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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북

청도 대비사. 동산리 처진소나무

by phd100 2021. 10. 14.

 

청도 대비사(淸道 大悲寺)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대비사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567년(신라 진흥왕 28) 신승(神僧)이 창건하였다. 여기서 신승은 승려의 이름이 아니라 능력이 뛰어난 승려를 뜻하는 말이다. 창건 당시에는 소작갑사(小鵲岬寺)라고 하였다.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557년 한 신승이 운문산에 들어와 현재의 금수동(金水洞) 북대암(北臺庵) 자리에 초암을 짓고 수도하였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산과 계곡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들이 놀라 울었다.

 

신승은 이 때 이 산에 오령(五靈)이 살고 있음을 알고 7년에 걸쳐 5개의 사찰을 지었다. 산 중앙에는 대작갑사(大鵲岬寺), 동쪽에는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에는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에는 소작갑사(小鵲岬寺), 북쪽에는 소보갑사(所寶岬寺)를 각각 지었던 것이다. 이 중 천문갑사는 지금의 운문사(雲門寺)이다.

이때의 소작갑사(小鵲岬寺)가 바로 대비사이다.

 

 

600년(진평왕 22) 원광(圓光)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대비갑사(大悲岬寺)로 바꿨으며, 신라 말 고려 초 후삼국이 다툴 때 다른 4개 사찰과 함께 불에 탔다. 고려 인종(재위: 1123∼1149) 때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이 중창하였다. 본래는 박곡리 마을 내에 있었으나 학일이 중창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 불에 타자 금천면에서 성금을 모아 응교(應敎)가 재건하였다. 대비사라는 절 이름은 불교의 대자대비에서 유래한 말인데, 언제 대비갑사가 대비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향로전· 요사채가 있고, 산내 암자로 도솔암과 옥련암이 있다. 이 중 보물 제8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1685년(숙종 11) 중건했다는 기록을 담은 문서가 전한다.

 

향로전은 대웅전 오른쪽에, 요사는 왼쪽에 있다. 유물로는 절 입구 동쪽 산기슭에 소요(逍遼) 태능(太能: 1562∼1649)과 취운(翠雲) 학린(學璘: 1575∼1651)의 부도를 비롯한 11기의 부도가 모여 있다.

 

또한 대비사에는 운문산 억산봉우리 ‘깨진바위’와 밀양 ‘호박소’ 등과 연관 있는 이무기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여서 이미 알고 있는 이도 많을 것이다.

 

옛날 대비사에는 고승 한 분과 동자승이 함께 살고 있었다. 스님과 동자승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스님은 옆에 누워 있는 동자승의 몸이 마치 냉수목욕을 한 것처럼 차갑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다음날 자는 척하면서 동자승의 동태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방을 빠져나간 동자승이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날 밤 살며시 동자승의 뒤를 밟은 스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절 가까운 곳에 있던 연못으로 간 동자승이 옷을 벗고 들어가서는 이무기로 변신, 유유히 헤엄을 치며 노는 것이 아닌가.

또 이무기는 스님이 지켜보는 것을 모른 채 연못에서 나와 운주산 너머 ‘이무기못 안골’로 가서는 빗자루를 들고 주변을 쓸어댔다.

 

결국 스님은 "네 이놈. 상좌야. 네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라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에 놀란 이무기는 슬픈 울음을 터뜨리며 날아올랐으나 오를 수 없었다.

이무기는 “아, 하루만 더 있으면 용이 되어 승천하는 1000년 동안의 염원을 이룰 수 있었는데…”라며 절 뒷산(운주산)의 정상(억산봉우리)에 있는 바위를 꼬리로 내려친 뒤 그 너머의 호박소(밀양)로 들어가 버렸다.

억산의 명물인 ‘깨진바위’는 바로 이 이무기의 꼬리가 만들어낸 자국이며, 운문사 위 ‘이무기못 안골’에 마치 빗자루로 쓸어 댄 것 같은 자국이 바위에 많은 것도 모두 그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淸道 東山里 처진소나무)

운문사로 가는 도로 옆 언덕 위에서 자라고 있는 청도 동산리의 처진 소나무는 본시 10여주가 같이 자라고 있었으나 이 한 그루만이 남았다. 나이가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3.6m, 둘레 2.04m이다.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져 있어서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늘어진 가지가 버드나무를 닮았다고 하여 유송(柳松)이라고도 한다.

옛날 어느 정승이 이 나무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큰 절을 하듯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서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나무 옆에는 고성 이씨의 무덤이 있어 이와 어떠한 관련이 있거나 신령스런 나무로 여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청도 동산리의 처진 소나무는 나무의 형태가 독특하며,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국도(國道)에서 8m 내외 떨어진 언덕 위에서 자라고 있으며 본시 10여주가 같이 자라고 있었으나 이 한 그루만이 남았다. 바로 옆에 고성 이씨(固城 李氏)의 묘(墓)가 있는 점으로 보아 도리솔의 한 나무로 보호되어 왔다. 바로 옆에 후손(後孫)이 살고 있지 않으나 옆 부락(部落)에서 살고 있는 석씨(石氏)가 묘역관리(墓域管理)를 하고 있다.

 

나무의 가지가 수양버들같이 처진다고 유송(柳松)이라고 부르고 있다. 언덕 끝에 서 있으므로 처진 가지가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인다. 처진소나무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서 극히 드물다. 소나무 숲 속에서 자라던 소나무의 가지가 옆에서 자라는 나무에 눌려서 처지기 시작한다고도 보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다른 가지에 눌렸을 때 그늘이 심하면 살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살아 남을 수 있을 만한 정도의 압박이 가해졌을 때 생길 수 있으니 귀한 존재의 하나이다. 옛날 어느 정승이 이 앞을 지나갈 때 갑자기 큰절을 하듯이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서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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