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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창녕 영산 문호장발자국

by phd100 2021. 10. 2.

 

문호장의 흔적(文戶長의痕迹)

경남 창녕 영산면일대에는 문호장(文戶長)이라는 영웅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문호장은 370여 년 전 영산에 실존하던 인물이라 하나 기록을 찾을 길이 없고, 다만 아전의 신분으로 호장(戶長)에 오랫동안 있었다고 해 문호장이라 불리며 당시 관의 횡포에 억눌린 평민의 원망을 해결해 준 영웅 · 신격화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초인적 신통력을 갖고 마을의 연지못 가에 살았으며 무인이 아니면서도 말 잘 타고,활 잘 쏘며,검술,도술도 잘 부리고 축지법도 했다.

자인(경북 경산)에 그의 소실이 있었는데 호랑이를 잡아 타고서 다녀왔다고 전해온다.

죽기전 감찰사에게 한 소원은 “소인에게는 죽은 후 제사를 지내줄 아들이 없고, 딸만 있으니 소인이 죽은 뒤에 해마다 오월 단오날에 관가에서 소인의 제사를 차려 줄 것을 소원합니다.” 라고 하고 지릅대에 맞아죽으니, 그 다음 해부터 감찰사의 명을 받들어 영축산 정상에서 문호장의 영혼을 위한 공양이 베풀어졌고, 그 후 영축산 아래 문호장을 모신 사당에서 해마다 문호장을 위로하는 굿판이 벌어지는데, 360여 년이나 이어오고 있다.

그런 문호장은 오랜 세월 온 고을 사람들로부터 영산의 수호신으로 추앙받아 왔다. 매 년 단오날 마을 사람들은 문호장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며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빌고 있다. 검은 바위 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발자국은 전설대로 거인의 발자국 같기도 하고 이 지방에서 발견되는 공룡 발자국 같기도 하다.

 

<문호장 얘기>

어느 해 여름날 감찰사가 영산현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서 영산현에 왔다가 때마침 모내기 철이라 물을 잡아 모내기에 바빴으므로 길가에는 점심밥의 광주리와 반찬 그릇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의 행차가 길가에있는 농민들의 밥그릇을 밟고 지나가는 순간 말의 네 발이 땅에 딱 붙어 버리는 게 아닌가?

감찰사는 채찍을 휘둘러 말을 움직이려 했으나 말의 발굽은 점점 굳게 달라붙어 꼼짝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감찰사는 말에서 내려 영접 차 마중 나온 현감에게 괴이한 이변의 연유를 캐어물었다.

결국 이 근방에 문호장이란 사람이 살고 있어 말을 타고 지나갈 때는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감찰사는 노해서 문호장을 잡아 들이라 명령했다.

그때 문호장은 산기슭 나무 그늘 밑에서 짚신을 삼고 있었는데 거창한 행렬이 농군들의 점심밥 광주리를 짓밟고 지나는 것을 보고 분노해 회초리로 땅바닥을 세 번 치면서,

“저 발자국!” 하고 단 한마디 외치는 소리로,수 부림을 해서 말 발이 땅에 들어 붙게 만든 것이었다.

나졸들은 짚신을 삼고 있던 문호장을 찾아서 포박,감찰사의 앞에 대령시켜 모질게 다스렸지만,문호장은 안색하나 달리하지 않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쌀농사는 지어서 나라님 섬기고 부처님 공양하며,죽은 조상 봉제하고 산 부모 봉양하며,만백성이 양식하는 것이온데 그 농군들의 점심밥을 짓밟아서야 될 일이기나 합니까?”

문호장의 이치에 닿는 말에는 감찰사도 주춤했다. 그러나 체통 때문에 문초를 늦추지 않고 곤장을 치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곤장을 치면 볼기에 닿기도 전에 곤장이 부러져 버렸다.

부젓가락으로 지져라 했으나 시뻘겋게 단 부젓가락도 어이없게 얼음덩이가 돼 떨어질 뿐이었다.

화살을 쏘았으나 문호장의 앞에 닿기도 전에 공중으로 치솟아 버렸으며, 총을 쏘니 총구멍에서 물이 흐르고 총알 대신 개구리가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감찰사는 너무나 놀랐다.

이에 영산현감이,

“총이거나 칼이거나 그 무엇으로도 문호장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고 방면할 것을 주장했으나 감사는 멀리 자인(경북 경산군)으로 문호장을 압송하라고 하여 압송했다.

그런데 문호장을 자인에 압송하고 돌아오는 나졸보다 하루 앞서 먼저 영산고을 관아에 도로 문호장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놀란 감사는 자인으로 압송할 때 보낸 나졸들의 사실을 확인하려 자인에 보냈더니 자인 옥중에는 엄연히 문호장이 갇혀 있더라고 했다.

감사는 어느 것이 진짜 문호장인지 또 문호장이 몇명이나 되는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아 두 손을 들어 버렸다.

 

이 초인적인 기질에 감복한 감사는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자조하고 문초를 포기했다.

