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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사찰 & 함께 가고 싶은 곳
여행-전남

화순 운주사

by phd100 2016. 12. 19.

화순읍(和順邑) 에서 능주를 거쳐 서쪽을 향하여 도곡으로 내려가다 다시 20리쯤 도암면 소재지인 원천사 거리로 남행하고 이곳에서 다시 강리 중장터로 가자면 5리쯤 길목에 운주사(運舟寺) 란 절이 있다. 이 절은 대웅전과 요사채를 겸한 집 한 채와 다른 건물 한 채로 되어 있어 흡사 시골 재각을 연상케 할 정도로 초라하다. 그러나 이절 주위 50정보 가량의 사찰림은 큰 골짜기를 이루어 이곳에는 탑과 석불(石佛) 이 모여 있어 옛 기록인 동국여지승람이나 읍지(邑誌) 에는 천불천탑(千佛千塔) 이라 기록 되어 있다. 옛날에는 이 산을 천불산(千佛山) 이라 하고 다탑봉(多塔峯) 이라고도 하였다. 이곳은 깊은 산중은 아니어서 주위의 산들은 높다해도 50m 이내의 산들이다. 북쪽에 있는 산 이름은 영귀산(靈龜山) 이라 하여 거북이 모양의 돌산이며 절 정문 앞에서 50m 떨어진 밭 가운데 있는 연화담(蓮花塔) 은 도지정 문화재 4호요, 그 옆에 4각 석실에 모신 미륵불이 도지정 문화재 9호이며 석탑(石塔) 3개중 9층석탑이 제8호 도지정문화재이다. 오른편 산 중턱에 8m 가량의 석불이 있는데 이 석불을 사람들이 머슴 미륵이라 부르고 여기서 10m쯤 올라가면 와불(臥佛) 이 있다.

이 와불은 부부불(夫婦佛) 로써 남편이 12m 이고 부인은 9m 가량이다. 남편 석불은 코 길이만도 80㎝요 얼굴 길이는 3m 이상으로 머리는 남쪽 발은 북쪽을 향하여 누워 있다. 탑에 있어서도 연화탑 이외에 옹기를 쌓아 올려 놓은 듯한 속칭 오가리탑, 사각탑등 다양한 형식의 탑들이 있고, 석불도 와불외에 돌집 속에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는 석불이 있고 2m 의 입석불, 1m 의 좌불등 크고 작은 석불들이 모여 있다. 이 불상들은 코와 귀가 많이 파손되어 있을뿐 아니라 조각적인 면에서도 퍽 조잡하게 보인 점이 많지만 흡사 어른 부처 아이 부처를 모여놓은 어떤 가정을 연상케 한다. 이 절은 신라 오십 이대 효공왕 때 영암구림(靈岩鳩林) 출신인 도선국사(道詵國師) 의 창건이라고 전한다. 도선국사는 일찍 큰 지혜로써 도를 깨쳐 그 높은 도력은 세상을 놀라게 한 대선사(大禪師) 이다. 당(唐) 나라에 가서 풍수지리설을 들여와 처음으로 신라에 전파한 스님이기도하며 후세의 한국 풍수지리설에 큰 영향을 주었고 사후에도 왕사로써 조정에서 시호까지 추증 받은 분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행주형국(行舟形局) 으로써 다시 말하면 태평양을 향해 가는 배의 모양을 하고 있다 한다.

동해안인 관동지방, 영남지방은 태백산맥으로 산이 높아서 무거운데, 호서 호남은 평야가 많아서 가볍기 때문에 동쪽으로 기울어져 나라가 평안치 못하고 항상 변란이 많다고 한다. 이와같은 산세(山勢) 를 관찰한 도선국사는 여기에 높은 탑을 많이 세워 돗대를 삼고 부처로써 짐을 많이 실어 놓으면 배가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며 천불은 사공이 되어 태평양을 향해 저어가면 풍파가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 같은 생각에서 도선국사는 이곳에 절을 세워 나라를 편안케 하기 위하여 사동(使童) 하나를 데리고 와서 터를 다듬어 놓고, 도력(道力) 으로 천상의 석공들을 불러 그 날 닭이 울기 전까지 흙과 돌을 뭉쳐 천불천탑을 만든 다음 닭이 울면 천상으로 가도록 부탁하였다. 그러나 도선국사는 혹시 시간이 부족해서 일을 다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아무도 모르게 절의 서쪽에 있는 일괘봉(日掛峯) 에 해를 잡아 매놓았다고 한다. 석공들이 열심히 탑과 부처를 만드는 곳에서 심부름을 하던 사동 녀석은 공사바위(절 뒤에 있음) 에서 돌을 날라주다가 그만 짜증이 났다. 그 때 도선국사는 일이 거의 되어 가는 것을 보고 가만히 해를 풀어 주었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는 일도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석공들은 와불의 마지막 손질을 위해서 바삐 손을 놀리고 있었다. 이 때 꾀많은 사동은 일에 지치자 그만 닭 우는 소리를 꼬꼬 하고 지르고 말았다. 석공들은 와불을 다 세우고 절에서 6㎞ 떨어진 하수락(下水落) 일대의 돌들을 끌어 모아놓고 일을 마칠 계획이었는데 닭소리가 나자 일손을 멈추고 창고바위에 도구를 모두 넣은 다음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석공들이 모두 천상으로 가버린 뒤에 살펴보니 탑과 부처가 각각 천개에서 하나씩 모자랐다고 한다.

지금도 이 절의 일대 돌들은 모두 천불천탑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때 사동머슴의 실수만 아니였더라면 이 와불은 세워졌을 것이고 와불이 세워지면 천불은 사공이 되고 천탑은 돗대가 되어 운주사 일대는 큰도읍이 되었을뿐 아니라 나라는 태평성세가 되었을 것이라 한다. 탑과 부처를 살펴보면 과연 흙과 잔돌을 섞어 뭉쳐서 만든 것 같이 느껴지며 다른곳의 탑과 부처들에 비하면 석질(石質) 이 거칠게 보인다. 오십년 전까지만 하드라도 아주 큰 부처로 부터 손으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부처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부처가 있었지만 왜놈들과 지각없는 사람들이 가져가 버렸다. 무식한 석공들이 이탑과 석불을 모두 정으로 끊어 주춧돌과 절구통을 만들어 팔았다고 하니 이토록 한심스럽고 개탄스러울 일이 있겠는가? 또 과부와 처녀가 임신하면 돌부처의 귀를 달여 먹으면 낙태가 된다고 하여 수난을 당하였고, 임신 못하는 부인은 석불의 코를 달여 먹으면 임신이 된다고해서 다시 부처님의 코마저 모두 무너져 버렸다. 무지한 사람들의 미신이 이토록 조상들의 유물을 망쳐 버려 지금도 논밭 사이에 흩어져 있는 돌을 모두 부처와 탑이 아닌 것이 없다. 절 아래 마을의 장독대 디딤돌 등은 모두 탑을 헐어서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겨우 17기의 탑과 52개의 석불만 바위 밑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데 그것마저 코와 귀가 없는 부처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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