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옛 개진면 양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암각화[바위그림]는 1976년 8월 6일에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 명칭은 고령 양전동 암각화였으며, 2010년 10월 고령 장기리 암각화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이 마을을 알현마을, 즉 알터마을이라고 부르는데 천신과 산신이 교감해 알을 낳은 곳이라 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
암각화는 남향의 수직 암벽 위에 새져져 있는데, 암벽의 전체 크기는 높이 3m, 길이 6m 정도이며, 직접 그림이 새겨진 바위면의 규모는 높이 1.5m, 길이 5m 정도이다.
대구에서 고령으로 가는 도로변의 금산재[錦山嶺]에서 남으로 뻗은 구릉에 석기 유적지가 있고, 구릉 동쪽 산록의 저지에는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이 바로 이웃의 장기리 알터[卵峴]마을에 바위그림 유적이 있다.
바위그림은 수십 장(丈)의 군암절벽 중 알터마을 입구의 나지막한 암면이 선택되어 조각되어 있다. 암벽 전체의 높이는 지상 약 3m, 옆너비는 6m였는데, 이 중 그림은 높이 약 1.5m, 길이 약 5m에 걸쳐 조각되어 있다. 그림의 내용은 동심원(同心圓) · 十자형 · 이형화(異形畫) 등으로 구분된다.
동심원은 지름이 약 18∼20㎝의 삼중원(三重圓)으로 모두 4개이다. 중앙부에 동심원 하나가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고, 하나는 바위 정상부 가까이 있는데 암면의 파손과 함께 절반부가 파손되었으며, 또 하나는 왼쪽 중간 위에 배치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오른쪽 하부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십자형은 중앙부 동심원의 오른쪽 약간 아래 있는데, 마멸로 명확하지는 않다. 둘레에는 가로 15㎝, 세로 12㎝의 사각형으로 선이 그려져 있는 것 같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표현방법으로 보아 이는 十자형을 표현한 의장(意匠)으로 추측된다.
또 암면의 곳곳에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 같은 이형화가 그려져 있다. 총 17개로 작은 것은 세로 20㎝, 가로 22㎝, 큰 것은 세로 40㎝, 가로 30㎝에 달한다. 형태는 모두 같은 모양으로 위로는 머리카락을, 좌우로는 수염과 같은 털을 그렸다.
그리고 귀 · 눈 · 코 · 입과 같이 구멍을 팠고, 좌우로 뻗어 올라간 뿔을 표현하여 마치 사람의 얼굴모양, 혹은 짐승얼굴모양과도 같아서 ‘가면(假面)’이라고 부른다.
바위그림의 구성은 동심원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가면이 둘러싼 3개의 소군(小群), 즉 왼쪽 소군·중앙 소군·오른쪽 소군으로 구분되어 중앙 상부의 동심원과 十자형에 통합돼 하나의 대군(大群)을 이루고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한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十자형은 十자를 가운데 두고 주위를 둘러싼 田자형을 이루고 있어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가면은 모두 인간의 얼굴인 듯하며 인물상의 형식화된 호부(護符)로 추정된다.
이는 모두 농경사회의 고유신앙으로서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상형(象形), 또는 기호로 표현하여 이를 제단으로 삼고 이곳을 성지로 여기며, 태양신, 곧 천신에게 농경에 따르는 소원성취를 기원한 것이라 추측된다.
이는 간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한 전형적인 농경문화인에 의한 작품으로, 제작연대는 청동기시대 후기(서기전 300∼0년)의 농경사회문화기라고 하겠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청동기시대로 보는 것에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나, 한국 암각화 속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편년은 연구자간에 서로 차이가 있다.
이는 암각의 새김 방식이나 도상학적인 선후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편년 방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주변 유적 상황을 통해 추정해 볼 수밖에 없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 주변에는 민무늬토기편과 양전동형 석기로 불리는 우각형 돌도끼 등이 다수 채집되기도 했다.
이들 유물들과 암각화의 제작 시기를 곧바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 성격과 시기를 추측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장기리(양전동) 암각화의 역사적 의의로는 당시 주민들의 농경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했던 장소로 추정되며, 이곳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은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간주된다.
또한, 고령의 알터에 암각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나오는 난생설화(卵生說話)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6가야의 중심지가 김해가 아니라 고령으로 추측하는 가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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