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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강원

양양 낙산사 에필로그(epilogue)

by phd100 2023. 11. 22.

1. 일주문. 홍예문

 

 

2. 천왕문 낙산배 영생벚나무

 

 

3. 빈일루 범종루

 

 

4. 응향각 대성운 7층석탑

 

5. 원통보전(수미단,후불탱화,교룡)

 

6. 낙산사원장(洛山寺垣墻)

 

7. 해수관음보살입상

 

8. 의상대

 

9. 홍련암

 

 

10. 보타전

 

 

11. 지장전 관음지

 

 

<낙산사 완전정복(둘러보기)>

 

1. 낙산의 명칭과 일주문

낙산사 정문 주차장에서 맨 처음 만나는 사찰 건물이 일주문이다. 일 주문을 지나 50m쯤에는 지그재그 데크길이 있어 오르기엔 편하다.
부처님에게 가는 지그재그 길이 우리의 인생길과 같이 일직선 외길이 아님을 보여준다. 갈등과 반목이 점철되고 사랑과 미움이 혼재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오기로 마음 먹었다면 쉽고 편한 길임을 알게 해 준다. 정말 오르기에 편하고, 나무숲의 향기가 좋다.

 

데크길이 끝나 도로에서 조금 가면 왼쪽으로 작은 데크길이 나온다.

2005년 낙산사가 화마에 피해를 봤을 당시의 시진과 잔해를 모아 둔 곳이다.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공간이다. 특히 용융된 종은 의상기념관에 전시하고 있어, 당시의 참혹함을 보여준다. 의상기념관은 의상대 앞에 있으니 놓치지 말고 관람하시길....

 

<참고>☆ 일주문(一柱門)

사찰에 들어서는 삼문(三門) 중 첫 번째의 문 으로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울타리와 같이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건축양식은 주로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에 많은 현판(懸板)들을 걸어 사찰의 격(格)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래 범어사(梵魚寺), 양산 통도사(通度寺), 합천 해인사(海印寺)의 일주문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중 통도사의 경우 문의 중앙에 ‘영축산 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는 현판을 걸어 사찰의 명을 밝히고 좌우기둥 주련에는 ‘佛之宗家(불지종가)’와 ‘國之大刹(국지대찰)’이라는 주련(柱聯)을 붙여서 이 절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2. 홍예문(虹霓門)

무지개 홍(虹), 무지개 예(霓). 아치형 모양으로 쌓은 돌이 26개이다. 세조가 낙산사를 방문 할 당시 강원도 고을의 수가 26개 였다고 한다. 각 고을에서 한 개씩의 돌을 가져다 쌓았다고 한다. 지금은 시·군이 18개이다.

여기서 잠간, 대부분 사찰은 일주문으로 정문을 만드는데, 우리나라 전통 사찰 중 낙산사 만이 출입구가 홍예문으로 정문을 만든 이유가 뭘까?

그것은 낙산사의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보통의 사찰은 산허리, 골짜기를 배경으로 배산임수의 풍수도 한목해서 부처님의 안식처로 모시기 위해서 사찰을 세웠다.

그런데 낙산사의 원통보전은 사찰의 본전 중 거의 유일하게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낙산(보타낙가산)이 관음성지의 성(城)이라고 생각한 세조는 관세음보살의 세계를 만들고자 불성(佛城)을 쌓은 것이다. 세상의 성문은 거의 모두 홍예문이기 때문에 여기 觀音城도 홍예문이다.

 

부처님을 지키고자 한 세조의 불심(세조의 불심은 오대산 상원사에서에서 극에 달한다)이 이토록 장엄한 관음세상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아수라(阿修羅)의 귀신도 들어오지 못하는 석문 홍예문을 쌓아 무지개가 늘 떠 있는 제석천(帝釋天)이 지키는 부처님의 세상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3. 천왕문

홍예문을 지나 사천왕문으로 가기 전 오른쪽에 조그마한 안내비석이 있다. 바로 여기가 낙산배의 시조목이 있는 곳이다.

 

<낙산배>

양양지방은 태백산맥의 급경사이면서 동해와 접하는 해안에 위치하여 해양성 기후에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 동해에 면하고, 또 겨울철에는 서쪽의 태백산맥이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는 한편 푄 현상이 일어나, 기온은 같은 위도상의 서해안에 비해 연평균 2.5℃, 1월 평균 3℃나 높다. 또 가을에 강수량(1,131mm)이 비교적 많은 것도 특색이다.

 

특히 낙산배는 배(낙산배) 중앙 석세포(石細胞)가 작아 배의 육질이 크고, 부드러우며 과즙액이 많으며 당도가 높다. (2007 농식품파워브랜드대전 우수농산물 선정)

 

조금 더 가면 왼쪽 수로에 50cm 높이로 쌓은 축대 돌에 예쁘게 조각 된 코끼리, 새, 다람쥐를 만나게 된다. 축대하나라도 허투루 쌓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나치기 쉬우니 축대돌을 잘 보아야 한 마리씩 찾을 수 있다.

