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강원
삼척 죽서루
by phd100
2013. 11. 19.
죽서루(竹西樓: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죽서루란 이름은 누의 동쪽에 대나무 숲이 있었고, 그 죽림 안에 죽장사란 절이 있었다는 이유로 죽서루로 이름이 지어졌다.
또한 죽서루 동편에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유희소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또한 이곳이 삼척지소의 근원지이라고 안내문에 나타나 있다.
정철 송강의 ‘관동팔경’의 집필지라서 그런지 숙종 41년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관동제1경 죽서루’라는 현판도 걸려 있다.
‘海仙遊戱之所’는 1837년 헌종때 삼척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실제로 아름다운 죽서루의 모습은 루에 앉아서 오십천을 내려 보는 경치가 아니라,바로 오십천 건너에서 봐야만 그 선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사실 죽서루는 어느 시대에 누가 세웠는지 모른다. 1266년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죽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연석 위에 기둥의 길이를 맞춰서 세운 건축 그랭이 공법, 또 기둥 크기에 맞춰서 돌을 깍아서 만들었다.
조선시대에는 보기 힘든 건축 양식이다. 우리 선조 분들의 자연친화적인 건축기법을 엿볼 수 있다.
죽서루의 현판들 중에는 숙종, 정조를 비롯한 다양한 현판들이 있다,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현판이 바로 제일계정(第一溪亭)이다.
미수 허목이 삼척부사로 내려왔을 때 썼던 글씨인데 정말 아름다운 글씨체이다. 60대에 쓴 글씨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 외에도 어제시등 다양한 현판이 제각각 멋을 하나하나 뽐내고 있어 어느 누각에 있는 현판의 숫자 보다도 많은 현판이 있다.
죽서루에서 왼쪽으로 20m 정도만 가면 용문바위가 위치해 있다.
용문바위는 신라 제 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바로 용문바위로 지금은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고있다.
또 다른 설로는 오십천의 용이 이 바위를 뚫고 승천했는데 그때 만들어진 구멍이라고 한다.
용문이라는 용어 때문에 등용문이라고 회자되어 이 구멍을 지나면 입시에 합격한다는 소문이 있어 바위 표면이 반들반들하다.
용문바위 위에는 성혈이라고 선사시대 유산인데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고인돌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용문바위 맨 위로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성혈은 모두 열개가 있는데 칠월칠석에 일곱 개의 구멍에 쌀을 넣고 간절히 기도한 다음 그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얘기와 더불어 구멍에 귀두를 넣고 마찰하면 정력도 좋아 진다는 얘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