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하각(丹霞閣), 독성각(獨聖閣), 산신각(山神閣), 삼성각(三聖閣), 칠성각(七星閣) >
우리나라는 사찰에 따라 산신각(山神閣), 삼성각(三聖閣), 독성각(獨聖閣), 삼신각(三神閣), 칠성각(七星閣) 등의 이름으로 대개 대웅전 뒤쪽의 산비탈 외진 곳에 별도 작은 규모의 전각이 있다.
본래 불교의 것이 아닌 불교 밖의 신앙대상으로 우리나라 전통의 신을 모시던 유습(도교적, 토속적)이 합쳐진 형태의 것이어서 한쪽 외진 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이 여러 이름이 있지만 대개 그중 한 가지 이름의 것을 택해 세우는데, 다만 통도사에는 산령각과 삼성각 둘이 있다.
이들 전각은 같은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한국 특유의 전각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토속신앙이 습합(習合)돼 생긴 신앙형태로서 한국불교의 복합성을 나타내는 현상의 하나이기도 하다.
전각의 크기는 대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이고, 건물 이름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한다. 다만, 전남 장성의 백양사처럼 칠성전(殿)이라 하는 곳도 있다.
전각에는 각 신앙 존상(尊像)이나 탱화를 모신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 단하각(丹霞閣)
남양주 흥국사 단하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납도리 맞배집으로 대웅보전 뒤쪽에 ‘단하각(丹霞閣)’이 위치하고 있다.
단하라는 당호를 사용한 스님이 어디 당나라의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스님뿐이겠냐마는 단하각하면 아무래도 단하소불(丹霞燒佛)의 고사로 유명한 당나라의 단하천연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 스님은 파격적 수행관으로 유명하였고, 말년에는 단하산(丹霞山)에 들어가 수행한 선승이다
다시말하면 현판의 '단하(丹霞)'가 무엇을 뚯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단하(丹霞)는 단하소불(丹霞燒佛) 고사의 주인공이다.
일찍이 중국 낙동(洛東) 혜림사(慧林寺)에서 목불(木佛)을 깨 부숴서 불에 태워 추위를 피한 단하는 불상에 무슨 법이 있겠는가?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논설을 펴서 ‘목불을 깨 사리를 구한다’는 선가의 선종(禪宗)이 된 바 있는 분이다.
또 다른 전설은 단하가 사리를 얻기 위해 목불을 쪼개 불을 땠다는 단하소불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 천연 선사를 모신 것이라면 선종(禪宗)과 연관이 있는 전각이다. 그런데 흥국사 이곳에는 산신을 모시고 있다. 산신각인가?
추론해 보건데, 우리나라에서 단하각으로 유명한 사찰은 부석사와 통도사 극락암인데, 이 사찰들은 단하각에서 전형적인 나반존자상을 봉안하고 독성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남양주 흥국사와 서울 성북구 미타사에도 단하각은 있는데 이곳에는 산신이 모셔져 있다. 아마도 육당 최남선(1890-1957) 선생이 독성을 단군으로 인식했었고, 이 단군이 나중에 산신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맥이 닿아 있는 현상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처럼 단하각은 독성각이나 산신각으로 혼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독성각(獨聖閣)---독성(獨聖)은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는다.
따라서 독성각은 나반존자라는 독성님을 모신 당우이다. 나반존자는 나한(羅漢) 중의 한 사람으로 그가 깨달음에 이른 길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등 다른 나한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곧,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스승 없이 혼자서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성자이시다. 즉, 혼자서 스승 없이 자기 힘만으로 모든 진리를 깨친 성자(聖者)이다.
이와 같이 독성이란, 부처님 없는 세상에 태어나 홀로 수행하여 깨친 분이라 독각(獨覺), 독수성(獨修聖) 또는 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하며, 초지성인(初地聖人)에 해당한다.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子)는 홀로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서 해가 뜨고 지는 것, 철따라 잎이 피고 지는 것, 봄에 꽃피고, 가을에 익는 열매 등 변함없이 운행되는 우주의 운행을 보고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연기(緣起)의 이치나 육바라밀(六波羅密)의 이치를 누구에게도 의지않고 깨치신 분으로 특별히 전각을 지어 홀로 모시게 된 것이다.