 

사천왕문안에 봉안된 사천왕은 권선징악적인 역할을 하는 분이다.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고,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준다고 한다, 호법신의 역할을 하면서 도량을 보호하고 있다. 사천왕문의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꾸며졌으며, 칸마다 학과 연꽃을 비롯하여 목탁, 북, 바라, 정병 등이 그려져 있다.

이 사천왕문은 2005년 낙산사 대 화재 때에도 건재하였다고 한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왼쪽편에 용과 여의주를 든 서방광목천왕(좌측)이 있다. 서방광목천왕은 왼손에 여의주를 오른손엔 용을, 서방을 관장하는 광목천왕이 동자의 모습을 한 악귀를 오른발로 짓밟고, 왼발 옆에는 권속 부단나가 광목천왕을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삼지창과 왼손에 보탑을 든 북방 다문천왕(우측)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 편에는 동방지국천왕(좌측)이 비파를 들고 있다.

동방을 관장하는 지국천왕이 탐관오리를 왼발로 깔아뭉개고, 오른발 뒤에서 권속 비사사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남방중장천왕(우측)은 긴 칼을 들고 있다.

 

4. 영생불멸(永生不滅)의 벚꽃나무

사천왕문을 지나면 오래된 벚꽃나무가 길 오른편에 있다. 2005년 대형 화재 때에도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꽃을 피우고 있다. 영생불멸의 나무라고 불리운다. 어루만져 주면 끈질긴 생명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만진 흔적이 있다.

 

5. 빈일루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서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영접한다는 의미를 지닌 누각이다. 가산 진관스님께서 현판을 쓰셨다.

지금은 낙산사를 찾는 참배객에게 여름엔 시원한 음료수 한잔을, 겨울엔 따뜻한 차한잔을 무료로 셀프 대접하고 있다. 떠오르는 태양만 영접하는 곳이 아니라 지친 중생을 부처님에게로 영접하는 첫 장소이다.

 

6. 범종루(泛鐘樓)

범종루에는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다. 낙산사 범종은 2개가 있는데, 1개는 현재 타종을 하고 있는 종이고, 다른 1개는 낙산사화재 때 종이 용융되어, 그 모양과 같은 종을 만들어 타종하는 범종 옆에 함께 달아 전시하고 있다. 용융된 종은 의상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범종루의 범은 불경 범(梵)자로 쓰는데, 낙산사는 뜰 범(泛)字를 쓴 범종루(泛鐘樓) 현판을 걸은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종소리가 동해를 울려퍼져 해수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부처님을 찾아서. . .>

부처님을 찾기 위해, 산사를 찾아서, 내 마음을 찾아서, 여기까지 와서 온전히 다 찾진 못하였지만 마음은 평온하다.

불단에 향을 드리고 내 마음 낮추어 3배, 108배 바치고 나니 이제 마음 고요하다.

가벼운 마음과 발걸음을 돌려 찬찬히 부처님의 자락을 살피고 금당의 뜰안을 거닐어 본다.

 

그 뜰안에 부처님의 향기가 그윽하다. 금당 앞의 불탑(佛塔)하며 석등(石燈) 그리고 금당 내·외벽에 그려진 벽화(壁畵) 기타 여러 가지 불구들도 살펴보고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쳐 왔던 당간지주(幢竿支柱) 등도 살펴본다. 모두가 부처님을 위한 것들이다.

 

<불전사물(佛殿四物)>

범종루(梵鐘樓)는 범종각, 종고루(鍾鼓樓) 또는 종루, 종각(鐘閣) 등 다양하게 불린다(2층이면 루(樓), 단층이면 각(閣)으로 불린다). 큰 범종만 매달아 놓은 곳도 있지만 보통 불전사물(佛殿四物) 또는 법구사물(法具四物)이라하여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매달아 놓는다.

 

[범종(梵鐘)]

범종에는 악종(樂鐘), 시종(時鐘), 경종(警鐘), 법종(梵鐘), 홍종(洪鐘), 포뢰(浦牢), 화경(華鯨), 거경(巨鯨), 조종(釣鐘), 당종(撞鐘)등 종류도 많지만 크기에 따라서는 반종(半鐘), 만종(晩鐘)으로 구분하나, 절에 있는 종은 대부분 청동(靑銅)으로 만든 범종이다.

범종은 불교에서 쓰는 법구사물 중의 하나로, 그 소리로 중생을 제도한다.

범종은 다른 불구와 달리 그 규모가 크기 때문에 흔히 종각을 지어서 매달아 둔다. 그리고 작은 종들은 목조 현가를 설치해서 매단다.

멀리 산속에서 은은히 종소리가 들려 올 때면 온갖 마음의 때가 다 가라앉고 영혼은 보석같이 맑아진다.

작은 종은 절에서 대중을 모으기 위해서나 때를 알리기 위해서 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 의식에서는 지옥에서 고통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된다.

