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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밀양 표충비

by phd100 2021. 9. 13.

 

표충비(表忠碑)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위치 크기는 높이 약 4m, 너비 약 1m, 두께 54.5cm이다.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일명 사명대사비라 부른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어 왜병을 크게 무찌르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000명을 환국시킨 유정(惟政:泗溟大師)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옛 표충사(表忠祠: 현종(顯宗)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서산대사(西山大師)·사명대사(泗溟大師)·영규대사(靈圭大師)의 충령을 표창하는 뜻으로 그 진영을 봉안하고 ‘表忠詞(표충사)’로 사액하였다.)에서 동쪽 4km인 이곳에 1742년(영조 18) 대사의 5대 법손(法孫) 남붕(南鵬)이 경산에서 갖고 온 돌로 건립하였다.

 

비신(碑身)과 화강암의 비개(碑蓋)를 갖추었고, 경주석재인 빗돌은 까만 대리석이며 좌대석(座臺石)과 이수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비 전면에는 송설대사비명(松雪大師碑銘)으로 시작하는 사명대사의 행장이, 후면에는 서산청허당휴정대사비명(西山淸虛堂休靜大師碑銘)으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좌측면에는 밀양영취산표충사사적비(密陽靈鷲山表忠詞事蹟碑)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지낸 이선현(李宣顯)이 지었고,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김진상(金鎭商)이 썼으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유탁기(兪拓基)가 두전(頭篆)을 썼다.

 

특히 비문 전면의 내용은 사명대사의 출가 행적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선조로부터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된 내용, 카토 키요마사(加藤淸正)와의 담판 내용, 갑진년에 선조의 명을 받들어 국서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서 포로 3,000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으로 되어 있다.

 

이 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석면에 땀방울이 맺히기 때문이다. 마치 구슬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밀양 시민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검이라 하여 신성시한다.

그래서 ‘땀흘리는 표충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때로는 비석의 4면에서 여름날 농부의 이마에서 흐르는 구슬땀처럼 맺혀 몇 시간씩 계속해서 흐르다가 그치기도 하는데, 이상한 것은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 조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

 

이 신기한 현상을 기후 변화에 따른 외기 현상이나 비석 자체의 결로현상으로 보는 등 과학적인 해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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