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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기

안성 바우덕이사당과묘

by phd100 2021. 8. 8.

 

바우덕이(金岩德)묘소와 사당

바우덕이는 안성 청룡사 옆 골짜기인 불당골에서 어린시절을 지냈다. 그래서 가까운 청룡사에서 숙식을 하며 절에서 심부름도 했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로 시작하는 바우덕이 속요에도 나와 있지만 바우덕이와 안성 청룡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당시 전국의 사찰들은 재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청룡사에서는 사당패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고, 바우덕이패는 공연을 하면서 먹거리며 현금을 조달해 주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호 공생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바우덕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성 청룡사를 찾아보아야 한다. 청룡사는 큰 사찰은 아니지만 매우 아름다운 대웅전으로 유명하다.

 

청룡사가 있는 안성 서운면 청룡리에는 남사당의 마을이 있다.

청룡사 위에 불당골이 그들의 마당이었고 청룡사 또한 그들의 마당이었다.

청룡사는 사당패의 그늘이었고 사당패는 그런 청룡사를 도우며 함께 살아왔다. 청룡사 입구에 있는 사적비 오른쪽으로 계곡을 따라 불당골로 오르다보면 조선 남사당의 최초이자 마지막 여자 꼭두쇠였던 바우덕이 사당이 있다.

난전을 떠돌던 어린 바우덕이를 사당패가 거두고 다섯 살 바우덕이는 땅에 금을 긋고 줄을 타기 시작한다.

바람이 여닫는 사당 대문 뒤로 상모를 든 그녀의 동상이 브로마이드처럼 걸려있다.

바우덕이는 그 시대의 ‘스타’였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로 시작하는 바우덕이 노래가 당시를 말해주며, 소설 ‘장길산’에서는 ‘묘옥’이라는 여인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시인 김윤배는 그의 시 ‘여사당 바우덕이’에서 바우덕이의 일생을 시로 풀어 썼다.

타고난 미색과 총기로 사당패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던 그녀의 불꽃같은 삶과 숨 가빴던 상민들의 한을 노래하고 있다.

 

안성 난장 물화 많고 사람 많아

은근짜 다방모리 화랑유녀 웃음 질펀하고

거간꾼 장돌뱅이 싸움질로 날 저무는

흥청거리는 난장마당 가을걷이 끝낸 장마당

풍성한 인심 돋우어 펼치는 안성 청룡 남사당패 풍성한 놀이판…

 

뜬쇠 상쇠 바우덕이 신들린 쇠가락

상것들 얼쑤얼쑤 신명 부르고

뜬쇠 어름산이 바우덕이 시원스런 아니리 사설

상것들 응어리진 마음 풀어내리고

뜬쇠 덧뵈기쇠 바우덕이 불길 일으켜 타오르는 세상

 

바우덕이는 폐병에 걸려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청룡사 아래 골짜기에 그녀의 묘가 있다.

바우덕이가 눈을 감은 때도 겨울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땅이 파지지 않아 흙을 모아다 덮었다.

100년이 넘게 세월이 흘러 그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보존회에서 묘비를 세웠다. 눈 덮인 그녀의 무덤 위로 겨울바람이 지나갔다.

안성시에서는 2001년도부터 해마다 조선 최초이자 최후의 여자 꼭두쇠 바우덕이를 기리고 남사당 문화를 세계적인 문화로 전승 발전시키고자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축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바우덕이는 안성 남사당의 전설적인 인물이면서 한국 남사당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여성 꼭두쇠로 알려진 인물이다.

구전에 의하면 5살 때 머슴으로 살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남사당패에 맡겨져 성장하면서 재주를 익혀 염불, 소고춤, 줄타기 등 남사당의 모든 기예를 익혔다고 한다.

15살 때 당시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던 윤치덕(꼭두쇠)이 사망하자 남사당패의 관례를 깨고 여성의 몸인 바우덕이를 우두머리인 꼭두쇠로 선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우덕이는 여성 꼭두쇠라는 특성과 탁월한 기예로 안성 남사당패를 최고의 인기패로 육성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1865년(고종2)년 경복궁 중건 공사 때 인부들을 위로하고자 전국의 남사당패를 불러들였는데 이때 안성에 거주하던 이승지의 후원으로 바우덕이패와 안성 돌우물패가 최고의 인기를 얻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기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바우덕이가 살던 곳은 청룡사가 위치한 불당골인데 이 곳은 예로부터 남사당패가 겨울을 나던 장소이다. 이 곳 남사당패는 청룡사의 신표를 받아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을 누비고 겨울에는 이곳에 와서 월동을 했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23세 때 폐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마지막에 그를 돌보던 이경화가 망인의 유지에 따라 청룡골 입구 개울가 양지 바른 곳에 매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운부대사와 장길산이 꿈꿨던 미륵의 세상도 바우덕이가 일으켜, 타오르던 세상도 다 지나간 세상이 되었다.

각자가 꿈꾸는 세상은 각자의 가슴 속에 있을 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까. 우리가 믿고 기다리고 있는 미륵불의 정토도 지금 각자의 가슴 속에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까. 내 가슴 속에는 어떤 세상이 있는지 생각하며 청룡사를 나서서 세상으로 나서 본다.

 

안성시에서 청룡사 가는 길에는 포도밭이 많다. 안성 포도마을이다. 포도마을을 지나면 바우덕이의 묘가 나오고 서운산이 보이는 입구에 시원한 청룡 저수지 있는데 여름엔 수상스키, 보트 등 여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바우덕이 사당 옆 골짜기에는 아늑한 카페도 하나 있다. 법당의 오래된 단청과 역사 깊은 문화재를 관람하는 것도 사찰 여행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사찰의 지나간 이야기를 따라 ‘그 곳’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우덕이 요약>

차별과 편견에 맞선, 조선 최초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는 다섯 살에 부모를 잃고 전국 최고의 사당패가 있는 안성 불당골에 들어온다.

바우덕이는 불당골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세계인 사당패에 발을 들이고, 사당패의 지휘자인 ‘꼭두쇠’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여성차별이 심했던 조선 시대에 이 꿈은 그저 뜬구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우덕이는 꿈을 꾸고 꿈에 다가가기 위해 몰래 사당패의 기예들을 연마한다.

 

여덟 살에 처음 공연에 따라간 바우덕이는 무동을 타고 버나(접시)를 돌려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열네 살에는 조선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줄타기 기술을 선보인다.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재주들을 익힌 바우덕이는 결국,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선 최초의 여성 꼭두쇠가 된다.

게다가 전국 사당패가 모이는 자리에서 기예를 뽐내며 흥선대원군에게 정3품 당상관이라는 벼슬까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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