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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합천 해인사

by phd100 2021. 10. 3.

 

합천 해인사(陜川 海印寺)

경남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순응(順應)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利貞)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決言大德)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海東) 제일의 도량(道場)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高麗八萬大藏經板)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가 장경각(藏經閣)을 확장·개수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願力)으로 금당벽우(金堂壁宇)를 이룩하게 되었다.

제9대 성종(成宗)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의 3층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다. 특히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 및 석조(石造) 여래입상(보물 264)은 유명한데, 불가사의한 일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사 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도 있다.

 

통도사(通度寺:佛寶寺刹)·송광사(松廣寺:僧寶寺刹)와 더불어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하나로 법보(法寶)사찰로 유명하다. 현재는 불교학원인 해인총림(海印叢林)이 있어 많은 학인(學人)들로 붐빈다. 말사(末寺)는 150여개에 달하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白蓮庵)·홍제암(弘濟庵)·약수암(藥水庵)·원당암 등이 있다.

 

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 기초하였다고 전해진다.

해인삼매는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해인사 삼층석탑<정중탑>

해인사의 대적광전 아래 서 있는 석탑으로, 넓은 뜰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 일명 ‘정중탑’이라고도 불린다.

정중삼층석탑은 불상을 모신 탑이다.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며 해인사 창건 당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구광루와 대적광전을 잇는 선에서 약간 동쪽으로 비켜 세워져 있으나, 마당과 주변 전각들로 구성된 공간을 자연스럽고 율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석등과 석탑사이의 바닥돌은 멀리 부처님을 향해 이마를 땅에 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는 정례석이다.

 

탑은 3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이다. 원래 기단은 2층이었으나 1926년 수리시에 기단을 넓히고 한 층을 더 얹음으로써 통일신라 탑의 전형인 2층 기단의 모습을 깨뜨렸다. 위층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 탑신부의 각 층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가 약간 위로 들려 있다. 또한 각 지붕돌에는 네 귀퉁이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종이 매달려 있는데 이것은 후대에 와서 설치한 것이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받침), 보륜(수레바퀴모양 장식), 보주(구슬모양 장식) 등이 차례로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1926년 6월 탑의 수리할 때 위층 기단에서 아홉 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이 불상들은 수리 후 다시 석탑 안에 넣어두었다. 탑은 원래 2층 기단이었다는 점과 5단의 지붕돌받침 등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기단의 가운데기둥 조각을 하나만 두는 등 각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해인사 석등

해인사 대적광전 아래쪽의 3층 석탑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으로, 불교의식을 행할 때 불을 밝혀두는 기구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높직한 4각 바닥돌은 한 면에 2개씩의 안상을 새겼다.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6㎝가량 층을 둔 다음 8잎의 연꽃무늬를 두었다. 가운데기둥은 후대에 와서 새로 만든 것으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윗받침돌은 아래와 대칭되는 모습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8각 화사석은 4면에 4천왕상(四天王像)을 도드라지게 새기고, 나머지 4면에 창을 뚫었다. 지붕돌도 역시 8각으로, 경사면이 움푹하여 처마도 곡선처리 되었다. 꼭대기에는 몇개의 보주(작은 공모양 장식)가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바닥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해인사 대적광전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은 2층 건물로 비로전이라 불리다가, 조선 성종 19년(1488)에 다시 지으면서 대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화재가 있어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지금의 건물은 순조 17년(1817)에 다시 지은 것을 1971년 대폭 수리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학사대 전나무

학사대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한다. 이 곳의 전나무의 나이는 1000년을 헤아리며, 높이가 19m, 둘레가 5.5m로 보기 드물게 오래 된 나무이다. 신라 말의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라의 멸망을 탄식하여 심은 나무로 선생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 놓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원경왕사비(元景王師碑)

고려시대의 고승 원경왕사를 기리고자 인종3년에 세운비다. 가야면 야천리 반야사 터에 있던 것을 1961년 해인사 경내로 옮겨왔다. 거북받침돌,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고,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1년에 승통이 되었다. 예종 때 왕사가 된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였다.

 

◇국사단(局司壇)

국사단은 국사대신(局司大神)을 모신 단으로서 국사대신은 해인사가 위치한 가야산을 관장하는 가야산신과 토지가람신을 가리킨다.

가야산신인 정견모주는 하늘의 신 이비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큰 아들 이진아시왕은 대가야국을, 작은 아들 수로왕은 금관가야국을 각각 건국하였다.

국사대신은 인간세상을 손바닥 보듯이 하면서, 신비스런 현풍을 떨쳐 해인사에 재앙을 없애고 복을 내린다.

가람을 수호하는 신을 모셧기 때문에 도량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해탈문

중문에 속하는 문으로써 일반 사찰의 불이문에 해당한다.

해탈문을 지나면 완전한 불법의 세계는 주 · 객, 세간과 출세간, 선과 악, 옳고 그름, 나고 죽음등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불이법문의 세계로써 삼존불을 모신 건물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일주문에서 해탈문에 들어설 때 까지 33계단을 거치는데, 도리천 곧 33천의 궁을 상징한다.

 

◇구광루

비로자나불이 화엄경을 일곱 곳에서 아홉 번 설법하실 때마다 빛을 내셧다는 뜻에서 이름 지어져 해인사가 화엄세계를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상조사의 법성게(法性偈:=海印圖)

의상대사(義湘大師)는 신라 때 원효스님과 쌍벽을 이루며 신라 화엄학을 창도하신 종주이다.

661년 당나라에 유학하여 화엄종의 제2조 지엄화상 문하에서 7년간 화엄학을 공부고, 7년간 공부한 화엄의 교학을 집대성하여 “화엄일승법계도기(華嚴一乘法界圖記)”를 저술하여 중국불교계를 놀라게 하였다.

 

“화엄일승법계도기”는《법계도》또는《법성게》라 하고《화엄경》의 광대무변한 참뜻을 포괄한 내용이라고 전해온다.

해인삼매의 교의를 하나의 도면 속에 압축하여 30구의 게송을 지었으므로 《법성게》라고 하는 것이다.

“법성게”의 30구 210자의 내용은 절대평등한 법성은 유정, 무정 등의 일체를 초월하여 깨친 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변하면서 인연을 따라 일체만유를 창조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와 많음이 장애함이 없고 크고 작음이 자재하여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법신이라는 뜻에서 끊어지지 않는 도면에 진리를 담은 것이다.

 

또한 “법성게”는 “해인도”라고도 일컬어지는데, 이는 의상대사가 귀국하여 영주의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종을 세우니 그 제자들이 해인게를 전해, 훗날 가야산의 해인사를 세웠다고 하는 유래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듯 의상대사의 “법성게”는 화엄의 원융무애하고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교의를 담고 있으며 한국 화엄학의 뿌리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식을 집행할 때 반드시 법성도의 원을 그리며 법성게를 주송하면서 대중에게 화엄의 진리를 회향하고 있다.

특히 의상대사는 한국 화엄학의 지주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화엄의 교의를 이론적으로 정립하였다.

화엄의 방대한 교의를 법성게에서는 심층세계에 대한 실천과 회향정신의 길로 다루고 있어 더욱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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