이때 문호장은 자신의 천명이 다한 것을 깨달았다.

감찰사를 만난 지금 자신의 소원을 성취할 기회라고 안 그는 신중한 태도로 말했다.

“소인에게는 죽은 후 제사를 지내줄 아들이 없고, 딸만 있으니 소인이 죽은 뒤에 해마다 오월 단오날에 관가에서 소인의 제사를 차려 줄 것을 소원합니다.” 라고 말하니 쉬운 일이라 생각하며 감찰사는 “고을 원에게 말해 그렇게 하도록 하리라.”라고 문호장의 제의를 응락했다.

문호장은 그제야 여한이 없다는 듯 저를 죽일려면 지릅대 한 개비면 족할 것입니다.(지릅대는 삼베를 생산하는 삼대이다) 하고 자신의 양쪽 겨드랑 밑에 있는 자그마한 날개를 보여 주었다.

“지릅대로 여기를 살짝 쳐보시오”

감찰사는 의심 가득해 믿지 못하고 시험삼아 사령더러 그러하라 했다.

지릅대를 구해온 사령은 가르쳐 준 대로 지릅대로 그 자리를 살짝 쳤는데도 문호장은 자는 듯이 숨을 거두어 버리고 말았다.

“허어, 위인을 죽였구나!”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감찰사는 후히 장례를 지내주고, 문호장의 유언에 따라 해마다 단오날에 공양을 바치는 제사를 지내주라고 명했다.

그 다음 해부터 감찰사의 명을 받들어 영축산 정상에서 문호장의 영혼을 위한 공양이 베풀어졌고, 그 후 영축산 아래 문호장을 모신 사당에서 해마다 문호장을 위로하는 굿판이 벌어지는데, 360여 년이나 이어오고 있다.

 

 

<문호장굿[ 文戶長- ]>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매년 단오에 문호장(文戶長)을 모시는 굿. 문호장을 모시기 위한 굿이므로 문호장굿, 호장굿이라 불리며, 단오에 거행되기 때문에 단오굿, 영산단오굿, 봄굿으로도 불린다.

 

문호장 사당은 영산면내에 3개소(영산시장, 영명사, 죽사리)가 있으며 매년 단오날이 되면 문호장에 대한 제사와 각종 굿 놀이 등 무속행사를 거행해 오고 있다

 

세곳은 영산시장 공영주차장 뒤편에 문호장사당, 영명사내 문호장 사당, 죽사리 문호장 발자국 뒷산 정상에 작은 마누라가 살던 자리에 문호장 작은 각시 사당이 있다.

 

문호장굿에는 문호장을 신으로 모시게 된 내력이 있다. 옛날 영산에 호장(戶長)이라는 향직 벼슬을 하는 문(文)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는데, 도술과 신통력, 무술에 달통한 사람이었다. 어느 해 관찰사가 새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는 영산 순시 도중 문호장의 능력을 발견하고, 매우 두려워하여 훗날을 망칠 화근으로 여겼다. 이에 문호장을 없애려 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이런 차에 문호장은 관찰사에게 자신을 위한 당(堂)을 지어줄 것과 단옷날 그 당에서 자신을 위한 굿을 올려준다면 스스로 목숨을 거두겠다는 제안을 한다. 관찰사의 약속을 얻어낸 후 문호장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고, 관찰사의 약조대로 매년 단옷날 굿을 행하던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간 단오굿을 치르지 않은 해도 있었는데, 근처 마을 주민들이 호환(虎患)의 피해를 입었다거나 굿에 사용할 쌀을 먹은 참새가 즉사하였을 때이다. 이러한 이야기들로 보아 당의 영험성을 크게 믿었던 것 같다.

 

굿은 영취산 중턱에 지어진 문호장 사당에서 거행된다. 옛 사당을 헐고 근래에 다시 지은 것인데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은 세 칸짜리 건물이다. 현판에는 문성황각(文城隍閣)이라 새겨져 있다. 원래는 문호장과 그의 딸, 본처와 첩 이렇게 각각의 사당이 하나씩 있어 총 네 개의 사당이 영취산 중턱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사당에 모두 모셔져 있다.

현재 하나 남은 사당의 내부 중앙에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문호장을 그린 탱화와 호장문선생신위(戶長文先生神位)라 적힌 위패가 모셔져 있다. 왼쪽에는 문호장의 두 부인과 딸이 그려진 탱화가 있고 오른쪽에는 산신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문호장 탱화와 오른쪽 산신 탱화 사이에 목불상 하나가 모셔져 있는데, 이는 문호장 사당 뒤에 서 있던 나무를 베었을 때 그 안에서 나온 것이라 전한다.

예전의 문호장굿은 매우 큰 굿이었다. 1968년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 준비에서부터 굿을 마칠 때까지 닷새가 소요되었다. 그러나 근간 문호장굿은 규모가 축소되어 단오 전날에 준비를 시작하여 단옷날 굿을 연행하고 마친다. 우선 단오 전날 저녁 문호장을 위한 유교식 제사가 치러지고 다음날을 위한 굿청이 마련된다. 단옷날 아침부터 굿이 시작되는데 각 거리는 다음과 같다.

