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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남

영광 불갑사(佛甲寺)

by phd100 2018. 8. 19.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모악산(母岳山)줄기에 붙은 작은불갑산에 있는 절이다.

 

불갑산(516m) 기슭에 자리 잡은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384년)때 인도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제일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라는 점을 반영하여 절 이름을 부처불, 첫째갑, 불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근처 영광의 '법성포' 라는 지명도 성인이 법을 가지고 들어 온 포구였다고 해서 '아무포'에서 '부용포' 라는 이름에서 바뀌었다 한다.

자연스러운 돌계단을 올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천왕문 안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이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북 흥덕 연기사에 있던 조선 중기 때 작품인데 고종 7년에 설두선사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폐사된 연기사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좀더 자세히 사적을 보면, 1741년(영조 17)이만석(李萬錫)이 쓴 사적비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384년(침류왕 1)에 행사존자(行士尊者)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행사존자는 마라난타(摩羅難陀)의 다른 이름이다.

 

이 설을 따르면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뒤 최초로 세운 절이 되는데, 마라난타가 불갑사 부근의 법성포(法聖浦)를 통하여 들어왔으므로 다소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문주왕 때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 절이 크게 번창한 것은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머무르면서부터이다.

 

고려 때 그 당시 이 절에는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고, 사전(寺田)이 10리에 미쳤다고 한다. 그 뒤 많은 중수를 거쳐 오다가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법릉(法稜)이 중창하였고, 1623년(인조 1) 대웅전의 본존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34년해릉(海稜)이 중창하였는데, 창건 당시의 규모에 비하여 많이 줄어들었다.

 

1644년조암(照巖)이 중수하였고, 1654년(효종 5)과 1675년(숙종 1)에도 중수가 있었다. 1680년채은(采隱)이 대대적으로 중건하였고, 1702년·1705년·1706년에도 팔상전과 탱화·나한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다.

1802년(순조 2)득성(得性)이 중창한 이후 1869년(고종 6)설두(雪竇)가, 1876년설파(雪坡)가, 1879년동성(東城)이 각각 중건하였다. 1904년에는 금화(錦華)가 만세루를 중수하고 1909년에 대웅전을 수리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 영광읍에 불갑사포교당인 원각사(圓覺寺)를 세웠다. 1937년만암(曼庵)이 명부전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고, 1938년에는 설제(雪醍)가 개수하였다. 1974년 범종루와 범종이 조성되었고, 1976년지종(知宗)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불갑사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일주문 주위의 난대 상록수림이 눈에 띄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천연림을 형성하고 있다.

불갑사의 여러 문화 재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불갑사 대웅전(보물 제830호)으로 단청을 칠하지 않아서 더욱 고풍스러워 보인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중앙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셔 특이한 불상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웅전 처마 조각과 연꽃 문양을 세련되게 조각해 끼워맞춘 대웅전의 문살 등은 옛 선인들의 정성어린 손길을 엿보게 한다.

또한 대웅전 용마루 귀면(鬼面) 위에는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새긴 삼존불대(三尊佛臺)가 있는데,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상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짝문을 연화문과 국화문, 보상화문으로 장식했고 좌.우칸에는 소슬빗살 무늬로 처리하여 분위기가 매우 화사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칠성각·일광당(一光堂)·명부전(冥府殿)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된 만세루(萬歲樓)·향로전(香爐殿)·산신각·범종각·세심정(洗心亭)·천왕문(天王門) 등 15동의 건물이 있다.

 

이 밖에도 1359년에 세운 진각국사비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된 사천왕상과 전일암(餞日庵)·해불암(海佛庵)·수도암(修道庵)·불영암(佛影庵) 등의 부속 암자가 있다.

또한 진각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700여 년의 참식나무가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밖의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가 있다. 참식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수로 10월이나 11월에 암꽃과 수꽃이 각각 딴 그루에서 피며, 다음해 10월쯤에 열매가 붉게 익어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 불갑사 참식나무 자생지

천연기념물 제112호. 참식나무는 상록활엽교목으로 신라 법흥왕 때 경운스님과 인도공주 진희수와의 애절한 사랑을 전설로 담고 있기도 하다. 불갑사가 북방 한계선이며 목질이 단단하여 가구재로 쓰이고 타원형의 열매는 염주로 쓰인다.

