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無爲寺)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칭했다는 기록이 『무위사사적(無爲寺事蹟)』에 전하나, 이는 원효스님의 생몰(生沒)연대(617-686)와 맞지 않아 신빙성이 부족하다.
이후의 연혁은, 삼국통일 후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갈옥사(葛屋寺)로 창건한 것이 첫 번째 중창이라 전한다. 어찌됐던 그전부터 있었던 사찰임이 틀림없고, 원효의 발자취가 있었던 것 만은 틀림없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안에는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이 중 국보 제13호 극락전은 벽에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本尊佛) 뒤의 탱화(幀畵)만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어떤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무위사는 활기를 띠게 되는데, 1407년(태종 7) 12월 조정에서 각처의 명찰을 여러 고을의 자복사(資福寺)로 삼게 하였을 때 무위사는 천태종 17사 중의 하나로 소속되었다.
따라서 무위사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선종사찰에서 천태종으로 성격이 변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사격 변동은 고려후기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의 활발한 활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만덕산 중심의 백련결사 역시 천태종의 법화신앙에 입각한 결사운동으로 무위사의 사찰성격 변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국 무위사는 천태종 백련결사가 활발했던 고려후기에 천태종 소속 사찰이 되었다가 조선 초 사찰 통폐합의 2차 정리기인 1407년에 천태종 소속의 자복사로 남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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