 

서양(西洋)의 종들은 종이 움직이면서 소리를 내지만 우리의 종은 움직이지 않고 커다란 종망치(당목)로 쳐서 울린다. 그러기에 소리가 웅장하고 여운이 길며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숨어든다. 산사(山寺)의 새벽 종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마음이 복잡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고요와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종은 대개 아침에 28추(樞) 저녁에는 33추(樞)로 하는데 특별히 108번을 칠 때도 있다. 이것은 108번뇌를 타파하기 위해 치는 것이며, 무간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치는 것이다. 지옥이 땅 밑에 있다 해서 대개의 종은 밑이 트여 소리가 밑으로 퍼져 내려가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종을 치면서 무상의 법문과 염불을 함께 하는 것은 종을 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받는 죄의 고통을 잠시나마 쉬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 참회(懺悔)하고 새로운 신심(信心)으로 지옥계(地獄界)를 벗어나라고 하는 바람에서 하는 것이다.

 

범종은 일명 경종(鯨鍾, 고래 경)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종의 꼭지에 장식되어 있는 용(이름은 포뢰)에 얽힌 전설과 관련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포뢰는 동해에 사는 고래를 가장 무서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래 모양으로 만든 당(撞)으로 종을 치면 포뢰 용이 놀라 큰 소리를 지르게 되고, 그 때문에 종소리가 커진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다. 〈삼국유사〉에서도, “…자금종(紫金鐘) 셋을 벌여 놓았는데, 모두 종각이 있고 포뢰(蒲牢)가 있으며 고래 모양으로 종치는 방망이를 만들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법고(法鼓)]

종각에 있는 큰 북을 법고라 한다. 법구로 쓰이는 여러 가지 불교 행사 때 쓰는데, 주로 아침 저녁에 올리는 예불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다.

특히 북을 치는 소리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닮아서 온몸을 힘차게 격동시켜 힘과 용기가 솟아서 그 소리를 듣고 온갖 축생(畜生)들이 제도를 받게 된다.

북은 부처님이 설법으로 중생의 번뇌를 격파하는 모습이 마치 대군(大軍)이 큰 북을 둥둥치며 적군을 물리치고 진군하는데 비유해서, 불타의 설법을 법고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법고를 두드리는 것은 중생의 번뇌를 모조리 격파하는 것을 뜻한다.

 

[운판(雲板)]

운판은 불교의식에 쓰는 불전사물(佛典四物)의 하나이며, 구름모양을 한 엷은 청동판을 운판이라 한다. 이를 두드리면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나는 일종의 낭만적인 악기이다. 이 소리를 듣고 공중에 이는 고혼(孤魂)과 하늘을 나는 조류계(鳥類界)의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목어(木魚)]

법구사물 중의 하나로 물고기 모양으로 목어고(木魚鼓), 어고(魚鼓), 어판(魚板)이라고도 하며, 누각에 걸어두고 두드리는 것이다.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배부분을 비워서 공동(空洞)을 만들어 나무막대기로 옆구리를 쳐서 소리를 내는데 스님들이 항시 몸에 지니는 목탁도 목어(木魚)에서 유래하였다.

둥근 통나무 속을 파내어 긴 입과 입 양끝의 둥근 두 눈을 만들고 속을 비게 하고 손잡이를 만들었다. 이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를 닮아 항시 깨어 수행하라는 까닭이다.

 

 

☆ 목어를 만들게 된 얘기로는 2가지가 있다.

 

1) 옛날에 한 스님이 스승의 말을 어겨 수행을 게을리하고 옳지 못한 짓만 하다가 죽었다.

그는 죽은 뒤에 이 세상에서 지은 업장으로 등에 한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생겨 난 물고기로 환생하여 바다속에서 사는데, 풍랑이 칠 때마다 나무가 흔들려 등의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는 심한 고통을 늘 겪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면서 참회와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 스승님이 배를 타고 그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다.

물고기는 스승 앞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스승은 이를 가엽게 여겨서 수륙재(水陸齊)를 베풀어서 물고기를 해탈하게 하였다. 이때 물고기 등에 심은 나무로 목어를 만들어서 절에 걸어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 전설이 전해져 온다.

 

2) 또 다른 얘기로는 백장청규(百丈淸規)에 따르면,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밤낮으로 쉬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 한다.

 

☆ 목어와 목탁의 유래가 되는 얘기로는 목어를 울리면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과 수중 고혼들이 제도된다고 한다. 목어의 형태도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형태에서 차츰 머리가 용을 닮아 용두어신(龍頭魚身: 용머리에 고기모양의 몸)의 형상으로 변하여 지금은 입에 여의주를 문 형태를 취한 것도 있다.

 

☆염주와 목탁의 얘기로는

염주(念珠)는 불·보살께 예배할 때 손목에 걸거나 손으로 돌리는 법구의 하나이다. 또 염불하는 수를 세는데 쓰기도 하는 염주는 2등분씩으로 줄여 54개, 27개의 단주(수주)로도 제작되고 있다. 108개로 한 것은 108번뇌의 끊음을 표현한 것이고 54개로 한 것은 보살 수행의 계위인 43선근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를 나타내고 또 절반인 27개로 하는 것은 소승의 27현상을 상징한다고 한다.