 

* 불갑사 꽃무릇(석산) 자생지

수선화과에 속하는 꽃무릇은 일명 산수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불갑사 지역은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 등과 함께 전국 최대 규모의 군락지로 추석 무렵의 개화기에는 넓은 숲바닥이 한창 피어난 꽃무릇으로 인해 온통 붉게 물든다.

상사화 종류 중 하나인 석산(꽃무릇. *실제론 상사화와 조금 다르다)은 약 300만㎡ 규모로 우리나라 최대 군락지로 알려져 있다.

영광군은 상사화를 군화로 지정 상사화의 고장으로서의 관광슬로건을 내걸고, 2015년 영광군은 "상사화 피는 굴비의 고향"을 선정하여 상사화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불갑산>

불갑산은 단풍도 화려하다. 불갑사 앞의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 곳에 자리한 불갑사 저수지 앞에서 골짜기와 산비탈을 오색으로 물들인 단풍을 바라보는 것은 가을철 불갑사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저수지 위쪽의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 이어지는 동백골의 단풍도 감상할 만하다.

정읍 내장산이나 담양 추월산의 단풍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운치있는 길로 사색을 겸한 산책코스로 제격이다.

 

체력과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동백골을 지나 구수재 또는 해불암을 거쳐 불갑 산 정상인 연실봉(해발 516m)에 올라보는 것도 권할만하다.

넓직한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에 서면 사방 팔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을 만끽할 수 있다.

 

가까이는 영광, 함평, 나주의 평야지대와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의 모습이 정겹다. 멀리는 동쪽의 고창 방장산과 그 뒤로 아스라한 정읍 입암산, 서쪽 산너머로는 칠산바다의 올망졸망한 섬, 그리고 동남쪽으로는 광주 무등산의 웅대한 모습과 함평벌 너머로 삐죽삐죽 솟은 영암 월출산 등이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불갑산과 불갑사가 들어앉은 계곡은 주변의 다른 산과 달리 비교적 골이 깊고 산세가 우람하다. 산에 올라보면 불갑사를 연꽃처럼 둘러싼 산세가 마치 내륙의 첩첩산중을 연상케 할 만큼 인상적이어서 단풍철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찾아 볼 만하다.

 

* <꽃무릇(石蒜花)와 상사화(相思花)의 차이점>

1. 석산(꽃무릇)

석산(石蒜)은 수선화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일본 원산이며 학명은 Lycoris radiata이다. 꽃무릇이라고도 부른다.

산기슭이나 습한 땅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절 근처에서 흔히 심는다. 꽃줄기의 높이는 약 30~50cm 잎은 길이 30~40 cm, 너비 1.5cm 정도로 길쭉하며 10월에 나왔다가 다음해 5월에 사라진다.

잎이 떨어진 9월에 산형꽃차례에 붉은 꽃이 피는데, 꽃덮이(화피)는 여섯 조각으로 거꾸로 된, 얇은 바소꼴이고 뒤로 말린다.

수술은 6개이고 길이 7~8cm로 꽃밖으로 나오며 암술은 한 개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은 쓰러지며 그 뒤에 잎이 나온다. 비늘줄기(인경)로 번식한다.

비늘줄기의 한약명이 석산(石蒜)이다. 해독 작용이 있다고 한다.

 

2. 상사화(Lycoris squamigera)

수선화과(水仙花科 Amarylid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이다.

키는 60㎝ 정도 자라며 비늘줄기는 지름 4~5㎝, 길이 30㎝이다. 너비가 2.5㎝ 정도인 잎이 비늘줄기에 모여나지만 여름에 꽃이 나오기 전에 말라 죽는다.

홍자색의 꽃은 8월에 비늘줄기에서 나온 꽃자루 위에 4~8송이씩 무리져 핀다.

꽃은 길이가 약 8㎝이며, 꽃 덮이조각[花被片] 6장, 수술 6개, 암술 1개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이 원산지이나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정원이나 화분에 심고 있으며 양지바르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잘 자 란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달려 있을 때에는 꽃이 없어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한 다는 의미로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 상사화 전설 1

상사화는 나팔꽃과 같이 몇 안 되는 남자가 죽어 환생한 꽃이다.

옛날 한 마을에 너무나 사랑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아이가 없어 부처님께 간절히 소망한 가운데 늦게야 태어난 아이가 딸이였다.

