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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기

파주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유적지(遺跡地)

by phd100 2014. 8. 14.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유적지(遺跡地)

경기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율곡 이이 선생의 유적지가 있다. 넓게 조성된 유적지 경내에는 이이선생 기념관을 비롯하여, 자운서원, 가족묘지 등이 있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

율곡 이이 (栗谷 李珥. 1536 ~ 1584)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학자이자 經世家로, 사헌부 감찰 이원수(李元秀)의 아들로 중종31년(1536), 외가인 강릉 오죽헌(烏竹軒)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던 날 밤, 검은 龍이 바다에서 침실로 날아와 아기를 안겨주는 것을 보았다 하여, 어릴때 이름을 현룡(見龍)이라 하였으며, 태어 난 방을 몽룡실(夢龍室)이라 부르고 있다.

 

그의 생애와 관련이 깊은 지역이 세 곳이 있는데,

첫째는 그가 태어난 外家가 있었던 강릉 오죽헌이고,

둘째는 妻家가 있던 황해도 해주의 석담,

그리고 세째는 덕수이씨(德水 李氏) 가문의 본거지이면서 그가 성장하였던 파주 율곡리이다. 그의 號 율곡도 율곡리에서 유래된 것인 만큼 그의 생애에서 파주와의 관련성은 대단히 크다.

 

어려서부터 대단히 총명하여 이미 3세에 글을 읽었고, 1543년 8세 때에 화석정시(花石亭詩)를, 1545년 10세때에 경포대부(鏡浦臺賦)를 지었으며, 1548년 13세의 어린 나이에 進士初試에 합격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율곡의 학문은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실천적 학문으로 조선 유학계에 영남학파의 거두인 이황(李滉)과 쌍벽을 이루며,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 주도하여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율곡의 이러한 학문경향은 정치, 경제, 교육, 국방 등에 걸쳐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여 經世家로도 큰 업적을 남겼는데 , 사창(社倉)설치, 대동법(大同法) 실시,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 주장 등 사회 정책 전반에 대한 획기적 先見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운서원(紫雲書院)

자운서원(紫雲書院)은 조선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림들이 세운 서원이다.

 

자운서원은 율곡 선생의 묘가 있는 곳에 율곡 선생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광해군 때 처음 건립되었다.

 

이율곡 묘소(李栗谷 墓所)

이율곡 묘소 이곳은 일종의 가족 묘역이다. 여기에는 율곡부부, 율곡부모, 율곡의 형 부부, 율곡의 아들부부, 율곡의 누나부부, 율곡의 둘째부인 등등 모두 13기의 묘로 구성되어 있다. 풍수지리학 상 율곡의 묘가 맨 위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아래에 兄부부 그리고 율곡의 父母 묘가 배치되어 있다.

 

율곡의 묘는 가족묘역 중에서도 가장 윗 쪽에 있다. 그리고 부인 노(盧)씨의 묘는 쌍분도 합장도 아닌 형태로 남편인 이율곡보다 조금 윗 쪽에 연이어 자리잡고 있다.

자식이 벼슬이 높으면 아버지보다 윗쪽에 묘를 쓰는 것은 크게 이상할 것 없지만, 자식과 부모 간에 차이가 없고, 또한 율곡의 묘는 합장도, 쌍분도 아닌 희귀한 형태이다.

 

부모의 묘가 자식의 아래에 위치한 것을 역장(逆葬)이라고 한다. 조선 전기나 중기에는 흔한 일이었으나, 성리학이 발달하면서 이 역장은 예를 거스르는 행동으로 여겨져 금지되었다고 한다.

 

이 이유에 대하여 기록은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때 부인 노씨는 남편인 율곡의 묘를 껴앉고 있다가 왜적에게 살해당하였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8년 전에 율곡이 49세를 일기로 죽자, 이 곳에 묘를 정하였는데,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인은 이 옷에서 한 女從과 묘를 지키고 있었다. 이 때에 왜적이 겁탈하려하자, 이에 두 女人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훗날 왜란이 끝나고 후손들이 이 곳을 둘러보니 율곡의 묘옆에 두 여자의 유골이 흩어져 있는데, 세월이 오래 지나 부인과 여종을 구분할 수 없었다.

 

이에 두 유골을 모아 합장도, 쌍분도 아닌 형태로 연이어서 묘를 썼다고 한다. 기구한 사연이다.

 

이이선생 신도비(李珥先生神道碑)

이이선생 신도비(李珥先生神道碑)는 자운서원 경내의 좌측 산기슭에 세워져 있는데 조선 중기 대학자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이다.

이 신도비는 율곡선생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난 인조 9년(1631) 4월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이항복(李恒福)이 짓고 신익성(申翊聖)이 썼으며 전액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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