 

목탁 (木鐸)은 불교의 여러 의식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며 가장 스님 가까이에 있는 불구(佛具)가 바로 목탁(木鐸)이다. 목탁은 불전사물(佛展四物)의 하나인 목어(木魚)에서 유래하여 그 모양 또한 물고기를 형상하고 있다.

다만, 둥근 몸통에 긴 입과 입 양끝의 둥근 두 눈을 파내어 속을 비게 하고 손잡이를 만들어 두었다. 항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를 닮아 항시 깨어 수행하라는 까닭이다.

또한 그 속이 비어 있음은 공한 마음으로 공한 기도를 울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참고>불전사물과 사물놀이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 불전사물은 인간과 가죽을 가진 들짐승, 하늘을 나는 날짐승, 물 속에 사는 물짐승 등 모든 생명을 구제하는 소리를 내는 불교의 법구(法具)라면,

1978년 처음 등장하여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우리의 타악기 사물놀이는 가죽으로 만든 북과 장고, 쇠붙이로 만든 징과 꽹꽈리를 가리킨다. 이들 사물은 자연의 소리와 비슷하다. 북은 구름, 장구는 비, 징은 바람, 꽹과리는 번개를 의미하고 그 소리를 낸다.

 

사물놀이가 불전사물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뒤에 범패(梵唄)의 바깥채비 소리에 쓰이는 태평소·징·북·목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다시 절 걸립패의 꽹과리·징·장구·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편성에 따른 음악은 1978년 최초로 ‘사물놀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연주단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이들의 농악을 다루는 연주 기량은 아주 뛰어났고, 농악을 무대용 음악에 알맞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구성하였다. 그래서 농악의 생동하는 음악성과 치밀한 연주 기교는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고, 해외 연주활동을 통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7. 응향각(凝香閣)

빈일루 앞에 아름다운 문을 가진 응향각이 있다. 응향각의 문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모셔 놓은 장경각안에 있는 수다라장의 문을 본떠서 종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 응향각의 상량문에는 “불기 2552년 7월 초사일 진시 상량”이라고 적혀있고, 상량문 시작은 “龍(동해의 용)”자를, 끝에는 “龜(바다의 거북이)”자로 끝난다. 이는 화재를 예방하기위해 바다에 사는 동물을 쓴 글자이다. 응향각 문을 통해 원통보전이 보인다.

 

그러나 원통보전과 응향각 문은 일직선상에 놓여 있지 않고 동쪽으로 약간 벗어나 자리하였다.

그 이유는 악귀가 집안에 들어 설 때에는 일직선으로 본체까지 도착한다는 풍수설 때문에, 예부터 본체와 정문이 일직선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피치 못하게 일직선으로 배치 할때에는 중간에 작은 동산을 만들었다. 그래서 천왕문에서 본전까지의 모든 문의 배치는 일직선이 아니고, 약간씩 어긋나 있다.

 

8. 대성문(大聖門)

관세음보살님을 관음대성이라고도 하는데, 이 문을 통과해서 관세음보살님을 뵈러 간다는 문이다. 대성문 양쪽에는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다.

금강역사 두 분의 특징은 겉옷을 풀어헤친 모습으로 자유분방하다.

 

금강역사는 대체로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구실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 된 사적(事迹)을 알고 5백 야차신(夜叉神, 하늘을 나는 귀신)을 거느리면서 천불(千佛)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보통 사찰 문의 왼쪽에는 밀적금강(密迹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서 있다.

이 중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고 한다.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보통 밀적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나라연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흔히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아(噁)’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발음은 입을 열어야 소리가 난다. ‘훔(吽)’은 끝 글자로, 소리는 입을 다물어야 내는 소리이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의를 입지 않고 옷을 허리에 걸친 채 주먹을 쥐어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을 취하기도 한다.

 

9. 7층석탑

의상대사가 기도하던 중 파랑새가 해변의 굴속으로 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7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하여, 천룡팔부(天龍八部: 불국(佛國) 세계를 지키는 8명의 선신(善神)을 통칭하는 말)로부터 수정염주를 받고, 동해의 용(교룡)으로부터 여의보주를 받게 된다.

이 때 받은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하기위해 조성한 탑이다.

 

의상대사 앞에 관음보살님이 나타나서 “이 산의 정수리부분에 대나무 한 쌍이 있을 것이니 법당을 지어라” 하셔서 그 곳에 원통보전을 짓고, 그 앞에 3층 석탑을 지어 봉안하였다.

 

창건 당시는 3층이었는데 세조13년 1467년에 7층으로 조성했다.

탑의 맨 머리 부분의 찰주를 중심으로 원나라의 라마탑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래대로 보존되고 있다.

