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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북

경주 굴불사지 백율사

by phd100 2021. 10. 6.

 

굴불사(堀佛寺) 사지

경주 소금강산에 조금만 오르면 맨 먼저 굴불사지 사면석불을 만날 수 있다.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석불 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굴불사(堀佛寺)는 백률사 아래에 있었던 신라 때의 절이다. 굴불(堀佛)은 '부처를 땅에서 파냈다'란 뜻으로 굴불사에 대하여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오고 있다

 

신라 제27대 경덕왕(景德王)때의 일이다. 왕이 백률사로 행차를 하는 길에 어디선가 염불소리가 땅속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경덕왕은 이를 괴상히 여겨 신하에게 땅을 파보라고 했다. 그런데 한참을 파들어 가니 부처님이 새겨진 바위가 떡하니 나왔다. 그래서 왕의 명에 의해 절이 세워지고 땅속에서 부처를 파내었다는 뜻으로 굴불사(堀佛寺)라고 했다.

 

굴불사지의 사방불은 바위의 사면에 부처를 새겼다 하여 사방불(四方佛)이라고 하는데 보물 제121호로 지정되어있다. 본존 높이 3.51m, 미륵보살상 높이 1.61m, 석가여래상 높이 1.36m, 약사여래상 높이 2.06m이다.

 

큰 사각 바위의 4면에 조각된 불상으로,

서쪽 면에 아미타삼존불,

동쪽 면에 약사여래좌상,

북쪽 면에 보살상,

남쪽 면에 삼존입상을 새겼다.

특히 북쪽 면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백율사>

백률사는『삼국유사, 三國遺事』 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楸寺)일 것이라 한다.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法興王) 14년(527)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殉敎)한 이차돈(異次頓)을 기리기 위한 절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多包)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전에 백률사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 금동약사여래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은 불국사(佛國寺)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遮那佛坐像)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金銅佛)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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