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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울

숭인동 동묘와 벼룩시장

by phd100 2023. 11. 26.

 

1) 동관왕묘(東關王廟) 또는 동묘(東廟)

흥인지문(동대문) 밖 숭인동에는 동묘가 있다. 동묘는 중국 후한의 장수인 관우를 신앙하기 위해 건립한 묘당이다. 《증보문헌비고》 <예고(禮考)>를 보면, 임진왜란 때 가끔 관우의 혼이 나타나 명나라 군사를 도왔으므로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관왕묘를 건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란 후 민심 이반을 우려한 당시 기득권층이 중화사상에 입각한 사대주의적 통치 질서를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 동관왕묘(서울 東關王廟) 또는 동묘(東廟)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를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 땅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다.

 

이 보고를 받은 명나라는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동대문 밖에 1599년 공사를 시작하여 1601년(선조 34년)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명나라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하였다.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9,315m²로 되어 있다. 동관왕묘의 중심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이다.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의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 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남대문 밖에는 동묘보더 먼저 생긴 남관왕묘가 있었으며,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를 지었다. 남관왕묘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조선총독부가 철거했다.

이 중 남관왕묘는 조정에서 관리하며 왕실에서도 제사를 지냈으나 1908년(융희 2년) 제사를 폐지하고 동관왕묘는 지방 관청으로 이관했다.

 

최근 동묘의 금동 관우상 뒤편 일월오악도 뒤에서 운룡도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발견된 운룡도는 검수를 받고 원래대로 일월오악도 뒤에 그대로 걸어두어 가려져 있다.

인근에 수도권 전철 1호선·6호선 동묘앞역이 있다.

 

동관왕묘 소장유물인 백자 동묘치성병 명병(白磁‘東廟致誠甁’銘甁)은 동묘에서 치성(致誠)을 드릴 때 사용하던 백자병이다.

 

 

<잠간> 동묘 부근에는 고려의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청룡사(靑龍寺)가 있다. 청룡사의 본래 이름은 정업원(淨業院)이었다. 이곳은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와 관련된 곳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가자 이곳 정업원으로 옮겨와 살았다. 정업원은 왕실 궁녀들이 말년을 보내던 곳이다. 정업원과 마주한 곳에는 동망봉(東望峰)이란 봉우리가 있는데 정순왕후는 매일 이곳에서 단종이 있는 영월 쪽을 바라보며 눈물지었다고 한다. 정업원에 행차한 영조는 이곳에 누각과 비석을 세우라 명한다.

 

임금이 정업원의 옛터에 누각을 세우고 비석을 세우도록 명하고,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다섯 자를 써서 내렸다. 정업원은 흥인문 밖 산골짜기 가운데에 있는데, 남쪽으로 동관왕묘와 멀지 않았으며, 곧 연미정동으로 단종대왕의 왕후 송씨가 조용하게 거주하던 옛터다.

실록에는 영조가 왕세손(정조)과 함께 창덕궁에서 정업원까지 행차하여 배례(拜禮)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임금은 친히 '東望峰(동망봉)' 세 글자를 쓰고 정업원과 마주 대하고 있는 봉우리 바위에 새기도록 명하였는데, 곧 정순왕후가 올라가서 영월 쪽을 바라다보던 곳이다.

 

정업원 비각에는 '前峯後巖於千萬年(앞산 뒷바위 천만년을 가오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것 역시 영조가 친히 쓴 글이다. 영조가 궁궐 여인들의 한이 서린 곳에 이렇게 애틋한 감정을 지녔던 이유는 바로 그의 친모가 무수리 출신이었기 때문일까?

 

1823년(순조 23년)에는 순원왕후의 병세가 깊어지자 부원군인 김조순이 이 절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왕후의 병이 낫자 절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었다.

 

 

2) 동묘벼룩시장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동묘 벼룩시장” 또는 “동묘 좌판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모습의 동묘 벼룩시장은 1980년대 말 형성되었으며 명성에 비하면 그 규모가 많이 위축되었지만 지금도 온갖 희귀한 물건들이 모여드는 명소로 많은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곳이다.

서울의 종로구 광장시장, 이태원 쇼핑몰과 함께 명실상부한 서울의 3대 벼룩시장 중 하나이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항상 열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날, 어느 때든 갈 수 있는 곳이다.

한때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눈에 번뜩 띄는 필요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는 재미가 있어 즐거웠지만, 희귀 물건이 가끔씩 매물로 나오는 것 외는 가성비가 제로이다.

지금은 그 명성에 비하면 그 규모가 많이 위축됐지만 지금도 온갖 희귀한 물건들이 모여드는 명소지만, 시중보다 비싸다. 그냥 구경삼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의류, 신발, 지갑부터 시계나 전자제품, 고서, 영화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들을 망라하고 있다. 아무래도 동묘 벼룩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의외로 중고의류다. 그래서 동묘구제시장이라고도 부른다.

주로 아파트단지 재활용품 수거함에 모인 옷가지를 상인들이 1년 단위로 계약해 1㎏에 250~300원에 사 온다. 옷의 가격은 대부분 1,000원 정도이지만 모피나 가죽 등은 1만 원대, 명품은 1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방에서도 알뜰족들이 찾아오고,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들이 대량 구매를 해 가기도 한다. 250여 명의 노점상이 매대를 펼치는 휴일 오후가 쇼핑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평일은 부분적으로 열리며, 주말은 종일 장이 선다.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