기단부는 정사각형의 바닥돌위에 밑돌을 놓고 윗면에 24잎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10. 원통보전

현재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관세음보살님은 창건 때 모셔진 분이 아니고, 6.25 이후 복원과정에서 8km 떨어진 영혈사에서 모셔온 관세음보살님이시다.

(* 영혈사는 양양군 설악산(雪嶽山)에 자리하는 고찰로, 원효 대사가 창건. 고려시대의 사적은 전하지 않지만, 조선시대에서는 한 때 영천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조선시대 후기에 지금처럼 다시 영혈사가 되었다)

 

현재 봉안되어 있는 부처님은 건칠(乾漆) 관음보살좌상이다. 건칠은 옻칠과 장지(壯紙)로 만들어진 관세음보살이다. 재질이 삼베, 종이여서 낙산사 화재 때도 가벼워서 쉽게 옮겨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머리에는 보관, 결과부좌, 하품중생인의 아미타수인을 하고 있다. 고려후기의 양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 초기 작품이다.

 

낙산사의 원통보전(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여늬 사찰의 금당의 본전과 달리 배산임수의 자리에 있지 않고, 낙산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음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

보통 일반 사찰은 아미타불이 계시는 서방정토를 나타내기 위해 웅장한 터를 잡고 그 곳에 아미타불을 모셔 오고 있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현신인 관세음보살은 서방정토처럼 화려할 필요는 없다. 일반 중생과 쉽게 친할 수 있는 낙가산 정도가 적당한 곳이다.

 

11. 관세음 보살님의 후불탱화

후불탱화는 주불로 아미타불이 계시고, 좌우에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8대 보살이 모셔져 있고, 사천왕, 범천, 제석천도 있다.

그리고 위쪽으로 16나한님도 볼 수 있다.

보통 불화(탱화)의 특징은 대부분의 보살님, 성현들은 정면, 또는 측면으로 서 계신다. 그러나 본존불은 항상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12. 수미단(須彌壇)

부처님께서 좌정하신 좌대를 수미단이라고 하는데, 유명한 수미단은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보물로 지정)인데, 그 수미단을 본떠서 만들어 졌다.

수미단은 상대, 중대, 하대로 나눠져 있는데, 하대를 보면 “키르티무카”라는 귀면상이 정면으로 있고, 교룡도 새겨져 있다.

중대는 또 다른 3단으로 되어 있는데, 1단에는 조류, 2단에는 물에 사는 짐승, 3단에는 네 발 달린 짐승이 그려져 있다.

 

13. 교룡(蛟龍)

원통보전 현판 아래 용이 한 마리 그려져 있다. 보통 용의 특징은 뿔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곳의 용은 뿔 대신에 혹을 갖고 있다. 이런 용을 “교룡”이라고 하는 데, 동해에 사는 용이다. 그래서 동해를 “교룡의 궁궐”이라고 한다.

 

의상은 의상대에서 기도, 참선 할 때 나타난 그 파랑새가 관세음보살이라고 여겨, 현재 홍련암이 있는 굴 바로 밖에서 7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해서 천룡찰부로부터 수정 염주와 동해 교룡(낙산사 원통보전 현판 아래 교룡을 그려 놓고서 원통보전 앞 3층 석탑을 지키고 있다)으로 부터 여의보주를 받게 된다.(여의보주는 원통보전 앞 3층 석탑에 봉안)

 

14. 낙산사원장(洛山寺垣墻)

낙산사의 원통보전(圓通寶殿)을 에워싸고 있는 조선 전기의 담장.

높이 3.7m, 길이 220m.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 담장 안쪽의 담벽은 기와로 쌓고, 바깥쪽은 막돌로 쌓았다.

 

법당을 향하고 있는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단의 장대석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다시 1단의 장대석 받침돌을 놓았다. 담벽은 강회진흙과 평와(平瓦)를 차례로 쌓아 담벽 전면에 기와로 가로 세로의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으로 둥근 화강석을 배치하여 단조로운 벽면을 장식하였다.

 

담장 바깥쪽의 벽면은 막돌로 벽면을 고르게 쌓고 돌과 돌 사이는 강회진흙으로 메웠다. 담장 위에는 기와로 지붕을 이어 담벽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돌과 기와와 흙으로 높고 정연한 담장을 쌓고 넓은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한 담장이다.

 

15. 해수관음보살입상

원통보전에서 오른쪽으로 해수관음입상을 친견하러 가는 문, 원통문이 있다. 이 문을 통과해서 해수관음상까지 길을 걸으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꿈의 길이다.

낙산사의 연혁이 1300년이지만, 해수관세음보살입상은 40년 정도이다. 높이16m. 전북 익산에서 화강암 750톤을 가져와 조성했다. 1977년에 조성. 조성당시는 동양최대 규모였었다.

 

관세음보살은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순례길에서 만나게 되고,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는 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관세음보살님은 중생들이 기도할 때, 음성을 세 종류로 분류하여 듣고, 그 형편에 따라 소원을 들어주시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님 입석대 아래 복전함 양옆에 비익조(比翼鳥)라는 새가 조각되어 있다. 경전에는 아미타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사는 새라고 한다.

