입구에 입곱왕자가 성불하여 어머니 허왕후와 이별한 곳에 조성된 자그마한 연못 영지라 하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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