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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남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by phd100 2015. 7. 6.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형식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건물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 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山亭)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茶山艸堂’이라는 현판은 김정희(金正喜)의 친필을 집자(集子)해서 목각한 것으로 유명하며, 경내에는 다산4경이라고 부르는 정석(丁石) · 약천(藥泉) ·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 다조(茶竈) 등 다산의 유적은 다산의 정갈한 낭만을 느낄 수 있는 풍경들이다

 

★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산. 다산은 원래 있던 연못을 크게 넓히고 바닷가의 돌을 주워 조그만 돌을 쌓아 석가산 이라고 하였다.

연못에는 잉어도 키웠는데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제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잉어의 안부를 물을 만큼 잉어들을 귀하게 여겼다.

신기하게도 다산은 잉어들의 행동을 보고 날씨를 알아냈다고 한다.

 

★ 정석(丁石)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

아무런 수식도 없이 자신의 성인 정(丁)자만 새겨 넣은 것으로,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약천(藥泉)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 약천. 바위틈에 물이 촉촉하게 젖어있던 것을 다산이 직접 파니 돌 틈에서 맑은 물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다산은 약천의 물을 마시면 "담을 삭이고 묵은 병을 낫게 한다."고 기록하였다.

★ 다조(茶竈)

뒷담 밑 약천의 석간수(石澗水)를 손수 떠다가 앞뜰에서 차를 달이던 청석(靑石)으로 <다조>라는 자작시에 이것의 아름다움을 잘 설명하고 있다.

 

푸른 돌 평평하게 갈아서 적(赤)자를 새기니,

차 다리는 작은 부뚜막 초당 앞에 있네.

반쯤 열린 고기 입같은 아궁이엔 불을 깊이 머금고,

짐승 귀같은 구멍 두개에는 가는 연기가 나온다.

솔방울 주어다가 새것으로 갈아 놓고

매화꽃을 떨구며 더디게 흘러서 고인 샘물을 길어다가,

정척기(精瘠氣)가 침해하는 것을 모름지기 경계하여,

다만 마음으로 단약 만들어 신선되기를 배우리라

 

★ 동암(東庵)

송풍루라고도 불리던 동암은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 여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뜻 깊은 장소이다.

다산은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으며, 목민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실천 방법을 적은 목민심서도 이곳에서 완성했다.

1976년 서암과 함께 다시 세웠는데, 현판 중 보전산방은 추사의 친필을 모각한 것이고, ‘다산동암’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 서암(西庵)

서암은 윤종기 등 18인의 제자가 기거하던 곳이다.

차(茶)와 벗하며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는 뜻으로 다성각(茶星閣)이라고도 하며, 1808년에 지어져 잡초 속에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1975년 다시 세웠다.

 

★ 천일각(天一閣)

근래에 지어진 이 천일각이 서 있는 동쪽 산마루는 다산이 틈틈이 올라 바람을 쐬거나 흑산도로 귀양 가 있던 둘째 형 정약전을 그리며 먼 바다를 내다보던 곳이고,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구강포 앞바다나 죽도, 건너편 칠량땅의 모습이 모두 그의 눈길이 닿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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