암수가 각각 날개를 하나씩 가졌기 때문에 항상 붙어 있어야 살아갈 수 있고, 나를 수 있어 사이가 좋은 새라고 한다.

이 비익조를 만지면 좋은 연인을 만나게 되거나, 부부사이가 좋아 지고, 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맨 아래 복전함 밑에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산다는 삼족섬(三足蟾: 다리가 세 개인 두꺼비, 홍련암에도 있다)이 앉아 있다. 앞다리 2개, 뒷다리 1개로 뒷다리는 항문 쪽에 있다. 삼족섬은 항문이 없다. 주로 돈을 주식으로해서 먹기만 하고 배설을 못하니까, 체내에 돈이 쌓이게 된다. 이 두꺼비를 만지면 재물의 복이 있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16. 누구나 타종을 할 수 있는 범종

종은 세부분으로 나눈다. 맨위 굴뚝모양의 음통, 종을 치는 당목 부분이 닿는 당좌, 종 아래 움푹 패인 부분 움통(종의 울림소리가 종구에서 빠져나와 이곳에서 소리를 반사,여운을 길게 한다.)이다.

종의 맨위에 난 구멍인 음통은 종소리의 잡음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이 음통에 용이 한 마리가 있다.

용신은 9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울음소리가 큰 용이 포뢰(葡牢)이다. 또 포뢰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 고래이다. 그래서 종을 치는 당목(撞木)을 고래 모양으로 하거나, 고래 문양을 새겨 종을 치면 가장 큰 소리를 낸다고 한다.

종은 쳤을 때 처음 5초간 내는 소리를 타음, 5초에서 10초사이에 내는 소리를 원음, 10초 이상에서 내는 소리를 여음이라 하는데, 이 움통은 여음을 오래도록지속 될 수 있도록 하는 공명통이다.

 

<사찰에서 종은 몇 번 칠까?>

새벽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 범종을 울린다. 어느 사찰이던 회수는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아침에 28번의 종을 치는 것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수직적 28천’의

하늘에 각각 종이 울려 퍼짐을 기원하는 것이요, 저녁에 33번의 종을 치는 것은 도리천을 중심으로 ‘수평적 33천’의 하늘에 종소리 골고루 울려 퍼지게 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그러면 삼계 이십팔천과 도리천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하면

 

삼계 이십팔천(三界二十八天)은 중생이 근본무명으로 인하여 끝없이 생사를 윤회하는데 그 세계가 삼계로 나누어져 있다. 欲界(욕계), 色界(색계), 無色界(무색계) 이것을 세분하면 二十八天(이십팔천)으로 나누어진다.

- 欲界(욕계)는 사대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남증장천.

- 色界(색계)는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 소광천, 무량광천, 광음천, 소정천, 무량정천, 변정천, 무운천, 복생천, 광과천, 무상천, 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선견천, 아가니타천.

- 無色界(무색계)는 공무변천, 식무변천, 무소유천 등으로 세분된다.

 

그러면 33은 무엇인가? 욕계 6천중의 하나인 도리천의 33천을 상징한다. 도리천은 수미산의 정상에 있는 세계로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왕이 있는 선견성을 중심으로 사방에 8성씩 32성을 포함해 총 33성을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조석예불의 범종소리는 삼계와 도리천에 전해져

이곳의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스님께서 종치기를 끝냈다는 신호의 타종 방법은?>

 

17.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海水觀音空中舍利塔·碑)

낙산사 내에서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 이곳이다. 그래서 한적하다. 승탑(僧塔)이나 사리탑비(舍利塔·碑)에 관심있는 분은 한참이나 머물러도 지나가는 길손을 볼 수 없어 승탑형 불사리탑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襄陽 洛山寺 海水觀音空中舍利塔·碑 및 舍利莊嚴具 一括)은 낙산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승탑(僧塔)이다.

낙산사 공중사리탑은 예술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일급의 석조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건립의 절대연대가 1692년으로 밝혀져 비슷한 시기의 승탑을 비롯한 관련 석조물의 소중한 준거가 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매우 드물게 현존하는 이른바 승탑형 불사리탑의 새로운 예가 추가되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또 양식적으로나 세부에 있어서나 조선시대 왕릉의 장명등과 유사성이 다분하여 양자 사이의 교류 관계, 나아가 절집 석조물과 그 밖의 석조물의 양식적인 영향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

 

