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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창녕 관룡사

by phd100 2021. 9. 30.

 

관룡사(觀龍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신라 8대사찰의 하나로, 394년(내물왕 39)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583년(진평왕 5) 증법(證法)이 중창하고 삼국통일 후 원효가 중국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대도량(大道埸)을 이루었다.

이 사찰에는 대웅전(보물 212호)과 약사전(藥師殿, 보물 146호)을 비롯하여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519호)과 약사전 3층 석탑(지방유형문화재 11호), 용선대(龍船臺) 석조 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등이 있다.

관룡사 이름의 내력 : 원효대사께서 제자 송파와 함께 칠성 백일기도를 마친 날, 화왕산 정상 월영삼지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광경을 보았다 하여 볼 觀, 용 龍를 써서 관룡사라 하였다고 하며 그 뒷산을 구룡산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체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약사전 만은 화재를 피했으며 부처님의 불력이 화마를 물리 쳤다고 하며, 부처님은 질병을 낫게 해준다고 하여 질병 극복 기도처로 유명하다. 특히 용선대 부처님(석조 석가여래)은 한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 주신다고 하여 소원 성취 기도처로도 유명하다.

 

* 藥師殿 : 임진왜란 때 전체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약사전 만은 화재를 피했으며 부처님의 불력이 화마를 물리 쳤다고 하며, 부처님은 질병을 낫게 해준다고 하여 질병 극복 기도처로 유명하다.

* 藥師殿 三層石塔 : 약사전 앞에 위치한 이 삼층석탑은 아래 받침대(下臺石)의 네면에는 코끼리의 두 눈을 형상화한 안상(眼象)응 각각 두 개씩 조각하고, 사가형의 바탕돌(地臺石)은 자연암반을 이용 조성했다. 이는 통일 신라시대 말기의 석탑 표현 방식이다.

 

약사전의 石造如來坐像은 머리위의 둥근 육계(六髻)에는 반달구슬의 게주(髻珠) 표현되고, 법의(法衣)의 겹쳐진 부부은 선각(線刻)으로 만 표현되어 고려시대의 불상 양식이다. 부처님이 앉은 좌대는 연꽃잎을 새긴 상좌(上座), 팔각형의 중좌(中座), 두겹의 연꽃잎을 깐 사각형의 하좌(下座)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대좌는 불상의 크기에 비해 높게 만들어 져 있어, 이는 8세기의 신라 불상을 본 받아 만들어 졌다고 생각된다.

 

* 원음각 : 1634년(인조12)에 건립. 사원의 누각건물. 영조39년 중건. 숙종30년 산사태로 건물 훼손, 중건. 바닥은 우물마루. 대웅전 앞 마당과 높이가 같아 출입이 용이. 용도는 불구(佛具)를 보관하거나 설법장소로 사용. 예전에는 누각 아래 중앙칸을 통해 대웅전 마당으로 출입하였으나 지금은 기둥사이를 막아 스님 공부방으로 사용.

 

* 龍船臺 石造釋迦如來坐像 : 관룡산(739.7m) 정상부근 수십 길 낭떠러지 위에홀로 앉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전체 높이 2.98m, 불신높이 1.81m, 대좌높이 1.17m로 높은 대좌(臺座)위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안자았는데 광배(光背)는 없어 졌다. 바로 뒤가 절벽인 것으로 보아 불상위에 덮개 건물은 없었던 듯하며, 앉은 자리가 풍수지리상 땅의 기운을 누르려는 신라시대의 도참사상(圖讖思想: 앞날의 길흉에 대한 예언이나 징조(徵兆)를 믿는 사상)이 작용한 듯하다. 특히 용선대 부처님(석조 석가여래)은 한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 주신다고 하여 소원 성취 기도처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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