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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기

파주 보광사 소령왕릉 용암사

by phd100 2021. 8. 2.

 

♡보광사(普光寺)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고령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894년(진성여왕 8)에 왕명에 따라 도선이 비보사찰로 창건하였다. 1215년(고종 2)에 원진이 중창하고 법민이 불보살상 5위를 봉안하였으며, 1388년(우왕 14)에 무학(無學) 자초(自超)가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린 것을 1622년(광해군 4)에 설미와 덕인이 함께 중건하였으며, 1634년 범종을 봉안하였다. 1667년(현종 8) 지간과 석련이 중수하고, 1740년(영조 16)에는 대웅보전, 관음전을 중수하였으며 인근에 있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묘소인 소령원(昭寧園)의 기복사(祈福寺)로 삼았다.

 

1863년(철종 14)에는 쌍세전과 나한전, 큰방, 수구암을 새로 짓고 지장보살상, 시왕상, 석가여래삼존불, 16나한상 등을 조성하였다. 1864년(고종 1)에는 관음전과 별당을 짓고 1893년 산신각을 신축하였으며 1901년 인파가 상궁 천씨의 시주를 얻어 중수하였다.

 

6·25전쟁 때 별당 등 일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957년에 수각을 짓고 1973년에 종각을 세웠다. 1981년에는 절 뒤쪽에 거대한 호국대불을 세우고 1994년 지장전과 관음전을 새로 지었다. 문화재로 보광사 대웅전(경기유형문화재 83), 파주 보광사 숭정칠년명동종(경기유형문화재 158)이 있다.

 

대웅전

경기유형문화재 제83호. 조선시대의 사찰 건축물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본당이다. 대웅전의 건축 양식은 전통 목조건축 양식인 다포계양식의 팔작지붕으로 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지붕과 같다.

 

 

보광사 숭정칠년명 동종

보광사 범종은 대웅보전에 있다가 절 입구에 새로 신축한 범종각에 봉안하였다. 현재 타종하지는 않고 있다. 중형 범종으로서 종신에 새로운 의장을 사용해 변화를 주었으며 전체적으로 푸른 녹빛이 감돌고 입체감과 안정감이 있는 조선 후기 범종이다. 재질은 청동이며 주종장은 설봉, 천보이다.

 

음통이 없고 둥근 형태의 머리 위에는 역동적인 쌍룡이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고, 포탄형의 종신이 연결된 모습이다. 상대는 귀꽃장식이 가미된 연판무늬 복련(覆蓮)을 돌렸다. 종신의 문양은 융기된 횡대를 경계로 4단의 문양대가 감싸고 있다. 위쪽에는 연화당초무늬로 장식한 네 개의 사다리꼴 연곽이 있고 연곽 사이에는 좌우에 육자대명왕진언과 파지옥진언을 3자씩 나누어 좌우에 배치하였으며 그 중앙 네 곳에 구름위에 합장한 보살입상이 서 있다. 중단에는 3줄로 구성된 띳장식대를 두르고 있으며, 하대와 띠 장식 사이의 공간에 구름 속을 헤치며 비천하는 한 마리의 용을 도드라지게 조각하고 있으며 조성 경위를 알려주는 명문(銘文)이 가득히 돋을새김 되어있다. 명문에 의하면 조선 인조 12년(1634) 미지산(彌智山) 설봉자(雪峯子)가 상윤(尙倫)·희령(喜岺)·경립(敬立)과 함께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대는 잔잔한 물결의 파도무늬와 구름 속을 노니는 용무늬가 교대로 등장하고 있다.

 

♡소령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소령원길 41-65

"소령원(昭寧園)은 조선21대 영조(英祖)의 어머니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원소(園所)이다. 인근에는 영조의 후궁인 정빈이씨의 묘소가 있다.

숙빈최씨는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1670년(현종11) 11월 6일 태어나 7세에 입궁하여 숙종의 후궁이 되었다.

1694년(숙종 20) 9월 13일 창덕궁에서 영조를 낳았으며 1718년(숙종 44) 3월 19일 춘추 49세로 돌아가 그해5월 12일 당시 양주땅이었던 지금의 광탄면 영장리에 장사지냈다.

처음에는 소령묘로 불렸으나 영조가 1725년(영조1)에 어머니를 위해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건립했던 육상묘(毓祥廟)가 1753년 육상궁으로 개칭되면서 소령원으로 승격되었다.

원역(園域)은 산기슭 중단부에 동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봉분 뒤편에 담장을 설치하고 봉분의 양쪽으로 석호(石虎), 석양(石羊)을 각각 2필씩 배치하였다.

봉분 정면에는 비석,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일렬로 놓여 있고 그 좌우로 망주석, 문인석, 석마가 대칭으로 배열되어있다. 석물들이전체적으로 간략한 형태를 띠고 있고 사각의 장명등 기둥과 석마(石馬)의 다리 사이가 막혀있는 점에서 조선후기 석물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원소(園所) 아래 동북방으로는 비각 2동이 있으며 동쪽 방 향으로 중앙에 정자각과 왼쪽에 수복방(守僕房)이 배치되어 있다. 수복방은 조선시대 원소 중 소령원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진입로 초입에는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신도비가 보호각으로 보호되고 있 으며, 현재 이곳은 일반인에게 비공개 관리되고 있다."

 

♡용암사(파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742-28

장지산 기슭에 있는 용암사는 쌍석불사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절 위에 있는 천연바위에 새겨진 두개의 석불입상(보물 제93호)이 있기 때문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 절은 고려 선종(1084-1094년)의 후궁인 원신궁주가 아들을 낳기 위해 지금의 용암사 자리에 석불입상 2구를 만들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용미리 석불입상은 높이 17.4m로, 천연암벽을 몸체로 삼아 그 위에 목과 머리, 갓을 따로 얹어놓은 불상이다.

그 모습이 우람하고 웅장하다. 원립모자를 쓴 부처는 남자, 방립모자를 쓴 부처는 여자로 전해지는데

 

고려시대 선종이 자식이 없어 걱정하던 차에 후궁인 원신궁주가 어느날 밤 꿈을 꾸었다는데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사는 사람들인데 매우 배가 고프니 먹을것을 달라"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깬 궁주가 이상해서 왕께 고하자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 알아보니 장지산 아래에 큰바위 두개가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왕은 즉시 이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하였다고 전한다. 》

 

이 같은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기자전설(麒子傳設)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 쌍석불은 웅장한 크기에 비해 신체비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등 서투른 조각수법으로 그 중요성이 널리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토속적인 얼굴과 자연스러운 미소로 방문객을 마을 어귀에서부터 맞이하는 모습이 정겹다.

이 쌍석불 아래 산 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용암사는 그 긴 세월의 전설과 불공에도 불구하고 1997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몇 년 전에 재건축을 하긴 했으나 재원이 부족하여 실내장식도 페인트칠도 못하고 60% 정도만 완성된 대웅전은 지금은 폐쇄 중이다. 현재 임시불전에서 스님들이 거처하고 있으며, 새로 지은 화장실도 시멘트벽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앞뜰에 봉덕사종을 본딴 범종(높이 197cm, 종입구 115cm)이 범종각에 안치되어 있다. ※ 소속종단 - 대한불교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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