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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합천 함벽루(涵碧樓)

by phd100 2018. 2. 6.




☆ 함벽루(涵碧樓)

소나무와 바위에 자취 감추어 천겁을 지내고

중생계에 모습 감추어 사방으로 왕래하네

인연따라 감응함은 맑은 물에 달 비치듯

허공계 순환하며 중생을 제도하네

그 많은 시름들 어디갔나.

푸르름에 젖은 涵碧樓

 

함벽루처마의 빗물이 황강으로 떨어지는 아름다움을 가졌던 정자라는데 그 앞으로 산책로가 생겨 그 빗물은 이제 산책로에 떨어진다.

 

고려 충숙왕 8년 1321년에 지어졌고 이황, 조식, 송시열 등이 찾아 영남 제일이라 불렸던 함벽루.

 

남곽자(南郭子: 초나라의 철학자, 성곽의 남촌에 살았으므로 남곽자기라고 부름)처럼 무아지경에 이르진 못해도/

강물은 아득하여 알 수 없구나/

뜬구름의 일을 배우고자 하나/

오히려 높다란 바람이 흩어 버리네’

함벽루에 걸려 있는 남명 조식의 글이다.

 

백성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정치를 하라고 임금에게 일갈하고 자연으로 돌아왔던 조식.

'열자'와 눈빛만으로도 서로 대화할 수 있었다는 '남곽자'를 그리워했던 걸까. 비록 정치하지 말라하고 뒤돌아섰지만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 중에 조식의 제자들이 그토록 많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깊은 심정을 읽고도 남음이 있다.

 

바위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것으로 힘차다

 

 

<신라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의 설화>

642년 백제의 일만 대군이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했을 때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이 이끄는 신라군은 내부 분란으로 위기에 처하고 항복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김품석은 “아버지가 나를 죽죽(竹竹) 이라 이름 지은 것은 추운 데에도 시들지 않고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 함이다. 어찌 죽음을 겁내 살아 항복 하리오”라며 장병 2,000여 명과 함께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

바로 이 전투에서 죽은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과 처자, 그리고 신라 장병 2,000여 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643년 와우 선사가 연호사를 세운 것이라 한다.

 

신라의 대야성 패배는 비록 쓰라렸지만, 6년 후 김유신은 백제군을 대파하였고, 김춘추는 대당 외교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한 의미 있는 패배였다.

푸른 황강에 패전으로 물든 붉은 핏물은 대나무의 곧음으로 안타깝게 죽은 영혼들을 지극정성으로 위로하였기에 지금의 황강이 다시 푸름으로 흐르고 있지는 않을까? 연호사 밑에는 푸름이 젖어드는 곳이라는 하여 지어진 함벽루(涵碧樓)라는 누각이 있다.

 

함벽루는 핏빛의 역사와는 다르게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함벽루는 진주 촉석루나 밀양 영남루보다 더 오래된 정자로 누각 처마의 빗물이 황강으로 바로 떨어지게끔 지어져 누마루에 앉으며 배를 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강물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유히 흐르고 역사의 사연들만이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듯 부처님이 큰 가르침은 속인들에게 흐르는 물과 같이 한 곳에 잡아 두지 못하고 멀어져 가기만 한다.

연호사 법당에 앉아 황강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들리는 풍경소리에 절개를 지키며 죽어간 영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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