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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남

구례 사성암(四聖庵)

by phd100 2014. 11. 12.

 

사성암(四聖庵)

구례읍에서 화엄사로 가는 문척면 갈랫길 남쪽 2km 지점에 봉긋하게 솟은 산이 있으니 이름이 오산(鰲山)이다.

산의 생김새가 마치 거북이가 지리산을 등에 짊어진 채 목을 길게 빼고 섬진강 물을 마시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큰거북이 오(鰲)자를 썼다는 전설이다.

오산은 해발 530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섬진강이 기슭을 감싸고 흐르며, 꼭대기에 오르면 구례와 곡성의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경승지다. 구례의 옛 이름은 봉성이다.

<봉성지(鳳城誌>에는 오산을 가리켜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소금강이라 일렀다’고 적고 있다.

또한 원감국사(圓鑑國師) 문집에서도 ‘오산 정상에 참선을 수행하기에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도선, 진각 두 국사가 연좌수도를 했던 곳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로 미뤄 보건데 오산은 통일신라 때부터 고승들의 참선을 위한 수도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성암은 화엄사의 말사로서 오산의 꼭대기 깎아지른 듯 한 바위 벼랑 틈서리에 박힌 듯 매달려 있다. 그리고 암자 일원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암자는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사성암사적(四聖庵史蹟>에는 이 암자의 이름이 처음에는 ‘오산암’이었으나 덕이 높은 4명의 고승, 즉 원효(元曉) . 도선(道詵) . 진각(眞覺) . 의상(義湘)이 수도했다고 해서 네 성인을 기려 사성암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성암이 유명해진 것은 근래에 금강산의 보덕암과 같이 가파른 절벽에 높은 기둥을 세우고 받쳐 지은 약사전, 지장전, 유리광전과 같은 절집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절집들을 아래서 올려다보면 마치 처마 밑에 지은 제비 둥지처럼 보인다. 지금 남아 있는 옛 절집으로는 인법당(因法堂)이라는 조그마한 목조 기와집이 있다.

 

사성암의 성보는 아무래도 암벽에 음각으로 새긴 약사여래불(전남 문화재 22호)이라 할 수 있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주며, 현세의 복을 이루게 하는 부처다.

이 마애입상은 25m 높이의 절벽에 있는데 근자에 그 앞에 높은 기둥을 세우고 법당인 약사전(藥師殿)을 지어 주불로 모시고 있다.

전체 높이는 약 4m로 왼손에 중생들의 병을 고치기 위한 약병을 들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었는데 왼쪽 어깨의 세로로 난 옷 주름에 가로 줄이 여러 개 있어 다른 고려시대의 마애불과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불상의 머리와 몸의 뒤에는 각기 두 줄로 두른 덩굴무늬의 광배가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손톱으로 새겼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단단한 바위에 새긴 조각 수법을 보건데 손톱으로 긁어 만들 수가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형식으로 보아 훨씬 후대에 조각한 것이니 전설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다.

 

약사전에서 내려와 암자 뒤편으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지는데, 나이 800년이 되었다는 귀목나무가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좁은 돌계단을 조심스레 타고 오르면 지장전(地藏殿)이 나타나고 걸어서 왼쪽으로 조금 돌아가면 사람들이 그 앞에서 두 손 모으고 빌면 바라는 것을 이루게 해준다는 소원바위가 우뚝 서 있다.

 

이 소원바위에는 나무를 팔기 위해 뗏목을 만들어 섬진강에 띄우고 하동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아낙네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무꾼의 애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 전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내용이 소원바위 위에 오르면 이해가 간다. 저 밑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바람이 세차 가만히 있어도 몸이 움직인다. 옛날에 저 곳 섬진강에 뗏목을 띄워, 하동으로 남편이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남편이 오기만을 이곳 사성암 소원바위 앞에서 아내는 날마다 기다렸을 것이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올라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부인은, 허기져 쓰러져 그렇게 세상을 떠났나 보다.

그런 것을 알 길 없는 남편은 부인께 줄 선물을 사서 돌아왔으나, 이미 부인은 기다림에 지쳐 세상을 떠난 뒤였다. 남편은 그런 부인을 목매어 찾다가 역시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나 보다. 아마도 그런 애절한 부부의 사연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소원바위에서 몇 발짝 걷지 않아 절벽 사이에 산왕전(山王殿)이 있고, 그 왼쪽바위 틈사이에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굴이 있다. 도선국사가 수도했다는 도선굴이다. 이 도선굴을 빠져나가면 구례읍내 전경이 나타나고, 왼쪽편으로 나무계단으로 어렵지 않게 오산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정상에 있는 정자에 오르면 천왕봉, 반야봉 등 지리산 연봉과 더불어 구례, 곡성 등 섬진강 일대 들녘이 한눈에 들어와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게 한다.

 

사성암으로 오르는 교통수단은 셔틀 버스나, 택시를 타야한다.

문척면 죽마리에서 사성암으로 오르는 산길은 경사가 심해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을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마을에서 사성암 입구까지의 길은 경사가 심하고 거칠다. 그래서 20여분 달리는 동안 마을버스의 차체가 마구 흔들려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성수기는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 서서 기다려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왕복여비 역시 거리에 비해 그리 만만한 금액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