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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북

남원 광한루원

by phd100 2021. 10. 19.

 

광한루원(廣寒樓苑)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조성한 대표적 관아정원이다. 경복궁 경회루의 지원(池園)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과 함께 한국의 정원을 대표할 만큼 우수하며, 전체적으로 광한루원의 구성은 넓은 은하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하고 있어, 독특한 이런 조경양식의 표본이다.

선조 때 전라도 관찰사 정철이 광한루 앞에 요천의 물을 끌어들여 은하수를 뜻하는 못을 파고, 네 개의 반월형 교각으로 된 오작교를 놓아 정원을 조성하였다.

 

광한루 (廣寒樓)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인 광한루는 조선 세종 때 황희가 처음으로 이곳에 광통루(廣通樓)를 지었으며, 인간이 신선(神仙)이 되고픈 이상향(理想鄕)인 하늘의 옥황상제(玉皇上濟)가 살던 월궁(月宮)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지상에 옮겨 놓은 것과 같다하여 정인지가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것에 연유하여 광한루가 되었다.

 

궁궐에는 경회루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불러지는 데 그 중 으뜸은 광한루라 했다.

1434년(세종16)에 중건하고, 정유재란 때 없어진 것을 1638년(인조 16)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연못에 면하여 남향으로 세웠으며, 툇마루 주위에 난간을 돌리고 기둥 사이에는 모두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달아 여름에는 개방하도록 하였다.

 

호수

광한루원에는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호수에는 송강 정철이 관찰사로 있을 때 그는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본떠 세 개의 인공섬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편에는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로 구성되어 있다.

봉래, 방장(方丈亭이 있다) 두 섬에는 대나무와 배롱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작은 정자인 영주각(瀛洲閣:정조19년에 부사 이만길이 재건하고, 편액을 걸었다)을 세웠다.

 

★호수는 현재 상태에서 1:2의 비를 갖는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그 안에 3개의 섬이 동서방향으로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호수 북쪽 광한루 앞에는 돌자라가 남동방향으로 향해 놓여 있어 신선사상에 입각한 지킴이의 기능을 갖고 있어 전체적으로 광한루원의 구성은 넓은 은하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춘향전이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 진 뒤 1920년 이후 광한루원내엔 춘향전과 관련된 시설이 들어섰다.

 

오작교는 평교지만 교각의 형태가 원형으로 된 홍예교로 누정원을 구성하는 구성물의 일부로 처리되어 있는데 직선적이고 평탄한 노면에 율동감을 주어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요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호수에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고이는 돌인 지기석을 넣고 견우가 은하수를 건널 때 쓰는 배인 상한사(上漢沙)를 띄워 칠월 칠석의 전설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상징한다.

 

완월정 : 달을 지향하며 즐기기 위하여 만든 누각. 물 위에 떠 있는 이곳은 그래서 동쪽을 향한다. 이곳은 춘향제 행사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월매집 : 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던 부용당과 행랑채를 재현해 놓은 곳 당시의 생활도구와 밀랍인형이 전시되어 있어 더욱 사실감이 있다

 

춘향사당 : 일부종사했던 춘향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주위를 감싸고 있는 대나무가 춘향의 절개를 더욱 높이는 듯 하다.

 

청허부(淸虛府) :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의 출입문을 일 컷는 것으로, 남원 광한루원의 출입문으로 지상과 천상의 경계를 상징한다.

 

부속건물

광한루 동쪽에는 가로·세로가 2칸, 1칸인 부속건물이 있는데, 주위에는 툇마루를 돌리고 난간을 세웠으며 내부는 온돌방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 얹은 주두(柱頭)로 도리를 받고 창방(昌枋)은 생략하여 기둥머리 좌우에서 첨차(檐遮)가 나와 도리 밑의 장설(長舌)을 받치게 한 간단한 구조이다. 정조 때 증축하였다.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황실에서 지은 곳이며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 촉석루는 안타깝게도 6ㆍ25 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년 5월경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정원의 사상적, 역사적 배경은 자연적 사고방식 즉, 신선사상과 음양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 또는 수심양성의 도로 표현되는 송, 죽, 국, 매의 사절과 유교의 선비사상이다. 그중에서도 신선사상이 가장 크다고 불 수 있으며 이러한 신선정원의 양식은 생성시기인 조선시대의 제도적인 원인에 기인하여 유교문화가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형성되었다.

옛적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성에 세심한 배려를 하여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이 땅에 건립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은 분합문을 달아 열어놓고 지내어 건물이 탁 트이게 처리하였다.

또한 누원 앞에 호수는 은하를 상징하도록 하여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곳처럼 꾸며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고 한 광한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정원은 인공적인 멋을 가리지 않고 토양 구릉을 자연 그대로 살렸으며, 드문드문 자연석 고인돌을 구릉에 그대로 놓아 작은 언덕 공간처럼 하고, 정원수도 전지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하여 흡사 숲속에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연유로 건축기술과 사회상, 생활, 이상향 등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명승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현재의 누원 모습은 누원 근처 시장이 불타고 옮긴 것을 비롯하여 수차례 확장 사업을 하면서 차례로 근처의 부지를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광한루원<廣寒樓苑>은 근세 전기에 조영된 대표적인 정원으로 꼽히고 있는데 한국의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데 모체가 되고 있으며 정원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질적으로 우수하고 통시대적 문학사에 나타난 정원양식을 표현하고 있어 전통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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