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재(樂書齋)>
곡수당은 낙서재가 오른쪽 위로 바라 보인다. 200m 떨어진 아늑한 곳에 있다.
낙서재란 독서를 즐기며 학문하는 선비의 삶을 상징한다. 낙서재(樂書齋)는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동천석실과 마주 보이는 곳에 있다. 주로 이곳에서 많은 책을 쌓아두고 독서하며 자제들을 가르쳤다 한다
풍수지리에도 능했던 윤선도는 보길도의 주봉인 격자봉에 올라가서 형국을 파악하고 그 혈맥이 세차례나 꺽이어 내려오는 곳에 낙서재를 마련했다.
"학문이나 글을 하는 것이 가장 즐거움이다"는 뜻이 담겨 있는 낙서재는 윤선도가 인조 15년에 들어와 1670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걸작을 남겼다
보길도는 윤선도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자 이상향의 낙원이었던 셈이다.
경내에서는 낙서재 외에서 무민당(조상의 위폐를 모시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집), 동와, 서와 (동서쪽에 있는 잠깐 휴식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움집) 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서와를 빼고는 모두 복원되어 있다.
낙서재는 소은병이라는 병풍바위가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고 한다.
소은은 세속을 싫어하는 은둔해 있다는 뜻이며 은병청풍이라는 부용동팔경이 있다.
<곡수당(曲水堂)>
곡수당(曲水堂)은 윤선도가 정을 주었던 아들 학관이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이곳에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지은 집으로 초당 한 칸의 작는 정자 · 석정(石亭) · 석가산(石假山) · 연못 · 화계(花階) · 다리 등의 다채로운 조원(造苑)이 베풀어진 곳이다. 복원을 통해서라도 고산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곡수당으로 가려면 아치형 홍예교나 석교를 건너야한다. 격자봉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이 월하탄을 거쳐 서재앞 일삼교와 유의교, 홍예교 밑을 흐르며 곡수당 옆에 조성된 상연지와 하연지에 저수된다.
세월이 흘러 훼손되었을 이 건축물과 다리는 고증을 통해 복원을 했겠지만 아름다운 구조와 조경 때문에라도 이렇게 밖에 복원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곡수당 옆에는 서고가 있다. 서고를 가기 위해서도 작은 돌다리 일삼교를 건너야한다. 돌을 쌓아 그 위에 석판을 올려 놓고 그 위에 돌을 얹는 방식으로 서재와 이어 닿게 높이를 유지한 것이 앙증맞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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