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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북

고창 문수사(文殊寺)

by phd100 2018. 9. 5.





전북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문수산(文殊山)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문수산은 청량산(淸凉山) 또는 축령산(鷲嶺山)이라고도 부른다. 644년(의자왕4)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

 

사찰 연기 설화에 의하면,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길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이 산이 당나라에서 수행하였던 청량산과 같은 느낌을 주므로, 이곳의 석굴에서 7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땅 속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나오는 꿈을 꾸자 그곳을 파보니 문수석상이 나왔다.

이에 그곳에 문수전을 건립하고 절 이름을 문수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607년(선조 40)에 중건하였으며, 1653년(효종 4) 성오(悟性)와 상유(尙裕)가 대웅전을 중건하고 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1764년(영조40)에는 신화(信和)와 쾌영(快英)이 선운사에서 이곳으로 와 대웅전을 중수하고 양진암(養眞庵)을 창건하였다. 1835년(헌종 1)에는 우홍(牛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문수전 · 한산전 · 금륜전 · 만세루 · 요사 · 산문(山門) 등이 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된 문수사대웅전은 건립연대가 미상이지만 1823년(순조 23)의 1차 중수 이후 1876년 고창현감 김성로(金星老)의 시주로 묵암(默庵)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건평은 66㎡이다.

 

특히 전북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된 문수사 문수전에는 이 절의 연기 설화와 관련된 문수석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석상은 상체가 큰 불상으로 좌대와 하반신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이 특색이며, 높이 2.25m이다.

 

부속암자로는 1618년(광해군 10) 인해(仁海)가 창건하고 1690년(숙종16) 종희(宗僖)가 중건한 내원암(內院庵) · 양진암(養眞庵)이 있다.

 

 

<목조삼세불상(文殊寺 木造三世佛像)>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시대 17세기의 목조삼세불상으로, 중앙에 석가불좌상, 왼쪽(바라보아 우측)에 약사불좌상, 오른쪽(바라보아 좌측)에 아미타불좌상 등 3구의 불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2001년 개금과정에서 1654년(효종 5)에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회적당(晦跡堂) 성오대사(性悟大師)가 1653년 대웅전을 중건한 이듬해에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석가불의 좌대 아래 부분에서 1844년(헌종 10) 5월 18일 해운당의 시주에 의한 중수 기록도 확인되었다.

 

중앙의 석가불좌상은 머리에 정상계주와 중간계주를 두었고, 나발은 촘촘하면서 길다.

안면부의 특징은 입술과 턱 사이가 길어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느낌이 들고 입술에 미소가 만연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얼굴 윤곽은 방형에 가깝고 귓불을 앞으로 벌리고 있어 전체적으로 앳된 느낌이 든다.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으나 깊지 않고, 가슴은 매우 평면적으로 처리되었다.

 

착의법은 편단우견(偏袒右肩)에 대의(大衣)를 걸쳐 오른쪽 어깨를 가린 형식이며, 굵은 옷깃 안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된 옷주름이 묘사되었지만, 끝단이나 중간에서 옷깃을 반전시켜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복부를 지나는 내의(內衣)는 매듭이 없이 가로로 겹쳐진 옷주름으로 간략하게 묘사되었고, 무릎을 덮고 있는 대의는 선명한 가로의 세 줄 옷주름선만으로 마무리하였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의 변형된 모습으로 왼손이 마치 중품인(中品印)처럼 변형된 모습이다.

 

양 옆의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전반적으로 석가불과 유사하지만, 착의법에서 대의와 내의 사이에 상의(上衣)를 입고 있는 점, 수인으로서 중품중생인(中品中生印)을 약사와 아미타불이 대칭적으로 결하고 있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이 삼세불은 독특한 미소와 안정감 있는 인체 비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간략화되었으면서도 유려하게 흐르는 옷주름과 단정하면서도 당당히 앉은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또 같은 절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상이 무염파(無染派)의 조각승인 해심(海心)에 의해 조성된 것인데, 양식적으로 이 삼세불과 유사점이 많이 발견된다. 따라서 이 삼세불도 해심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무염파 조각의 전개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문수사 단풍나무숲>

2005년 9월 9일에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단풍나무 숲은 문수산 중턱에 위치한 문수사 입구까지의 진입도로 약 80m 좌우측 일대에 수령 100년에서 400년으로 추정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문화재 구역 120,065㎡ 내에는 단풍나무 노거수 외에도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의 노거수들이 혼재하고 있다.

아교목층과 관목층에는 사람주나무, 산딸나무, 물푸레나무, 쪽동백나무, 쇠물푸레나무, 박쥐나무, 작살나무, 초피나무, 고추나무, 쥐똥나무 등이 나타나고, 아울러 조릿대 군락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문수산의 산세와 잘 어우러져 가을철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경관적인 가치 또한 뛰어나다. 이 숲의 단풍나무 크기는 직경이 30~80㎝, 나무높이가 10~15m 정도이다. 특히 가슴높이 둘레는 2∼2.96m에 이르는 단풍나무 노거수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곳 단풍나무 숲은 644년(백제 의자왕4)에 지은 문수사의 사찰림으로 보호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단풍나무 학명은 Acer palmatum Thunb.인데, 이때 ‘Acer’는 라틴어의 ‘강한’이란 뜻으로 재질이 단단함을 뜻하는 이름이다. 단풍나무류의 재질은 매우 단단하고 치밀하여 말 달구지와 배의 키 등 여러 가지 기구의 재료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 민속에는 경칩일에 단풍나무를 베어 그 나무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험이 있다 하여 많은 단풍나무가 약으로 베어져 사라져 버렸다.

우리나라에 많은 신목(神木) 중에 단풍나무에 얽힌 전설이 없는 것은 일본사람들이 거의 베어 가져갔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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