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2
인천 차이나타운은 1호선 연장 인천역 바로 앞에 있다. 수인선을 타고서 인천역에 내리면 길 건너 바로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제물포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 (治外法權, extraterritoriality)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형성된 곳이다. 그리고 'China'라는 영어 국호를 쓰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이 마을은 큰 관계가 없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그저 한적한 해안가 어촌이었다. 조용하던 어촌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후반부터다.
강화도 조약에 의해 1883년 인천항이 강제 개항되고, 인천항을 통해 청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은 물론 서양 사람까지도 몰려들면서 세계 각국의 문화가 유입됐다. 구한말에는 일본인과 화교들이 섞여 살았고, 1945년 8.15 광복 이후에는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뒤 화교들이 주로 거주하면서 차이나타운으로 바뀌게 됐다.
인천에서 가장 먼저 근대 외국 문물이 도착한 지역답게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과 최초의 세관 등이 이 지역 부근에 있었다. 아울러 이 지역에 있던 중국요리 식당 공화춘에서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했다고들 한다.
인천 차이나타운 거주민들은 한국 여권과 중화민국 여권을 보유한 이중국적자나 한국 여권과 중화민국 여권 중 하나만 갖는 단일국적자의 비중이 높으며 중화민국과 관계가 깊고 중화인민공화국, 중국공산당은 아무 관계가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거리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가 아닌 중화민국의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다수 눈에 띌 정도인 데다, 간체자 간판이 하나도 없고 정자체 간판만 있다. 이와 같은 인식 개선 홍보와 노력으로 한국인들의 오해가 점차 풀려서 중화민국 출신의 한국 화교를 중국공산당과 엮는 경우는 없어졌다.
지금도 인천차이나타운에 공화춘이라는 식당이 있지만 그 공화춘은 1911년 개업한 공화춘이 아닌 판권을 구입하고 부지를 고친 공화춘이며 재한 화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 차이나타운에 큰 건물을 세워 영업 중인 공화춘은 원조 공화춘이 폐업한 후 한 사업가가 상표만 본따서 2004년에 개점한 곳이며 이런 사정을 아는 인천 토박이들은 절대로 그 가게에 가지 않는다.
진짜 공화춘 창업자 가문이 운영하는 가게는 인천역 건너편에 있는 신승반점이다. 1983년 원조 공화춘이 폐업하기 3년 전에 공화춘 주방에서 일하던 창업주인 우희광의 막내딸 우란영과 사위 왕입영이 독립하여 세운 가게가 신승반점이다.
현재 점포는 차이나타운 페루(牌樓) 바로 옆에 있으며 창업주의 외손녀 왕애주가 운영하고 있다. 수요미식회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며 찹쌀탕수육과 더불어 반숙 계란이 올려져 있는 유니짜장이 유명하다. 본점은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고 여의도, 신도림, 구로G밸리, 판교 등에 프랜차이즈 지점도 있다.
그러니까, 어찌됐던, 인천 차이나타운에 중국인들이 살게 된 지도 140년이 넘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색깔을 간직해오고 있다.
특히 양과 맛이 뛰어난 중국 음식은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불러들이고 있다. 1884년 인천에 청국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 상인과 노동자가 많이 유입되었는데, 이들에게 값싸고 간편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것이 짜장면이다.
산둥 지방의 토속면장에 고기를 볶아 손수레에 재료를 싣고 부둣가로 나가 직접 수타면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화교들이 캐러멜을 첨가한 한국식 춘장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짜장면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먹을거리만 있는 게 아니다. 개항 관련 자료 및 개화기 생활용품 등을 볼 수 있는 인천 근대박물관과 <삼국지>의 중요 장면을 설명과 함께 화폭으로, 또는 타일로 제작하여 장식한 삼국지 벽화거리, 중국에 가보지 않고서도 다양한 중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한중문화관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대부분 무료로 볼 수 있어 여행자들의 주머니 부담을 덜어준다.
또 이곳은 산책하기에도 좋다. 1888년 개항하며 조성된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에 올라서면 인천이 한눈에 보인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도 있다.
지금은 짜장면박물관으로 개관하고 있는, 구 공화춘 건물도 볼만하다. 이 건물은 짜장면의 역사를 거론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건물이다.
1905년 산동성에서 온 우희광은 인천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산동회관을 지어 간단한 음식점과 여관업을 운영한다. 산동회관은 이후 명칭이 공화춘으로 바뀌었고 중국 음식점으로 이름을 날렸다. 일부에서는 인천 짜장면의 시초가 이곳이라고도 하나 신빙성은 없다. 건물의 설립연도 또한 1905년이라고 하지만 수차례의 개보수를 거쳐 현재의 형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변의 설명에 의하면 40여 년 전부터 영업은 하지 않고 다만 우희광의 딸이 살았다고 한다.
◇황제의계단
인천 차이나타운의 대표 포토존 황제의 계단은 차이나타운에서 조성한 관광 체험형 계단으로 계단에 그려진 중국의 절경을 보며 복을 얻어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계단은 총 다섯 개의 테마로 되어 있다.
1층 왕의 길, 2층 황제의 알현, 3층 무릉도원의 여행, 4층 만리장성의 여정, 5층 도화원의 복숭아.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큰 대문인 4개의 페루가 있는데 황제의 계단을 오르면 이렇게 세 번째 페루인 선린문을 만날 수 있다. 선린은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자는 뜻이다.
붉은 기둥에 지붕을 얹은 커다란 페루 정말 화려하다. 다시 선린문을 지나면은 자유공원으로 가는 돌계단이 나오는데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 동상을 포함해 여러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선린문 뒤로는 삼국지 벽화 거리가 있고 송월동 동화마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해서 동화마을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 삼국지 벽화거리
우리나라 속 작은 중국은 그 중에도 부산 차이나 타운이 있고, 단연 돋보이는 곳이 인천 속 작은 중국’ 차이나타운이 있다.
중국 화교의 140년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인천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다. 차이나타운이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중산학교 담장에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었는데 바로 삼국지 벽화거리이다.
현재에는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차이나타운에서도 필수 관광코스로 유명하다. 삼국지 벽화거리는 길 양쪽 벽면에 나관중 원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80여 개의 중요 장면에 번호와 설명을 붙여 제작한 타일 벽화로 장식해 둔 거리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150m에 달해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좋으며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의 교육에도 좋아 주말이면 많은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삼국지 벽화 거리는 차이나타운 안에 있기 때문에 차이나타운을 전체적으로 같이 관광하면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淸·日 租界地 境界階段)
이 지역은 1883년 일본 조계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가 설정되는 경계지역으로 만국 자유공원으로 연결되어 계단과 조경이 마련된 공간이다.
약 120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본 조계지 경계 계단은 중앙에 석조계단이 형성되어 있고 양단을 중심으로 급한 경사인 점을 감안하여, 계단 층을 두고 조경식제공간을 마련하여 공간의 이용적 측면과 안전한 경관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유공원의 남서쪽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있는 계단을 중심으로 청국과 일본의 건물들이 확연하게 서로 다른 양식들의 모습으로 들어서 있었다. 계단을 바라보아, 왼쪽은 청나라 건축물, 오른쪽은 일본 건축물이 지어져 내려왔는데, 지금은 일본식 건축물만이 입구에 일부 남아 있다. 청·일조계지 경계계단은 계단 자체의 가치는 적으나 역사성 및 장소적 측면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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