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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얘기

進禮面(9)

by phd100 2017. 11. 10.



 

<오늘은 진례면 9번째, 담안리, 고모리로 찾아가 끝을 맺고자 합니다.>

 

 

[담안리(談安里)]

면소재지에서 약3km 동쪽에 있으며 산세가 수려하고, 인심 좋은 마을 이다.

남쪽으로는 안산을 경계로 하여 오룡과 접해있고, 북쪽은 백사등을 경계로 하여 서재곡 개동과 접해 있다.

 

마을 앞은 비옥한 넓은 들이 있고, 담안 천을 흐르는 맑은 물로 담안 1,2저수지, 약천 저수지 등에 집수되어 벼 농사를 잘 짓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 담안(談安)

담안마을은 약 600여 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어 초기에는 김녕김씨가 백사등 아래 뱀산을 중심으로 100여 년간 마을을 이루어 살았으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가고, 약 400여 년 전에 청주송씨가 옮겨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한때는 송씨가 100여 호 살았으나 지금은 50여 호이고 타성도 20여 호나 되고 구씨 등의 집성촌인 서재곡은 1992년 법정 분동 되었다.

 

20여 년 전부터 많은 공장이 입주하면서 환경도 심하게 오염되고 순박하던 인심도 각박해지고 있다.

 

◇ 서재곡(書齌谷)

옛날 글을 가르치던 서당이 있어 마을 이름이 서재곡으로 불리어 졌다. 그때부터 마을이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되나 전해오는 기록이 없고, 창원구씨가 입촌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는데 근 300여 년이 된다.

 

담안마을에 속해 있다가 1992년 법정분동 되었다.(여기서 서제곡의 齌를 ‘성낼 제’로 기록한 것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

 

◇ 상평(上坪)

마을에 고인돌이 2기 있는 것으로 보아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나 전하는 기록이 없고,

 

선조 40년 정미년(1607년)에 김해부사로 부임하여 무신(戊申:1608년) 체귀(遞歸: 벼슬을 내놓고 돌아옴)한 이경호(李景湖) 府使의 후손이 경북 영천에서 상평으로 이주하여 평리(坪里)라 불렀으니 지금부터 약 400여 년 전으로 추축된다.

 

처음에는 평리, 들말(들 가운데 생긴 마을, 지금의 상,하평 옛 이름) 등으로 불리다 근자에 와서 상평으로 부르게 되었다.

 

◇ 하평(下坪)

약 300여 년 전 현풍곽씨 진양강씨 순흥안씨가 입주하여 살고부터 마을이 형성되었고, 1956년 마을에 대진국민학교가 개교되어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현풍곽씨 곽주동 효자의 뒤를 이어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전통적인 효자마을이다.

 

◇ 개동(蓋洞)

황새봉의 끝자락이 백호등이 되고, 관등산의 산기슭이 청용등이 되어 동네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북쪽 후등에는 옛 고려장터가 있다. 후등과 청용등사이에는 천곡(泉谷)이 있는데, 동네 전체가 이 우물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개동마을은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마을이 이룩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00여 년 전 경주이씨가 입주하여 살고부터 김해김씨 등 많은 씨족들이 옮겨와 마을을 이루었다.

100여 년 전까지는 운곡(雲谷)이라 불렀는데 구름골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좋지 않다고 개동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황새봉 능선에는 일제 때 일본인이 거인이 출생한다고 하여 쇠말뚝을 박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고모리(古慕里)]

무릉산(武陵山)의 끝자락이 백호등이 되어 동네를 휘감고, 오동산(梧桐山)의 지맥이 청용등이 되어 아늑한 고분지(高盆地)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 고모(古慕)

진례면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고모는 처음에는 고모실이라 하였는데 마치 송아지가 어미소를 그리워하여 되돌아보는 형상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경주이씨 달성서씨들이 입촌하고 김해김씨 전주이씨 밀양박씨등이 옮겨와 마을을 이룬지 수백 년에 이른다.

 

고모와 신모 고령(일명 높은재)의 자연부락으로 마을의 북쪽 군도(郡道)의 길가에는 김해에서 가장 오래된 완산이씨의 열녀 정려가 있다.

 

높은재는 진례 주촌 한림면의 경계가 되는 곳에 있는 적은 마을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로, 마치 진례면 전체의 축소판과 흡사하고, 옛날에는 북쪽으로 낮은 지대이고, 남쪽으로 진례면 방향으론 지대가 높아 면민과도 별로 왕래가 없었던 곳이다.

 

◇ 상우(上右)

전해오는 이야기에 신라시대부터 텃실이란 곳에 마을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고 전하고 지금도 텃실에서는 불상이나 기왓장이 출토되고 있다. 위치는 상우에서 개동으로 넘어오는 골짜기이다. 옛날에는 상우 마을이 여기인 곳으로 추정.

 

현재의 상우마을은 이씨, 진씨, 조씨, 서씨들이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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