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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북

김제 금산사

by phd100 2021. 10. 19.

 

모악산 금산사(母岳山 金山寺)

靑山은 발아래 넓은 들판을 키우고

들판은 가슴속에서 山을 그리워하며

들판은 어머니(山)의 품안에서 자란다.

모악산과 호남평야, 평평하게 넓은 들판에 갑자기 둥글고 밋밋하게 솟은 산, 이 산아래에는 모두 ‘金’字로 시작되는 고을 들이 있다. 금평(金坪), 금산(金山), 금구(金溝), 김제(金堤) 등등이 그렇다.

이곳은 예로부터 금(金)이 많이 나오던 곳으로 구전에 의하면 모악산 아래에 사람의 신체 일부와 똑같은 금덩어리가 땅에 흩어져 묻혀 있었는데 머리와 팔, 다리부분은 일본인들이 찾아 다 캐가고 이제는 몸통부분만이 어딘가에 남아 있어, 그곳을 찾지 못하게 지명의 첫 글자에 금(金)을 넣어 부르게 하여 지금까지 내려온다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옛 부터 모악산 골짜기에 돈 벌러 들어갔다가는 빈손으로 나온다는 얘기가 있어, 그저 사람은 욕심없이 살다 빈손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 甑山大道敎의 교주)도 나이 서른하나에 모악산에 들어와 삼라만상의 도를 깨우쳤고, 녹두장군 전봉준도 감수성 많은 유년기와 꿈많은 청소년기를 이 곳 모악산에서 보냈다.

한가지 기이하게도 맞아 떨어져가는 사실이 있으니, 강증산(姜甑山)에게 제자들이 후천개벽시대(後天開闢時代: 지금의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가 언제 오느냐고 물었을 때 “제비봉(帝妃峯: 모악산 입구 금평저수지 동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모악산을 배(船)로 보았을 때 돛대에 해당되는 봉우리)이 없어지는 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제비봉이 골재를 채취하는 사람들에 의해 허물어져 가고 있으니 머지않아 새로운 파라다이스의 세상이 올 것인가..

모악산은 풍수지리상으로 볼 때 연꽃을 가득 실은 배의 모양을 하고 있어 중생을 반야선(般若船)에 싣고 서방정토(西方淨土)로 향해 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모악산 주위에는 용화세상(龍華世上)을 꿈꾸는 미륵계의 신흥종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金山寺는 母岳山(793.5m)에 있는 우리나라 굴지(屈指)의 名山 大刹이다.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39번지.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했다고는 하나 확실치 않고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건(重建)하면서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후 1598년 임진왜란 때 왜병이 불을 질러 40여동이 불타 없어진 것을 37년 후인 인조 13년에 수문대사(守文大師)가 재건하였다.

금산사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목조 3층 건물인 국보 62호 미륵전(彌勒殿)이다. 건물속이 한통 층으로 되어있고 그 안에 거대한 부처, 11.82m인 주불을 비롯한 삼존미륵불이 서있다. 이 주불은 실내 입불(立佛)로는 동양최대라고 하며 양쪽에 서 있는 부처들도 높이가 29척이나 된다.

이 미륵전은 후백제의 시조 견훤(甄萱)이 맏아들 신검(神劍)에게 잡혀 이 미륵전 지하실 마루 밑에서 3개월 동안이나 유폐되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견훤은 신라장군 이자개의 아들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후백제를 세워 40년간 통치했었다. 견훤은 후백제가 몰락한 후 통분의 나날을 보내다 고려태조 19년(936)생을 마쳤다. 죽을 때 “내가 나라를 세웠던 完山이 그립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둬 완산이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자리 논산 (역에서 차로 10분거리)에 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묘 주변에는 번듯한 안내판 하나 없지만 묘 자체의 위용은 사뭇 당당해 찿는 이들에게 묘한 경외심(敬畏心)을 갖게한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해서 노주(露柱), 석연대, 혜덕왕사 진흥탑비, 5층석탑, 석종, 6각다층석탑, 당간지주, 심원암, 북강3층석탑, 석등, 대장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86년 대적광전이 원인 모를 화재에 타버려 안타깝다. 2002년 재건하였으나 예 같지 않다.

 

6각다층석탑 :

미륵전 앞 오른쪽의 점판암제 고려시대의 육각다층석탑. 높이 2.18m 점판암이란 점토가 석영(石英) 따위와 섞여서 굳어져 된 검은 빛의 수성암(水成岩)으로 돌비석, 벼루 따위의 재료로 쓰이는 돌인데 고려시대로 들어서면서 이러한 점판암으로 조성한 육각탑이나 다각탑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금산사 기록에 따르면 혜덕왕사가 금산사를 중창할 당시 원로대덕들의 주석처로 만들었던 봉천원(奉天院)의 정중탑(庭中塔)이었는데 정유때 파괴된 것을 인조때 금산사를 복구하면서 이곳에을 옮겨 놓았다고 한다.

 

석련대는 석조 연화 대좌를 줄여 이르는 말로, 불상을 올려놓는 돌로 만든 받침대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776년(신라 혜공왕 12)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를 법상종의 근본 도량으로 삼으면서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주성(鑄成)하여 같은 해 5월 1일에 3층 미륵장육전에 안치하였다고 하였다. 당시의 미륵상은 철조(鐵造)로서 금산사 석련대 위에 세워졌었다.

 

금산사에서 모악산 정상까지는 등산로로 3.3km의 거리이고, 주변에는 산장, 호텔, 식당, 주차장 등이 있어 휴식에는 큰 불편이 없다.

후회하지 않는 식당하나를 소개하자면 호남고속도로에서 금산사로 향할 때 처음 만나는 마을이 금산면 원평리이다. 이 원평리 시외버스 터미널에 위치한 대운식당(대운정육점 함께 운영)이다. 여유가 있으면 미리 고기를 예약하면 암소를 직접 도살 할 때 별도로 준비하여 올 때까지 보관한다. 예를 들면 안창살(암소 한 마리에 약 2인분 남짓 적출됨)은 예약하면 확실히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대운식당에서 꼭 먹어 봐야 할 것이 ‘육회’이다. 필자도 육회를 별로 좋아 하지 않은데, 여기서의 육회는 1인분을 거뜬히 맛있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처음 느끼는 맛이었다. 고기맛은 육회를 먹은 뒤 다른 고기를 먹어야 제 맛이 난단다. 대운식당전화(063-545-2395 : 011-9628-7517 석종한)

호남고속도로 금산 I.C.에서 금산사까지 약 7km로 도중에 있는 금평저수지는 낚시터로도 많이 이용되고, 금산사 2km 못미쳐에서 712번 지방도를 따라 3km쯤 가면 또 하나의 신라 고찰(古刹) 귀신사(歸信寺)가 있다. 신라 30대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했다. (서울에서 금산사까지 3시간정도)

 

잠 못 이루는 자에게는 밤이 길 듯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 듯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아~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 부처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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