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름은 남아 있지 않지만 낫과 쟁이를 들고 싸웠던수 많은 의병들의 의병정신을 기리고, 이들의 정신을 후세에 길이길이 전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사당은 충익사당, 의병기념관, 충의각, 내삼문, 외삼문 등 9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곽재우 장군은 명종 7년인 1552년 8월 28일 외가인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하였다.
1585년(선조 18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에 왕의 뜻에 거슬리는 글귀가 있다하여 파방되자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며 자연과 더불어 시를 지으며 초야에서 지냈다.
선조 25년(1592) 4월13일 왜병이 침입하여 서울로 진격해오자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분연히 일어나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병의 침공을 막았다.
장군은 홍의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 의병을 거느리면서 정암진, 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 등의 전투에서 실로 신출귀몰하는 전략, 전술로 적을 크게 무찌르고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주 목사를 지냈고, 한성부 부윤, 함경도 관찰사를 일시 역임하였다.
장군은 사후에 병조판서 겸 지의금사(知義禁事)에 추증되었다. 장군의 추모행사는 1972년 이래로 매년 거행하며 1978년 이곳에 사당을 마련하였다.
충익사 경내에는 높이 27m의 의병탑과 더불어 위패를 모신 사당 충익사(忠翼祠), 곽재우 장군과 17명 장수의 명판이 걸린 충의각(忠義閣), 그리고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충의각은 1592년 임진왜란 대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수 등 18장령들의 이름과 본관, 호, 증직 등을 기록한 명판을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원래 의령읍 동동리에 있던 관찰사를 지낸 합천이씨 이중하의 불망비각이었으나 1972년 10월 9일 재부산향우회에서 매입, 충익사 옆으로 옮겨왔다.
경내에 있는 가장 화려한 건축물인 이 충의각은 1910년도에 초창된 다포팔작식 목조건물인데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의 증직명과 관향 등이 적힌 명판을 부착한 충의각으로서 어느 한 곳에도 쇠못을 사용하지 않은 우리나라 전통 목조건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조선후기 건립된 다포팔작양식으로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상여모양을 본뜬 건물이다.
1972년 이래로 매년 의병창의일인 4월 22일 의병제전 행사와 더불어 추모행사를 거행해 오다 2011년부터는 의병의 날인 6월 1일에 거행하며, 음력 8월 28일에는 장군의 탄신다례를 올리고 있다. 이곳 충의사는 1978년 12월 22일 준공식을 가졌으며, 2009년 의령 9경 중 제1경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바로 옆 의병기념관에는 곽재우 장군이 임진왜란 때 사용하였던 장검, 마구 및 평소에 사용했던 벼루와 연적인 포도연, 사자철인, 화초문백자팔각대접 등 6점의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넓은 경내에는 보물 제 671호인 ‘망우당(忘憂堂)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과 곽재우와 17명의 장수들에게 사후에 내린 관직명이 보관되어 있는 공포와 장식이 화려한 충의각에다, 이밖에 도기념물 제 83호인 모과나무가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 27m에 이르는 충혼탑이 있어, 한나절을 돌아 보기에도 충분한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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