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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충남

예산 남연군 묘(南延君 墓)

by phd100 2016. 1. 13.

 

남연군묘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미국인 젠킨스를 자본주로 프랑스인 페롱을 통역관으로 삼아 세 번씩이나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고종 5년 약 100여명의 중국인 청년을 러시아 병사로 위장하여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를 파헤쳐(도굴에는 실패)졌다.

흥선대원군이 크게 노하고(천주교인이 사이에서 고자질 한 것으로 알고) 이로 인해 대원군은 양이배척(洋夷排斥)을 더욱 강화하고 천주교를 더욱 박해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에는 모두 네 분의 대원군이 계셨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 인조의 아버지 정원대원군,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인데, 이중 유일하게 흥선대원군만이 살아서 집권했다.

 

흥선군이 26세(1846년)때 경기도 연천군 진남면 남송정(南松亭)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겼다. 황매천(黃梅泉, 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남연군 묘를 가야산(伽倻山) 가야사(伽倻寺)자리에 쓰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안동 김씨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예인(藝人)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난초나 치고 한량처럼 거들먹 거리면서 돌아 다닐 때,

정만인(鄭萬仁)이라는 지관이 찾아와 ‘충청도 덕산 오서산에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있고, 또 가야산 동쪽 덕산에 2대에 걸쳐 황제(皇帝)가 나올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으니 둘 중 한곳에 선친의 묘를 쓰시오‘ 라고 했는데 후자를 택하여 명당자리를 알아본즉 그 자리가 가야산 가야사의 보광전 앞에 있는 금탑(金塔)자리 였다.

 

대원군은 가야사 주지에게 돈을 주어 중들을 내쫓고 빈집을 만든 다음 불을 질러 폐사시켰다.(1846년)

이때 철제 본존불은 녹아 내려 없어지고, 극락전에 있었던 그리고 금탑을 허물고 묘를 쓰기로 한 전날 밤 대원군 4형제가 잠을 자는데 똑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 흰옷을 입은 늙은이가 욕설을 늘어놓으며 ‘나는 금탑(金塔)의 신(神)이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내 거처를 빼앗느냐? 끝내 이곳에 장사를 지낸다면 너희 4형제가 벼락 맞아 죽을 테니 속히 돌아가라.’

4형제가 같은 꿈을 꾸고 난 뒤 모여 앉아 의논하기를, 세 형제는 모두 여기 묘를 쓰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나, 대원군은 ‘그렇다면 진정 여기가 신이 살 정도로 좋은 명당입니다.’

 

‘안동 김씨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도 여기에 묘를 쓰야 합니다.’하여 결국 묘를 쓰게 되었는데, 금탑을 무너뜨리고 도끼로 탑 밑 바닥을 깨뜨리니 밑은 아주 단단한 암반이어서 도끼가 튀기만 하였다.

 

흥선군은 도끼를 높이 쳐들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나라고 왜 왕의 아비가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도끼는 다시 튀어 오르지 않고 제대로 탑밑 암반을 팔 수 있었다.

매장을 하고 난 뒤 나중에 누군가 손을 댈까봐서 철(鐵) 수 만근을 녹여 붙고, 강회(지금의 시멘트)를 비벼서 다졌다. 그런 묘를 독일 오페르트 일당이 도굴에 실패한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하여 남연군의 묘를 쓴 후, 7년 뒤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고종 이명복(李命福)을 낳았고, 고종은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 후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었으며, 아들은 고종, 손자는 순종황제가 되었다.

그 후 대원군은 가야산의 음덕에 보답하고 싶어 남연군 묘 맞은 편에 절을 짓고 보덕사(報德寺)라 하였으니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실 원당 사찰(王室願堂寺刹)이다.

 

그러나 그 때의 절 집은 6.25때 소실되고 지금은 초라한 비구니사찰로 남아 있다. 흔이들 절에 있을 법한 대웅전이니 대웅보전이 없고 그 대신 극락전(極樂殿,지장보살이 주불)이 있다. 이 극락전은 가야사에 있었던 극락전을 그대로 본떠 짓고 가야사에 있었던 지장보살을 모셨다.

 

그렇다면 과연 충청도 덕산 땅에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어디 있을 까? 그래서 졸부를 꿈꾸는 세인들이 남연군묘 옆에 묘를 계속 쓰고 있으니, 지금은 주위가 거의 공동묘지 화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