나반존자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말법시대(末法時代)의 중생에게 복(福)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말세의 복밭(福田)이라고 신앙되는 나반존자가 정확히 어떤 분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머리카락이 희고 눈썹이 긴 모습으로 보아 16나한의 한 분인 빈도라발라사가 아닌가 여겨진다.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라고도 불리는 빈도라발라사는 코삼비국 재상의 아들로서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해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어느 날 빈두로존자가 목건련존자(目揵連尊者)와 시내로 탁발을 나갔을 때 어떤 부호가 전단향(栴檀香)나무를 공중에 매달아 놓고 누구든지 신통력으로 그것을 가져가라고 하는 것을 보고, 그가 신통력을 나타내어 그것을 따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외도들의 조소를 받았으므로 부처님으로부터 부질없이 신통을 나타내지 말라는 질책을 들었다.
민간신앙에서는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 있으면서 불멸후에 중생을 제도하도록 돼있으므로 ‘주세(住世)아라한’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러한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가 우리나라에서 독성인 나반존자(那畔尊子)로 등장한 것으로 짐작을 하고 있다.
나반존자는 오직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신앙대상이다.
따라서 나반존자라는 명칭은 석가모니의 10대 제자나 5백 나한의 이름 속에 보이지 않고, 불경 속에서도 나반존자의 명칭이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중국의 불교에서도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은 없다.
그래서 최남선(崔南善)은 “나반존자는 원래 불교의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 고유 신앙의 것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독특하게 운문사에는 그 소속 사리암에 천태각을 세워 그곳에 나반존자를 모셨다.
• 산신각(山神閣)---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한다.
부산 범어사와 대구 파계사, 통도사 등에서는 산령각이라 한다.
산신(山神)은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삼아,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난다. 인격신으로서 산신은 나이 든 도사 모습이다.
불도와 사찰을 호위하는 역할의 일부를 '산신'에게 맡긴 것인데, 화엄신중(華嚴神衆) 속에 ‘산신(山神)’이 이미 들어 있고, 사찰의 신중탱화(神衆幀畵) 속에도 '산신' 그림이 흔하게 나타나는데, 일종의 외호신중(外護神衆)으로 산신령을 모시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지형 조건 때문에 우리나라 사찰은 대개 산지가람(山地伽藍)인지라 우리의 조상들은 아득한 옛적부터 산악, 산신에 관한 숭배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는 민간신앙에서는 산에 사는 영물로 보기 때문에 산신은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산신각 안에는 드물게 호랑이를 타거나 호랑이에 기대앉은 '산신상'을 봉안하기도 하나 대개는 그러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낸 탱화를 봉안한다.
불승이나 불자들이 사찰을 왕래하는 길에 맹수의 피해가 적잖이 있었을 것임을 생각할 때, 그러한 재앙을 막아 주는, 해당 지역과 인연 있는 신중(神衆)을 특별히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민간에서 '산신령'으로 터부(Taboo)의 대상이 되는 호랑이는 당연히 불교의 '산신'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됐다. 그래서 산신이 불교와 일찍이 접합됐을 것이다.
그 신상이나 탱화를 보면 산신이 남자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여자인 경우도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 산신이 관장하는 것으로 믿는 산들인 지리산, 계룡산, 속리산 등의 절에는 노파의 모습을 한 女 산신 탱화나 소상(塑像)을 드물게나마 만날 수 있다.
산신각의 ’산신(山神)‘이란 고조선시대 기자(箕子)가 조선을 계승했을 때 단군(檀君)이 아사달(阿斯達)에 가서 산신이 됐다고 <삼국유사>에 전하는바, 고려시대에는 현세이익(現世利益)의 신으로서 신앙한 것이 지금에 산신으로 모시게 된 듯하다. 민간에선 산신(山神)이 재(財)를 의미한다.
따라서 산신각에 재산이 일기를 기원하거나 자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행해진다.
• 삼성각(三聖閣)---삼성각에는 한반도에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수용된 산신(山神)과 칠성신(七星神) 그리고 독성(獨聖, 나반존자)를 함께 모시는 당우이다. 삼성각은 삼신각(三神閣)이라고도 한다.