낙산사 공중사리비는 그 자체만으로는 조선후기 석비의 일반적인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중사리탑과 그 안에서 수습된 사리장엄구와 아울러 생각한다면 이 비의 가치는 배가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불사리를 모시려는 목적 아래 만들어진 일관 유물일 뿐만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기능과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문의 내용이 사리장엄구의 일부를 이루는 문서 내용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공중사리탑, 공중사리비, 사리장엄구가 이런 관계 속에 존재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공중사리탑에서 수습된 사리장엄구 일괄은 인위적인 손상 없이 처음 매납된 상태 그대로 수습되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그리하여 조선후기에 접어들 무렵까지도 사리병―금합―은합―동합의 순으로 매납용 사리기를 제작하여 그 안에 사리를 안치하는 전통적인 사리 장엄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리장엄구의 일부로 수습된 비단 보자기 11점은 그 양호한 상태, 색채의 선명성, 무늬의 다양성 등을 통해 우리나라 직물사 연구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이들 세 가지 유물, 즉 공중사리탑과 공중사리비와 사리장엄구 일괄은 관련 유물 가운데 어느 하나 결실되지 않고 고스란히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렇게 관련 유물이 갖추어진 형태로 전해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그러하다. 따라서 이들은 낱낱의 유물이 지니는 가치도 적지 않지만, 함께 보존되고 관리될 때 그 큰 의미가 있다.

 

18. 의상대(義湘臺)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동해 일출을 볼 수 있는 제3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관동팔경: 강원도 통천의 총석정(이북), 고성의 청간정과 삼일포(이북), 양양 낙산사 의상대·홍련암,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과 월송정>

 

671년 의상대사가 낙산사 창건 당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해안 암벽위에 머무르면서 기도·좌선하였던 곳으로, 원래는 작으마한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의상대사가 홍련(紅蓮) 속의 관음보살을 친견하여 “홍련암”을 지은 곳으로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의상대”와 “홍련암”은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상대에서 북쪽 해안절벽을 따라 멀리 홍련암이 보인다.

주변에 노송(老松)들이 자리하고 있어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떠오르는 일출 경관으로 유명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19. 홍련암(紅蓮庵)

낙산사 경내의 유일한 암자로 의상대에서 해안가 북쪽으로 300m 지점에 있다.

이곳은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기도 하던 중, 파랑새를 만났는데, 그 파랑새가 이곳에 있는 석굴안으로 들어갔다.

의상은 그 파랑새가 관세음보살이라고 여겨, 굴 바로 밖에서 7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해서 천룡찰부로부터 수정 염주와 동해 교룡(낙산사 원통보전 현판 아래 교룡을 그려 놓고서 원통보전 앞 3층 석탑을 지키고 있다)으로 부터 여의보주를 받게 된다.(여의보주는 원통보전 앞 3층 석탑에 봉안)

또 7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하던 중 마지막 7일째 된 날 동해바다에서 붉은 연꽃이 피어오르고 그 연꽃위에 몸을 드러내신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게 된다. 의상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홍련암이라하고, 관세음보살 좌상을 봉안하게 된다.

홍련암 벽화에는 관세음보살님, 파랑새, 붉은연꽃, 의상대사가 그려져 있다.

2005년 낙산사 대화재 때에도 바로 옆까지 불길이 왔었지만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으로 홍련암은 피해가 없었다.

 

20. 보타전(寶陀壂)

보타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이다. 보타전이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전설의 산인 보타낙가산에서 온 것이다.

낙산사의 보타전은 1991년에 짓기 시작하여 1993년에 완공하였다. 2005년 화재로 사찰이 큰 피해를 입었으나, 보타전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 불길이 닿지 않았다.

 

☆ 전각 외부에는 낙산사를 창건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의상(625-702)의 일대기를 그린 벽화가 있다.

☆ 전각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이 고통과 고난에서 중생을 구제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 불상들이 모셔져 있으며,

-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천수관음상을 비롯하여

- 천수, 성, 십일면, 여의륜, 마두, 준제, 불공견색의 7가지 모습으로 변신한 칠관음상,

-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 나타는 32개의 응신(32응신: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형상)

- 1500여 개의 관음상 등이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칠관음상을 봉안하던 날 밤에 하늘에서 풍악소리가 들리고, 청학 5마리가 날아올랐으며, 거칠던 동해바다는 조용해지고, 무지개와 같은 상서로운 기운과 밝고 환한 빛이 온 하늘에 가득했다고 한다.

 

21. 지장전(地藏殿)

어느 사찰이든 거의 지장전이 있다. 절을 찾는 신도들은 미래 극락세계를 희망하며 부처님을 찾기도 한다. 이런 염원에 답하기 위해 사찰에는 지장전을 만든다.

지장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가르치고 도와주는 지장보살을 모신 건물이다.

어두운 세계(저승)인 명부세계(冥府世界)의 왕인 염라대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 지옥에서 인간이 지은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인 시왕(十王)을 모신 곳이라 하여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49일까지 7일마다, 그 뒤 100일, 1년, 3년까지 총 열 번에 걸쳐 시왕들이 죄를 심판한다고 한다.

 

낙산사 지장전은 2012년에 신축한 건물로 6·25전쟁에 전사(한국군, 북한군, 중국군, 연합군)한 영령과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 돌아가신 어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 하고 선망부모의 재를 올리는 법당이다.

