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기
여주 신륵사( 나루터의 구렁이 전설)
by phd100
2021. 3. 11.
<여주·신륵사>
나루터의 구렁이
초여름 새벽에 한 젊은이가 과거를 보기 위해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사립문을 나섰다. 해가 떠오르자 날씨가 무척 더웠다.
젊은이는 길을 가다가 강가로 내려가 얼굴을 씻고 주먹밥을 먹었다.
주먹밥을 먹고 나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문득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폈다.
“분명 꿈을 꾸었는데... 이상하다. 전혀 기억이 안나니….” 젊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하였다. 괴나리봇짐을 어깨에 메는 순간 젊은이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젊은이는 괴나리봇짐을 풀었다. 괴나리봇짐 안에 한 마리의 구렁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괴나리봇짐을 던지고 구렁이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려 하였다.
그러자 구렁이는 스르르 몸을 풀고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젊은이는 “그래, 저 구렁이가 사공에게 쫓기던 여인이 틀림없어!” 젊은이는 비로소 꿈이 생각났다.
젊은이가 꿈에서 봤던 내용은
한 동자승이 스승의 심부름으로 사공에게 배를 태워달라고 하였다. “뭐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꼬마 상좌가 돈이 어디서 나서 배를 타려고 해. 중이라고 배를 거저 탈 생각은 아예 말아라.”
동자승이 뱃삯을 내밀었다. “이 돈은 보은사[신륵사]를 중창할 시줏돈이에요. 스님께서 강 건너 대장간에 갖다 주라고 하셔서 가는 길입니다.”
동자승을 태운 배가 강 한 복판으로 밀려 나갈 무렵 한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뱃사공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배를 이미 띄웠으니 다음 차례를 기다리시오.” 동자승은 여인을 태우고 가자고 하였다.
사공은 하는 수 없이 배를 대고 여인을 태웠다. “고맙습니다. 스님!” “스님은 어디로 가세요?”, “예, 저는 대장간에 가는 길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사공이 갑자기 노를 들어 여인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이 요사스런 년아! 왜 하필이면 스님을 꼬이느냐!” 사공이 내리치는 노를 피해 물속으로 뛰어든 여인은 금방 한 마리의 큰 구렁이가 되어 달아났다.
그 때 놀란 젊은이가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해가 서산에 질 무렵 젊은이는 나루터에 닿았다. 늙은 뱃사공이 빈 배에 앉아 있었는데, 꿈에서 본 사공과 매우 닮았다.
“이곳이 여강나루가 아닙니까?”, “여강나루이지요.
근데 젊은이는 새벽부터 길을 잘못 들었소. 젊은이는 오늘 낮에 강가에서 구렁이를 보았지요? 이 길은 저승으로 통하는 길이오.
나루를 건너면 보은사가 있지만 누구도 살아서 절에 닿은 사람은 없소.”, “노인장, 저는 그럼 죽은 것입니까, 산 것입니까?”, “죽지는 않았소이다.
다만 젊은이의 효심 때문에 여기에 이른 것이오. 당신 어머니는 오늘 아침 젊은이가 길을 떠나자 곧 숨졌소.
지금은 보은사 나찰(羅刹:불교에서 악귀를 총칭하는 말)이 되었는데, 절이 퇴락해 거처할 곳이 없어 절 아래 동굴에 머무르고 있소.
근데 그곳은 원래 백사녀(百蛇女)의 집이라서, 백사녀는 당신 어머니께 집을 빼앗기고 화가 나서 당신을 해치려 했던 것이오.
다행히 나한테 들켜 당신을 해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꿈속의 동자승이 저입니까?”
“그렇소, 당신 전생 모습이오. 전생부터 보은사 중창서원을 세운 당신은 아직도 그것을 이행 못했소. 오늘 이런 기회도 모두 부처님의 계시입니다.”
조선 성종 4년, 장원급제하여 여주 고을 원님이 된 젊은이는 대왕대비 특명으로 보은사를 크게 중창했다. 그 후 부처님 신탁으로 중창했다 해서 신륵사(神勒寺)라 개칭했다. 지금도 신륵사 탑 밑에는 젊은이의 어머니인 나찰이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