소원성취를 비는 암자에 많이 있어 신령스러움과 정감이 많이 가는 곳이다.
세 가지 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래 일신(一神)이지만 그 하나 속에 셋이 깃들어 있는, ‘즉일즉삼(卽一卽三)’의 ‘3’ 수의 신성과 그로 인해 만유를 창조, 섭리(攝理)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삼성(三聖)신앙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민간신앙인 산신신앙과 도교의 칠성신앙 등을 불교가 수용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삼성을 함께 모실 때는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을 짓고 따로 모실 때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을 짓는다.
양산 통도사의 삼성각은 금강계단(대웅전)과 구룡지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데, 다른 절의 삼성각과는 다른 삼성을 안치했다.
통도사의 삼성각에는 산신을 별도의 산령각에 모시고, 삼성각에는 고려 말 3대 선승인 지공(指空, 1300~1363)화상과 나옹(懶翁, 1320∼1376)화상, 그리고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년~1405년), 세 분의 영정을 모셔놓고, 나반존자인 독성탱화와 칠성탱화를 함께 안치하는 독특한 형태이다.
지공화상은 인도에서 온 스님으로, 고려 말 충렬왕대에 중국(元)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통도사에서 부처님의 가사를 친견하고 사리계단에 참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양주 회암사를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당시 불교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나옹화상은 고려 말의 이름 높은 스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무학대사 역시 태조의 왕사로서 조선 건국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고승이다.
• 칠성각(七星閣)---칠성각(七星閣)은 칠성신(七星神)을 모시는 불교의 전각이다. 북쪽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 중에서 가장 강력한 빛을 발하는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칠성신을 모신 곳이다. 칠성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며, 의인화한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주존으로 한다.
고대인들은 북두칠성을 하늘에 있는 거대한 시계로 여겼다. 그래서 북두칠성은 시간의 신이다. 이러함으로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과 건강을 관장한다.
즉, 칠성은 수(壽)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수명이 짧을 것 같아서 수명을 연장하고 싶은 사람은 칠성각에 가서 칠성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독성각은 독각(獨覺)을 모셨다는 점에서는 불교적인 것이지만 칠성각과 산신각은 원래 불교가 아니었다. 칠성각의 주신은 북두칠성이고, 북두칠성을 모시고 수복식재(壽福息災)를 축원하는 것이 칠성신앙이기 때문에 이는 도교의 신앙이 불교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온 외래신(外來神)이다.
칠성신앙은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지배한다는 도교의 믿음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들어왔지만, 성행하지 않다가 조선말에 유행했다.
칠성신은 칠원성군(七元星君)의 준말로 비를 내려서 농사가 풍작이 되도록 하고, 수명을 연장해주고 병을 없애주며, 특히 어린이의 수명장수를 주관하고, 또한 재물을 늘려 주고 재능을 돋우어 준다는 믿음의 대상으로 현세 이익적 기복신앙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수호신으로 불교 속에 수용됐다가 다시 수명신(壽命神) 본래의 모습이 강조돼 오늘에 이르렀는데,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북두칠성의 일곱별은 다시 인간의 여러 가지 운명을 관장한다고 하는데,
제1북두는 자손에게 만덕을 주고,
제2북두는 장애와 재난을 없애주고,
제3북두는 업장을 소멸시키고,
제4북두는 구하는 바를 모두 얻게 하고,
제5북두는 백가지 장애를 없애주고,
제6북두는 복덕을 두루 갖추게 해주고,
제7북두는 수명을 오래 연장시켜 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신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일반 민중들은 칠성을 깊이 신봉하게 됐고, 이러한 민중의 바람을 더욱 구체화해 부처님의 모습으로 수용해서 칠성신앙을 불교적으로 변용(變容)시켰던 것이다.
인도에서도 북극성을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 하고 큰곰자리의 7개 별을 북두칠성이라 불러서 신격화했다.
북극성인 묘견보살은 칠성을 권속으로 거느리고, 특히 눈이 밝고 청정해 사물을 잘 봐서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고, 국토를 옹호하며, 재난을 제거하고,
적을 물리치며 사람의 복을 증장시키는 신으로 모셨다.