지장전은 앞면 5칸, 옆면 2칸으로 내부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있고, 그 양쪽으로 시왕을 봉안하였다.

지장보살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손에는 육환장☆을 들고 있다. 지장전은 죽은 이들이 지장보살과 시왕의 인도에 따라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건물이다.

 

(☆중생(衆生):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

☆도명존자(道明尊者): 우연히 지옥을 직접 본 후 지옥에서 본 것을 세상에 알린 스님

☆무독귀왕(無毒鬼王):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주는 귀신의 왕

☆육환장(六環杖): 스님들이 짚는 고리가 여섯 개 달린 지팡이. 석장錫杖이라고도 함. 스님들이 수행할 때나 길을 갈 때 짐승이나 벌레를 쫓거나, 민가를 돌며 탁발을 할 때 소리를 내어 알리기 위해 사용함.)

 

22. 관음지(觀音池)

보타전 아래 자리한 관음지(觀音池)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동해를 바라보고 서 있다. 낙산사 무료 茶 누각에서 아래로 보는 관음지는 관동 제일의 정원이다.

좌대로부터 6m 높이로 장엄하게 조성해 새로 모셨으며, 연못을 가로질러 참배로를 만들어 누구나 가까이에서 친견하고 참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오른쪽 수면위에 작으마한 포대화상이 바구니를 안고 있어 참배객에게는 동전을 던져 행운을 점치기도 한다.

 

주지스님은 “다리가 불편한 한 신도 분이 해수관세음보살상 보다 가까운 곳에 관세음보살님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서원을 말해 준 적이 있었다"며, “관음성지 낙산사를 찾는 모든 분들이 관세음보살에 참배할 있도록 새로 모셨다"고 한다.

 

주지스님의 인상 깊은 설법으로 내마음의 관세음보살님의 존재를 되새겨 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 마음에 관세음보살님이 없으면 관세음 보살님은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계시는 관세음보살님이나 법당에 계시는 관세음보살님이 관세음 보살님이 아니십니다. 내 마음 안에 관세음보살님이 진짜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여러분 마음에 관세음보살님을 품에 안고, 마음에 안고 함께 24시간을 살아가야 되고, 365일을 지내야 됩니다.”

 

<참고>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세자재보살(觀世自在菩)이라고도 부르며 불교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보살이다.

 

중생을 위험으로부터 구제하는 보살로 ‘모든 곳을 살피는 분’이나 ‘세상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졌다.

아미타불의 현신으로 보는 이의 정신 수준에 따라 33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반인에게 가장 친숙하며 널리 숭상된다.

 

팔리어경전을 신행(信行)의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대승불교의 보살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좌부(上座部)불교에서조차 숭배할 만큼 모든 불교권에서 가장 널리 숭앙받고 있다. 세상의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보살의 서원(誓願)을 가장 잘 보여준다.

관세음보살의 공덕과 기적은 〈관음경>, 〈법화경〉 등 많은 불교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화신으로서 이 세상에 나타나며, 이 때문에 쓰고 있는 보관(寶冠)에는 아미타불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는 석가모니불의 입적 이후부터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난파, 화재, 암살, 도둑, 사나운 짐승들에 의한 피해 등으로부터 세상을 지켜주며, 구제할 중생의 근기(根機:정신적 수준)에 맞추어 33가지의 몸으로 세상에 나타난다.

 

관세음보살은 무수하게 많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7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성관음(聖觀音):가장 단순한 형태로서 한 손에 연꽃을 든 채, 서 있거나 앉아 있다.

②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머리가 열 하나, 팔이 둘, 또는 넷인 모습을 하고 있다.

③ 천수관음(千手觀音):1,000개의 팔을 가진 모습을 하고 있다.

④ 준제관음(准提觀音):18개의 팔을 가지고 앉아 있는 가장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⑤ 불공견색관음(不空絹索觀音):올가미 밧줄을 독특한 상징으로 하고 있다.

⑥ 마두관음(馬頭觀音):사나운 표정을 한 말의 머리를 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말의 수호자로 부르는 하야그리바에서 나왔다.

⑦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6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여의주를 들고 있다. 이 가운데 성관음이 본신(本身)이며, 나머지는 변화신(變化身)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에서 전래된 관음신앙이 6세기 무렵에는 백제와 신라에서 뚜렷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백제에서는 독존적(獨尊的)인 관음신앙이 유포되었으나, 말기에는 관음상이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서 조성된 경우도 있다.

통일신라 초기의 관음신앙은 독존적인 관음신앙으로서 주로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현세적인 성격을 띠지만, 관세음보살이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돕는다고도 보아 정토신앙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나말여초(羅末麗初)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관음보살을 우위에 두는 신앙에서 벗어나 여러 구세신앙(救世信仰)의 하나로서 자리잡게 되었으며,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대중과 가장 친근한 신앙으로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 전래된 관음신앙은 특정한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일본 전역에 두루 퍼져나갔다. 호류사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관음상은 7세기에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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