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상
아수라장(阿修羅場)
'아수라(阿修羅)' 는 원래 불교(元來 佛敎)에서 사용(使用)하는 말이다.
아수라의 어원은 한자로서 阿修羅로 쓰는데, 무슨 중요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불교 발상지 인도의 용어를 발음 그대로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아수라는 불교 신화에 등장하는 악신 중 하나의 이름이라고 해요. 얼굴이 세 개이고 팔은 여섯 개나 되는 모습인데 어딜 가나 분란과 불신과 싸움을 일으키는 추악한 신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불교의 진리를 지키는 제석천이라는 선한 신이 있다고 믿는데, 아수라는 바로 이 제석천을 지속적으로 공격한다고 한다.
인도 신화에서 아수라는 인드라(Indra)를 필두로 하는 신들과 전쟁을 일삼는 못된 귀신이다
제석천 vs 아수라 이 싸움에서 제석천이 이기면 세상은 평화스럽고 풍년이 들고 웃음꽃이 피어나겠죠. 그러나 아수라가 이길 경우 세상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 반대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제석천은 혼자 싸워서는 아수라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일반 민중들의 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할 때 아수라를 물리칠 수 있다고도 한다. 신과 인간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현재 사람들의 대부분 삶은 분열과 시기와 굶주림과 파멸이 세상을 뒤덮게 된다. 아수라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바로 여기서 아수라장(場)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
아수라장은 아수라가 판을 치는 장소라는 뜻인 거죠. 참혹한 전쟁터 혹은 그것을 방불케 하는 파괴와 혼돈의 난장판을 뜻하는 말로 쓰게 된 것이다.
아수라장(阿修羅場)의 단어 2가지 의미는 아래와 같다.
1. 전란(戰亂)이나 그밖의 일로 인(因)하여 큰 혼란(混亂) 상태(狀態)에 빠진 곳. 또는 그 상태(狀態).
2. 아수라(阿修羅) 왕(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세상을 선하게 창조한 신의 의지와 스스로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합쳐질 때 세상은 비로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신은, 스스로 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자를 선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돕는다고 하듯이 말이다.
개판(開板)
우리가 흔히 알기로는 개(犬 : Dog)들의 집단과 관련된 말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개와 전혀 관련이 없다.
'질서 없이 소란스럽다'는 이 말은 그 어원이 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의 일시적인 무질서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의 어원(語源)에는 다음과 같은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6.25 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낙동강 이남 지역인 부산으로 모여들었을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의 부산국제 시장 근처가 피난민들의 집결소가 된 것이다.
그 당시에 그곳에는 피난민을 위한 무료 급식소를 열어 무료로 급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급식소에서 밥솥 뚜껑을 열기 5분 전에 “개판 오 분 전(開飯五分前)!”이라고 외쳐 대며 배식 개시 5분 전임을 알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배식 순서를 먼저 차지하려고 하다 보니 일시적인 소란과 무질서가 일어났고 이를 일컬어 '개판 오 분 전'이라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판사판(理判事判)
‘이판사판’이란 본래 불가의 설화에서 생겨난 말이다. ‘이판(理判)’은 불가에 입문해 도를 닦는 일을 말하며 스님을 ‘이판승’이라고 한다. ‘사판(事判)’은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스님을 가리킨다. 이 일을 수행하는 승려를 ‘사판승’이라고 한다. ‘이판’ ‘사판’은 사찰을 운영하는 데 있어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다. ‘이판’이 없으면 부처의 가르침을 행할 수 없고 ‘사판’이 없으면 사찰 경영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 한 양반이 두 아들을 뒀다. 그런데 아들 모두가 출가를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님 저희는 절로 들어가려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형님은 도를 닦고 경전을 공부하는 이판(理判)이 되고 저는 절의 살림을 꾸리는 사판(事判)이 될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양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승려가 된다는 것은 속세와의 연을 끊는 것이며 또 아들 모두가 출가하면 대가 끊기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로는 두 아들이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의 호소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기도 곤란했다. 출가를 하면 누구나 ‘이판’과 ‘사판’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야 하므로 ‘막다른 궁지’라는 의미로 회자 됐다고 한다.
이판사판’은 ‘아수라장, 야단법석, 아비규환’과 같이 부정적인 상황을 비유하는 불교 용어이다. 물론 ‘이판사판’이라는 용어 자체는 없으나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합성어이므로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판(理判)은 이판승을 가리키는 말로 참선.수도.포교 등 불교의 이치를 탐구하는 스님을 뜻한다.
또 사판(事判)은 사판승, 즉 사찰의 행정 업무나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스님을 말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스님은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당시 스님이 된다는 것은 신분이 가장 낮은 계층으로 추락한다는 뜻이 되어 버렸다.
조선시대에 서민이 못살아서 절의 중이 되자는 뜻과
사찰운영에서 이판승, 사판승의 운영권을 쥐고 죽기 살기로 싸웠다는 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이판과 현실을 고려하는 사판이 대립할 경우 화해나 절충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싸우는 것을 두고 나온 말이 이판사판이라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승려가 본업도 놓고 생계 활동에 내몰리게 된 당시 불교의 상황이 이판사판이었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난장인 공사판 같다는 의미를 붙여서 ‘이판사판공사판’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야단법석(野壇法席)
야단법석은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서로 다투고 떠들고 하는 시끄러운 판'을 뜻하는 말이다.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법석(法席)'은 원래 불교 용어로 '법회석중(法會席中)'이 줄어서 된 말이다.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간단히 요약 하면
1)야단(野壇)은 부처님이 대중들에게 설법을 베풀기 위해 야외에 설치한 법대를 가리키는 말이고,
2)법석(法席)은 역시 설법을 베푸는 경건한 자리이다.
현재 사용하는 야단법석의 유래 및 변형으로는 부처님 설법을 듣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썩하던 모습에서 비롯되어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서로 다투고 떠들고 시끄러운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인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100% 정확하게 옳은 설명이 아니다.
즉, 한자도 달라져서 야단(野壇)은 야외에서 마련한 단상에서 떠들썩하거나 매우 부산스러움을 나타내는 야단(惹端)으로 바뀌었다. 법석은 부산스럽게 군다라는 한글이기도 하고 法席이라는 한자를 사용합니다. 즉, 야단법석은 아래와 같이 2가지의 어원이 있는 셈이다.
1. 야단법석(野壇法席), 불교에서의 의미에서는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
2. 惹端법석, 한자+한글, 많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몹시 떠들며 소란을 피우는 상태로서 누구를 꾸짓고 비방하고 거칠게 항의하는 걸 이때부터 "야단 친다"의 한자는 野壇이 아니라, 惹端이다.
사월초파일 같은 날에는 많은 신도들이 절을 찾아오기 때문에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하는 것이다. 그처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할 때 최대 규모의 사람이 모인 것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게 된다. 이처럼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야단법석이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게 되었다.
즉,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야단법석을 떠는구나. 라고 할 때의 야단법석은 한자가 다릅니다. 惹端법석[부산스러움을 나타내는 야단(惹端)]이라고 쓰니까 한자+한글인 복합어인 셈이다.
이때의 야단법석은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굶 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사전에 따라서는 이때도 법석을 法席이라는 한자로 쓰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야단법석이란 단어는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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