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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강원

인제 설악산 봉정암

by phd100 2023. 12. 14.

 

봉정암(鳳頂庵)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 암자인 봉정암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雪嶽山:1,708m) 소청봉 북서쪽에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통도사,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의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우리나라 유일하게 암자에 모신 적멸보궁으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 유명하다. 적멸보궁으로 불리는 주불전은 원래 오층석탑 아래에 있었으나, 오층석탑이 보이는 맞은편 언덕으로 새로 불전을 지어 옮겼다.(구법당, 신법당으로 구분한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 · 아난봉 · 기린봉 · 할미봉 · 독성봉 · 나한봉 · 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현존하는 전당은 적멸보궁 법당과 요사채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봉정암 오층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이 탑은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봉정암은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율사가 중국 당(唐)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봉정암은 소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정암을 탐방하려면 인제쪽의 백담사를 출발하여 영시암과 구곡담 폭포를 지나서 4시간 30분 이상 먼 길을 걸어 봉정암에 도착할 수 있다. 가는 길에는 전설의 암자, 오세암도 있다.

 

 봉정암에서는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며 요사채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워낙 깊은 산중에 있어 백담사에서 반나절 이상을 걸어야만 봉정암을 찾을 수 있는 까닭에, 봉정암에는 신도들이 묵을 수 있는 여러 동의 크고 작은 요사채를 두었다.

일반적으로 설악산 대청봉 등산코스로 백담사-영시암-오세암-봉정암-소청-중청-대청-봉정암-쌍용폭포-백담사 원점회귀 코스가 잘 알려져 있다.

봉정암을 오르며 권금성, 내설악 운해 등 천상의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천당폭포, 천불동계곡 등 설악 사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산악인들 사이에선 설악산에서 가장 험한 능선을 꼽으라면 용아장성을 얘기한다.

‘용아장성은 마치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20여개의 암봉이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아장성 구간은 산사람들이 평생 한번쯤은 꼭 종주하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 봉정암은 그 이빨의 잇몸쯤 자리 잡고 있다고 산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중국 오대산에서 해동의 불법홍포(佛法弘布)를 부촉(咐囑)받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부처님 정골사리를 안치할 성스런 땅을 찾아 나선 곳 중 한 곳이 봉정암으로 통도사,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와 함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는 한국의 5대 적멸보궁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봉정암을 지키면서 부처님 정골사리(正骨舍利 또는 眞骨舍利)를 1300여년 동안 품은 사리탑이 봉정암 오층석탑이다.

 

 여기에 전해지는 전설로는, ‘중국 오대산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지고 온 자장율사는 금강산에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 중에 봉황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고, 자장율사는 봉황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설악산 봉우리 위를 날던 봉황새는 부처님 닮은 바위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자장율사가 보니 부처님 이마 부분에서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바위아래 사리를 봉안한 뒤 5층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었다. 부처님 이마로 봉황이 사라졌다 해서 봉정암(鳳頂庵)이라 했다’.

 

<봉정암 오층석탑(鳳頂庵 五層石塔)>

봉정암 오층석탑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해발 1244m 높이에 위치한 봉정암의 경내에 있는 높이 3.6m 규모의 석탑이다.

만해 한용운이 쓴 『백담사사적기』(1923년)에 수록된「봉정암중수기」(1781년)에 따르면 신라때 자장율사가 당에서 얻은 석가불의 사리 7과가 이 탑에 봉안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봉정암은 통도사,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와 함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있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이다.

그러나 탑의 형식상 그 구성이 단순하고 탑신의 체감률도 적은 편이며 옥개석에 구현된 양식 등은 고려후기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그 조성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석탑은 기단부 · 탑신부 · 상륜부의 3부분이 조화를 이루며 건립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탑은 거대한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아 바위 윗면을 치석(治石)하여 2개의 단을 만들고 그 주변에 16개의 연잎을 돌려 기단부를 조성하였다.

그 위에 올려진 탑신석[몸돌]은 3층까지 모서리에 우주(隅柱, 기둥)가 모각되어 있고 탑신석 위에 올려진 두꺼운 옥개석[지붕돌]은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하며 끝부분만 살짝 반전된 형태이다.

옥개석 아래로는 각 층마다 3단의 옥개받침이 두껍고 투박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옥개석의 윗면에는 탑신받침이 새겨져 있다. 상륜부는 연꽃 봉오리 혹은 보주 형태의 석재를 올려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봉정암 오층석탑은 기단부를 생략하고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았다는 점,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라는 점 그리고 고대의 일반형 석탑이 고려후기에 단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불교건축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 여기서 불교설화로 한번 쉬어가실까요.

<거위비구의 자비심>

『옛날 어떤 스님이 행걸(行乞)을 나갔다가 보석구슬 꿰는 사람의 집 앞에 이르렀다.

마침 그 구슬 꿰는 사람은 임금님의 명령에 따라 보석구슬을 뚫고 있었는데 스님이 들어가자, 주인은 스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자 안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입은 가사가 붉은색이라 그것이 구슬에 반사되니 마치 구슬이 붉은 고기덩이 같이 광채를 발했다. 옆에서 모이를 주워 먹던 거위가 그것을 보고 고기인 줄 알고 그만 삼켜 버렸는데 주인이 나와서 보고 스님께 말했다.

「여기 구슬이 없어졌는데 못 보셨습니까?」

그러자 스님이 사실대로 말한다면 주인은 곧 거위를 죽일 것이라, 스님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보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마침내 주인은 화를 내어 스님의 옷을 벗겨 털어보고 또 입, 귀, 마지막엔 항문 속까지 탐색하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으니 이는 필시 스님이 어디 숨겨 놓은 것이라 하여 작은 방에 가두고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패주었다.

코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와 온 집안에 낭자하자, 거위가 그것을 쪼아 먹으러 왔다가 그만 화난 주인의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스님은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주인에게 물었다.

「거위가 죽었습니까?」

「지금 거위가 죽고 산 것이 무슨 상관인가?」

「아니 죽었다면 할 말이 있습니다.」

「죽었다.」

비로소 스님은 정신을 가다듬고 염불을 외우면서 전후 사실을 소상히 말했다.

 

구슬 꿰는 사람은 너무도 기가 막혀 사과할 겨를도 없이 곧 거위의 배를 갈랐다. 과연 그 속에서 마니보주(摩尼寶珠: 용의 턱 아래나 용왕의 뇌에서 나왔다는 보물 구슬)가 나왔다.

「스님도 어쩌면 그것을 보고도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내일 아침이면 똥 속에 묻어 나을 것 같아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 놈이 저보다 먼저 죽었군요.」 하고 구슬처럼 굵은 눈물을 흘렸다.

 

이 두개의 설화는 불제자로서 계율을 굳게 지켜 일반 사람들의 존경하는 대상이 된다면 또한 사람들이 그의 스승까지 아울러 존경한다면 사실과 금계(禁戒: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되는 계율)를 호지(護持)하기 위해선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라도 끝내 그 금계를 훼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하여 전해진 것이나 이 속에는 불교윤리의 위대성이 내포되어 있다.

모든 세상의 윤리가 인간 상호간의 선악관계를 주로 다루는 데 비하여 불교윤리는 인간의 세계를 훨씬 벗어나 일체 유정은 물론 내지 초목동식물에 이르기까지 그 자비가 미치고 있음을 은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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