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 쓰이는 ‘공양’이라는 말은 부처님께 무엇인가를 바쳐 불공드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로 향 · 등 · 차 · 꽃 등을 바치는데, 그 가운데 향은 좋은 냄새를 피워 신성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 흥법(興法) 편에 향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다. 신라 제19대 눌지왕(417~458) 때 중국에서 신라의 왕실로 향을 보내왔으나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다.
마침 고구려에서 몰래 숨어 들어와 신라에 불교를 전하고 있는 묵호자를 수소문하여 물었더니, “향이라는 것인데, 불에 태우면 향기가 꽃다워서 정성이 신성한 곳에 이른다.
이것을 태우면서 축원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 왕의 딸이 병이 중하여 묵호자를 불러 향을 피우고 축원케 했더니 왕녀의 병이 씻은 듯 나았다고 한다.
향(香)이 전래된 이후로는 불교의 그림이나 조각 등에는 향을 공양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향(香) 공양은 고려시대에도 전승되어, 청자향로와 청동은입사향로들이 적잖게 만들어졌다.
향(香) 중에는 바닷물에 깊이 가라앉혔다가 사용하는 침향이 가장 좋다고 한다. 침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없고 강철같이 단단해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이며 약재로도 쓰이는데, 이 침향을 만드는 방법을 매향(埋香)이라 한다.
바닷물이나 갯벌에 향나무를 오랫동안 묻어두면 나중에 침향이 되어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는 이와 같은 매향의 풍습이 성했다.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사천만으로 흘러드는 가화천에 작으나마 물줄기를 보태는 도랑가에 이와 같은 매향의 풍습을 짐작케 해주는 매향비가 있다.
원래 이 매향비는 낮은 산기슭에 기대 만든 전각 안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개천 범람을 막기 위해 축대를 쌓아, 옛 전각 자리가 제방에 묻혀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파묻혀 있다. 가로 세로 1.2m, 높이 1.6m 정도 되는 검은 화강암 바위 자연 그대로를 비석 몸체로 삼고 있다.
바위 앞면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15행 202자인데, 글씨 잘 쓰는 이의 솜씨가 아닌 것을 대번 알 수 있을 만큼 글자의 크기와 글자간 간격이 들쭉날쭉하다.
이 매향비는 나라의 평안을 빌고 미륵불의 강림을 기다리는 내용을 자연석에 소박한 글씨로 새겼다. 조성연대가 분명해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비문은 ‘천인결계매향원왕문’(千人結契埋香源王文)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며, “고려 우왕 13년(1387) 국운이 쇠퇴하자 승려와 이 지방 불도 4,100명이 해안이었던 이곳에 향을 묻고 국태민안과 미륵보살의 하생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륵불에게 내세의 복을 기원한 것 외에 국태민안을 기원한다는 구절로 미루어 고려 말 해안가에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사회상을 짐작해볼 만하다. 비문은 고려 때 고승 달공(達空)이 짓고 수안(守安)이 썼으며 김용(金用)이 새겼다.
이와 같은 매향비는 현재 전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이로 미루어볼 때 미래의 복을 축원하는 매향 행위가 여러 지역에서 폭넓게 행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매향의 풍습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어서 발견되는 비의 수가 많지는 않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고려 충선왕 1년(1309) 강원도 고성 삼일포 매향비, 조선 태종 5년(1405) 전남 신안군 암태도 매향비, 세종 9년(1427) 충남 서산 해미 매향비 등이 있다.(아래 참조)
이들 매향비는 모두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시기적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해당하며, 대체로 관에서 주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민간신앙 차원에서 행해졌다는 등의 공통점을 지닌다.
인적 드문 쓸쓸한 곳에 볼품없이 서 있는 사천 매향비를 보고 보물로 인정하기가 선뜻 쉽지는 않지만, 유물 자체보다는 이 매향 행위가 나라의 평안을 빌고 미륵불의 강림을 기다리는 백성들의 자발적인 행사였다는 뜻을 높이 산다면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사천 매향비는 보물 제614호로 지정돼 있다.
<전국 매향비 소재>
1. 고성 삼일포 매향비 409년 비석.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 현존하지 않음
2.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81호 영암정원명석비(靈巖貞元銘石碑) 786년 비석. 전남 영암군 군서면
3. 팔금도 매향비 1002년 비석. 전남 신안군 팔금도. 실록에만 전함
4. 의주 야일포 매향비 1290~1350년 암각. 평북 의주 야일포. 현존하지 않음
5. 정주 매향비 1335년 비석. 평북 정주시 침향리. 현존하지 않음
6 보물 제1309호 영암엄길리암각매향명(靈巖奄吉里岩刻埋香銘) 1344년 암각. 전남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7. 시도기념물 제224호 영광법성입암리매향비(靈光法聖笠巖里埋香碑) 1371년(홍무명) 비석, 전남 영광군 법성면 입암리
8. 보물 제614호 사천흥사리매향비(泗川興士里埋香碑) 1397년 비석.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9. 시도기념물 제155호 예산효교리매향비(禮山孝橋里埋香碑) 1403년 암각. 충남 예산군 봉산면 효교리
10. 시도기념물 제163호 당진안국사지매향암각(唐津安國寺地埋香岩刻) 경술명/경오면 암각. 충남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11. 시도기념물 제223호 신안암태도송곡리매향비(新安巖泰島松谷里埋香碑) 1405년 비석. 전남 신안군 암태면 송곡리
12. 시도기념물 제137호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海南孟津里巖刻埋香碑) 1406년 암각. 전남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13. 시도유형문화재 제288호 삼천포매향암각(三千浦埋香岩刻) 1418년 암각. 경남 사천시 향촌동
14. 홍성 어서리 매향비. 1418년. 비석. 충남 홍성군 서부면 어서리[인천시립박물관 수장 중]
15. 문화재자료 제189호 영암채지리매향비(靈岩採芝里埋香碑) 1430년 비석. 전남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16. 문화재자료 제252호 장흥덕암리암각매향명(長興德巖里巖刻埋香銘) 1436년 암각. 전남 장흥군 용산면 덕암리
17. 신안 고란리 매향비 1457년 비석. 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
18. 무안 남촌매향비 1584년 비석. 전남 무안군 일로읍 남촌(혹은 무안읍 성남리)[경상북도 성주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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