① 팔도당산 선왕마당굿: 팔도의 당산과 팔도 고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굿의 시작을 알린다. ② 부정굿: 굿청의 부정한 것을 물린다. ③ 문호장 제사굿: 문호장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린다. ④ 문호장 위령굿: 문호장과 그의 딸, 부인과 첩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각각 맞는 복장으로 등장하여 춤을 춘다. ⑤ 천왕호장굿: 무당이 단지 위에 올라 춤을 춘다. 오방신장기와 장군칼 등을 사용한다. ⑥ 시왕풀이굿: 명부의 시왕을 모셔 죽은 혼의 천도를 구한다. ⑦ 해원천도굿: 죽은 조상을 천도하기 위해 용선을 띄우고 베를 가른다. ⑧ 마당굿: 모든 참가자가 어울려 한바탕 춤판을 벌인다. ⑨ 회향시석굿: 모든 망자와 저승사자를 모셔 놀리고 잡귀잡신을 대접하여 돌려보낸다.

 

◇문호장사당

문호장 사당은 영산면내에 3개소(영산시장, 영명사, 죽사리)가 있으며 매년 단오날이 되면 문호장에 대한 제사와 각종 굿 놀이 등 무속행사를 거행해 오고 있다

 

◇목서낭신(영명사 경내에 있는 문호장사당 내)

이 목불은 사연이 꽤나 길다. 원래 문호장 사당은 영축산 산성터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사당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은 명당이라 묘지로는 그만이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 영산 신씨(신씨 종가고택은 영명사 아랫마을에 위치)들이 구입했다. 사당에는 수백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인부들이 그 나무를 베어서 영산장에 내다 팔았다. (이 나무를 베는 데 참여한 4-5명의 인부는 특별한 병도 없이 모두 죽었다고 한다.) 한 목수가 그 나무를 구입해 마루 밑에 넣어 두었는데 그 날 밤 벌거벗은 아이가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하도 이상해 그 나무를 자르니 그 곳에서 하반신이 잘려나간 목서낭이 나왔다. 인근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하자 좋지 못하다고 버려야 한다고 해서 도천 임해정 나루로 가서 강물에 떠내려 보냈다. 그런데 이튿날 버린 나무가 강물을 거슬러 십자뚝을 타고 다시 올라오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이 소문이 퍼져나가자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어느 비손하는 사람이 갖고 가서 모셔 두었다. 인근에 소문이 자자하게 번져나가자 한 일본인이 영험하다 생각하여 그것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신사에 모셔두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꿈에 한 할아버지가 나타나 고국땅으로 나를 보내주면 장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창녕 고을로 오게 되었다. 이 목신을 두릉 사당에 모셔 두었다가 1960년대 현재 영명사 사당자리에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영산면 죽사리에 문호장 발자국이 있는 뒷산 정상에는 작은 마누라가 살았던 자리에 문호장 사당이 있다. 허물어 져가는 사당을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증축하고, 대문도 신축했다. 사당이라는 현판도 없다. 작은마누라의 설움일까 지금까지도 홀대 받고 있다.

문호장의 흔적(文戶長의痕迹)

경남 창녕 영산면일대에는 문호장(文戶長)이라는 영웅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문호장은 370여 년 전 영산에 실존하던 인물이라 하나 기록을 찾을 길이 없고, 다만 아전의 신분으로 호장(戶長)에 오랫동안 있었다고 해 문호장이라 불리며 당시 관의 횡포에 억눌린 평민의 원망을 해결해 준 영웅 · 신격화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초인적 신통력을 갖고 마을의 연지못 가에 살았으며 무인이 아니면서도 말 잘 타고,활 잘 쏘며,검술,도술도 잘 부리고 축지법도 했다.

자인(경북 경산)에 그의 소실이 있었는데 호랑이를 잡아 타고서 다녀왔다고 전해온다.

죽기전 감찰사에게 한 소원은 “소인에게는 죽은 후 제사를 지내줄 아들이 없고, 딸만 있으니 소인이 죽은 뒤에 해마다 오월 단오날에 관가에서 소인의 제사를 차려 줄 것을 소원합니다.” 라고 하고 지릅대에 맞아죽으니, 그 다음 해부터 감찰사의 명을 받들어 영축산 정상에서 문호장의 영혼을 위한 공양이 베풀어졌고, 그 후 영축산 아래 문호장을 모신 사당에서 해마다 문호장을 위로하는 굿판이 벌어지는데, 360여 년이나 이어오고 있다.

그런 문호장은 오랜 세월 온 고을 사람들로부터 영산의 수호신으로 추앙받아 왔다. 매 년 단오날 마을 사람들은 문호장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며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빌고 있다. 검은 바위 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발자국은 전설대로 거인의 발자국 같기도 하고 이 지방에서 발견되는 공룡 발자국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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