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문(如予門)
가끔씩 절 입구에 영원히 변치 않는 고요하고 평온한 세상으로 들어 간다는 여여문(如予門. 예로 통도사 극락암. 덕산 수덕사, 산청 수선사에 여여문이 있다)을 볼 수 있다. 초서로 된 글자체가 특이하다.
이는 불교경전 금강경의 여여부동(如如不動)에서 따온 말이다(如如는 변함이 없음을 뜻한다) 같을 여(如)는 불교에서 차별없이 평등한 그대로의 사물의 모습을 말하고, 나 여(予)는 ”주다. 함께하다“는 의미로도 쓰여져서 여여(如予)는 고요하고 평온한 세계를 말하여, 여여문(如予門)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세계로, 고요하고 평온한 세상으로 가는 문이다.
”여여부동(如如不動)“ 이 구절은 어디서 왔을 까?
금강경 사구게 가운데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부동 하이고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의 구절이 있다.
이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사구게(부처님 율법)를 전해 주어야 하는가? 그 어떤 상(相)에도 걸리지 말고 한결같이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는 행동(처신)을 하면서 말이다.
삼천대천의 부처님의 세계를 칠보로 가득차게 보시하는 것보다 금강경 사구게 하나를 전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복을 짓는 다고 한다.
왜냐하면, 삼천대천 세계를 가득 채울 만큼 보석이 있어도 상대방이 하는 말에 매혹하여 화를 내거나 열을 받아 만약 내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따라 내가 중심을 잃거나 속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상을 욕심내어 취함이 없이, (모든게 무상하므로 관념, 사견 등에) 물들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여법(如法)하게 모든 이에게 설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삶속에서 그 어떤 일이 닥쳐도 영원히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다.
나를 칭찬해도 여여하고, 나를 욕 하거나 비난을 해도 여여하게 행동을 하는 것이 '불취어상 여여부동'한 삶이다. 여여부동한 상태에서 참다운 내가 들어난다. 그래서 결국에는 내가 부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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