천문학적으로 보면 지구 자전현상으로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바퀴를 회전한다.
[참고]
<삼신각(三神閣)과 삼성각(三聖閣)의 차이>
사찰에서 삼신각(三神閣)과 삼성각(三聖閣)을 혼용해서 쓰기도 하나, 원칙적으로 삼신각과 삼성각은 다르다.
삼신각(三神閣)은 대개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모신다.
삼성각(三聖閣)은 원래 우리의 조상신, 즉 환인, 환웅, 단군, 세분을 모시던 삼성(三聖)신앙이 불교가 한국사회에 토착화하면서 토속신앙이 불교에 습합돼 생긴 신앙형태이다.
이러한 삼성각이 고려 말에는 변해서 통도사의 경우, 삼성각에 고려 말의 삼대성승(三大聖僧)이었던 지공(指空)화상과 나옹(懶翁)화상 및 무학(無學)대사 세 분의 영정을 모셔놓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도교 및 유교, 불교 등 외래종교가 들어 와서 그때마다 우리의 민속문화 속으로 스며들어가 습합되는 현상을 보였다. 그리하여 삼신각(三神閣)은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모셨고, 이를 삼성각이라고도 했다.
또 삼신각은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독성각(獨聖閣)이란 이름으로 각각 별도 전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한국 특유의 전각으로, 한국불교의 복합성을 나타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교 밖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 이름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했다.
전각 내부에는 각 신앙 존상과 탱화를 모신다. 산신(山神)은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낸다. 인격신으로서 산신은 나이 든 도사 모습이다.
산신, 나반존자, 치성광려래, 세 가지 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래 일신(一神)이지만 그 하나 속에 셋이 깃들어 있는, ‘즉일즉삼(卽一卽三)’의 원리로 만유를 창조, 섭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중생들의 바람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저 굶지 않을 만큼의 재물을 얻어서 까운 친인척과 이웃사람들과 어울려 친하게 지내고, 추하지 않게, 건강하게 살고, 자식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가에서는 그런 소박한 바람마저 버리라 하기에 너무나 야박한 일이었다. 그래서 중생들의 소박한 바람과 불교가 타협을 하게 됐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재물을 주는 산신(山神)과 새 생명을 주는 칠성(七星), 복을 주는 독성(獨聖)이 사찰에 들어오게 된 이유다.
1) 절에 웬 단군상(檀君像)인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불교사찰이 있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지 어언 2천년이나 되었으니 불교도 이제는 한국전통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가 우리 고유의 종교가 아닌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민족 고유 종교는 신교(神敎), 즉 단군교(檀君敎)였다. 그래서 불교가 처음 고구려나 백제, 신라에 들어 왔을 때 모진 박해를 받았다.
흔히 불교와 신교가 함께 공존 공생하는 현상을 신불습합(神佛褶合)이라 한다. ‘불교가 신교와 겹쳤다’는 뜻인데, 달리 말하면 겹옷을 입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절에 더러 단군상을 모셔놓은 것이 바로 신불습합의 좋은 사례이다. 그래서 삼성각이나 산신가각에 산신으로 단군을 모시기도 한다.
그리고 사찰의 중심 전각을 대웅전(大雄殿)이라 이름 하는 것도 한국에만 있는 명칭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환웅전(桓雄殿)이 대웅전이 됐다는 것이다.
2) 산신(山神)의 수염은 검은가? 흰가?
김천 직지사(直指寺)에는 걸작이라는 유명한 산신도가 있다. 그 산신도의 수염이 검다. 다른 절의 산신도에는 산신의 수염이 백발이다. 이런 흰 수염은 중국의 도교에 물든 산신도이다. 산신 무릎에 안기듯이 바짝 붙은 호랑이 역시 위엄이 있다. 직지사 산신도의 호랑이 눈빛은 살아 있다.
산신의 뒤에는 늙은 소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이 노송이 다름 아닌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 와서 신시(神市)를 열었고 또 그곳에서 웅녀를 만나 단군을 낳았다는 신단수(神檀樹)를 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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