고명딸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님에 대한 효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이쁨은 온 마을에 자랑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다 아버님이 병이 들어 돌아가시어서 극락왕생하시라며 백일동안 탑돌이를 하였는데, 이 처녀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큰 스님의 시중을 드는 작은 스님이였으니,

누가 볼세라, 마음을 들킬세라. 안절부절,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하며 늘 지켜보았다.

이렇게 애절한 가운데 말 한 마디 못하고, 어느 덧 백일은 다가왔으니 불공을 마치고 처녀가 집으로 돌아간 후,

스님은 절 뒤 언덕에서 하염없이 그리워하다 그만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운명을 달리 했다,

큰 스님은 절 옆에 작은 무덤을 만들었다. 그 다음 해 봄, 곱게 핀 한 송이 꽃이 그 작은 스님의 무덤 옆에 피었다.

이 꽃은 언제나 잎이 먼저 나고 잎이 말라 떨어져야 꽃대가 쑥~ 하고 올라와서는 연보라 꽃송이로 피었던 지라 이에 사람들은 잎과 꽃잎이 서로 한번도 만나지 못하는 꽃이라 하여 이름하여 상사화라 하였다.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여 말 한 마디 못한 그 스님의 애절함이 깃든 꽃이다. 그래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꽃말을 붙였디.

 

◇ 상사화 전설2

오랜 옛날 하늘나라에 두 남매가 살았다. 사이좋은 누나와 동생은 바닷가에서 달을 보며 걷고 있었다.

누나는 달을 보며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동생은 누나를 손을 뻗어 일으키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누나를 꼭 끌어안고 부축해서 일으켰다.

서로의 체온을 느낀 그들 둘은 그때부터 사랑의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이었다.

둘은 날마다 바닷가의 바위위에 앉아서 포옹을 하였다. 그것을 본 엄마는 둘을 떼어놓았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을 하는 남매를 꽃으로 환생시켜 인간 세계에 내려 보냈다.

누나는 상사화의 꽃이 되고 동생은 잎이 되었습니다. 둘은 뛸듯이 기뻤다.

왜냐하면 같은 꽃이 되니 서로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누나와 동생은 상사화가 되었지만 둘은 만날 수 없었다.

항상 누나가 필 때는 동생은 지고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둘은 아무리 기다려도 만날 수 없었다. 잎이 나와서 다 시든 다음에야 꽃대가 올라와 피어나니 평생 만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 상사화 전설3

옛날 바다 건너 중국 땅에 딸만 있는 약초 캐는 사람이 조선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약초를 캐기 위해 조선에 당도하여 전국을 헤매다 결국 죽게 되었는데 딸에게 후대에라도 영원히 사는 불로초를 구해야 한다는 유언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듣고 불로초를 찾아나선 처녀는 어느 암자에서 고승을 만나 육신을 버리고 도를 깨우치는 것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가르침을 깨닫고 암자에 머물며 수도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큰절에서 고승의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온 젊은 스님을 만나 짝사랑하게 되었으나 고백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 젊은 스님은 다시 큰절로 내려가게 되었다.

결국 처녀는 참지 못하고 큰절에 찾아가 젊은 스님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불자의 몸으로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의 유언도 이루지 못하고 사랑까지 거절 당한 충격에 그 자리에서 요절을 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잎이 없는 꽃이 피어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무더기로 자란 잎이 지고나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아름다운 처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엽게 여겨 그 꽃을 상사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상사화 전설4

옛날 아주 먼 옛날 불심이 매우 높은 스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세속의 여인을 사랑한 죄였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이러한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스님 역시 한 인간인지라 날마다 여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칠 정도였지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여인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자신의 안타까운 사랑을 달리 표현하거나 풀 길이 없어 꽃씨에다 지금의 심정을 담아 절 앞마당에 심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씨는 싹이 되었고, 이상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싹이 죽은 후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꽃이 지면 다시 잎이 피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상사화. 스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이 꽃을 상사화라고 부른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 한결같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함을 표현해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점은 틀림없는 것 같다.

 

상사화와 관련된 전설이 대부분 스님과 관련되어서인지 사찰에 가면 상사화가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실제 상사화를 절에서 많이 심는 이유는 인경(鱗莖)에서 전분을 추출하기 위해서였는데,

 

스님들이 탱화를 그릴 때 상사화 꽃은 말려 물감을 만들고, 뿌리는 즙을 내어 칠을 하면, 좀이 슬지 않고 색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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