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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울산

울주 천진리각석

by phd100 2021. 9. 21.

 

울주 천전리 각석(蔚州川前里刻石)

울주 천전리 각석(蔚州川前里刻石)은 신석기시대부터 신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새겨져 온 암각화이다.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의 상류에 위치하여 있다.

1970년 12월에 동국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견.

 

바위 위나 큰 절벽, 동굴 안 벽면 등에 사물이나 기호를 쪼기, 새기기, 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바위그림, 암각화(巖刻畵)라고 한다.

천전리각석은 가로 9.5m, 높이 2.7m의 인위적으로 다듬은 듯한 바위면에 조각이 가득하다. 바위면은 아래를 향하여 약 15˚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적인 풍화로부터 보존될 수 있었고, 중간을 기준으로 상부와 하부로 나누어 각각 새겨진 시대가 다르다. 바위그림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전형적인 사례들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주로 찾아진다.

바위그림은 대개의 경우, 풍요, 다산 제의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이 바위는 상부에 면 쪼기로 나타낸 사슴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동물과 선쪼기로 나타낸 다양한 기하무늬가 있고,

하부에 여러 명문(銘文)과 가는선긋기에 의한 인물 및 동물상 등이 있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상부의 마름모꼴무늬, 굽은무늬, 둥근무늬, 우렁무늬, 사슴, 물고기, 새, 뱀, 사람얼굴상 등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당시의 풍요의식과 관련된 표현으로 해석된다.

하부의 기마행렬, 배의 항해 모습, 용, 말, 사슴그림, 300여 자의 명문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신라사람들이 삼국시대 이래 이곳을 성지(聖地)로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

 

상부는 주로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조각이 있다. 조각대상의 내부를 파낸 면 쪼으기(모두 쪼으기)기법과, 대상의 윤곽만을 쪼아 나타낸 선 쪼으기 기법이 이용되었다. 면 쪼으기로 조각한 대상으로는 사람 형상과 함께 사슴을 포함한 짐승, 뱀과 새, 물고기 등의 형상이 있다. 세겨진 물고기 중 일부는 날이 선 지느러미가 마치 상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 선 쪼으기로 조각한 마름모 꼴이나 둥근 모양을 가진 기하학적 무늬도 존재한다.

하부는 주로 신라 초기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조각되었다. 선긋기로 그어진 선들과 함께, 기마행렬도, 배가 항해하는 모습, 인물 등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신라 때의 생활양식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 외에 용이나 말, 사슴 등으로 추정되는 짐승의 형상도 보인다. 한편 함께 새겨진 명문(銘文)은 약 800자 이상이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는 풍화되고 또한 일부는 후대에 의하여 훼손되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는 글자는 300여자 정도이다. 글자가 불확실하나 '을사(乙巳)‘라는 간지 (干支)를 통하여 대략 6세기초 신라 법흥왕 12년(A.D. 525) 이전에 새긴 것으로 보아지며 여기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신앙과 연결된 보호지 내지는 성지, 화랑들의 이름이나 당시의 직위명 등이 포함되어 있어 화랑들의 집회 장소였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또한 왕과 왕비가 이 곳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법흥왕대에 두 차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내용 중에는 관직명이나 6부체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천전리각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느 특정 시대를 대표한다기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