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로, 배모양의 평평한 돌에 새겼다.
전체적인 윤곽은 돋을새김하고 옷주름이나 연꽃무늬 등은 선으로 긋는 도식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머리에 쓴 관(冠)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고 손에 연꽃가지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에 쓴 관은 보통의 것과는 달리 丁자 모양을 하고 있어 완전히 토속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굴은 둥글 넓적한 모습이고 좁은 코, 작은 입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의 주름은 물결선처럼 대강 처리한 반면, 손에 든 연꽃은 정교하게 표현하였다.
어깨는 비교적 넓은 편이나 양 무릎에 갖다 붙인 듯한 두 발, 가슴부분에서 표현된 오른팔과 손은 다소 어색한 모습이다.
대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조각이 간결하지 못하고 생동감도 없다. 몸 뒤의 광배(光背)에는 꽃무늬를 새겼다.
불상의 뒷면에는 ‘옹희(雍熙) 2년(고려 성종 4년, 985) 을유 6월 27일’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지방 장인이 광주 약사마애불좌상과 같은 세련된 조각을 본떠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초기 지방에서 장인의 손으로 만든 토속화된 불상의 양식을 알려주는 자료로 중요하다. 일종의 민불 형태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한마디로 자비의 화현(化現)이다.때문에 불교미술에서 이분을 형상화할 때는 표정과 자세가 그런 덕성을 담으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데 개포동 석조관세음보살좌상은 관세음보살의 이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얄궂은 관세음보살이다.
한때는 나루터가 있었던 고령 낙동강가의 강마을이었을 개포리(開浦里), 그 곳의 시례마을 뒷산 자락에서 이 관세음보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비죽비죽 내밀 듯한 표정으로 이따금 찾아드는 이들을 맞고 있다.
펑퍼짐한 얼굴에 미간이 좁아 두 눈과 눈썹이 가운데로 몰려 있다. 눈썹은 활처럼 휘어지며 선명하게 팬 반면, 거의 감긴 듯이 가늘고 얕게 새겨진 눈은 눈두덩이 부어올랐다.
코는 애초부터 그러한 듯 양쪽의 볼보다도 낮게 푹 주저 앉았으며, 그 아래 입은 생기다 만 듯 어름하다. 미간에 박혀 있어야 할 백호는 이마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지나치게 커서 이물스럽기 짝이 없다.
쓴 것이 아니라 머리에 얹어놓은 듯한 보관은 보살상에서 흔히 보이는 화려하고 세련된 것과는 사뭇 달라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놀부영감이 쓰던 정자관(程子冠)을 닮았다.
그 가운데에는 관세음보살의 상징이라 할 화불(化佛)이 간단하게 새겨져 있고, 보관의 아랫부분에는 머리에 보관을 고정시키기 위한 비녀가 막대기처럼 양옆으로 길게 나와 있다.
몸은 영락없이 어린아기가 그린 그림이다. 비례나 균형은 아예 생각해본 바도 없는 듯이 '자유롭다'.
위로 쳐든 오른팔은 뼈가 있지도 않은 듯 U자를 그리며 휘어져 올랐고, 반대로 왼팔은 부지깽이처럼 뻗뻗하게 내리뻗었는데 그 끝에 달린 손 또한 작고 귀엽기는 하지만 고무장갑처럼 굴곡이 없다. 옷자락은 구불구불한 선이 서너 줄 비껴 흐르는 것으로 그만이다. 가부좌한 두 발은 더욱 볼 만하여 마치 고대 이집트 회화에서 인물의 시각과는 상관없이 눈은 언제나 정면을 응시하듯, 발바닥이 하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앞을 향하고 있는데 꼭 맨발로 진흙 위에 찍어놓은 발자국처럼 생생하면서도 작고 갸름한 모습이 차라리 어여쁘다. 왼손에 쥔 연꽃가지는 어깨 너머로 뻗었는데, 그 끝에 달린 두 송이 작은 연꽃은 간지러울 정도로 앙증맞고 애교스럽다. 이 보살상에서 가장 그럴 듯한 구석을 찾는다면 바로 여기 연꽃송이가 아닐까 한다.
요컨대 개포동 석조관세음보살좌상은 보관 속의 화불과 왼손에 쥔 연꽃으로 보아 관세음보살임을 알 수 있을 뿐, 어디에도 끝없는 연민의 눈으로 중생의 아픔을 바라보는 보살의 이미지가 담겨 있지 않다.
말하자면 관세음보살 같지 않은 관세음보살, 장인이라 부르기도 뭣한 시골 석공이 만든 것 같은 보살상, 산골 아낙네들이나 섬겼음직한 보살상이다.
흔히 이와 비슷한 솜씨와 표정의 불보살상을 토속적, 지방적이라고 말하지만, 얼굴 표정이나 머리에 쓴 보관의 모습을 보면 그것은 오히려 무당들이 쓰는 부채, 곧 무선(巫扇)에 그려진 불상에 가까워 차라리 무속적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까닭에 어쩌면 이 보살상은 불교와 무속이 습합(襲合)하는 과정을 조형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도 된다.
주변에 흔한 돌 가운데 평평하고 얇은 돌을 골라 아주 얕게 새김질한 이 보살상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다.
뒷면에 "雍熙二年乙酉六月二十七日(옹희이년을유유월이십칠일)"이라는 음각 글씨가 있어 고려 성종 4년(985)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짐작보다는 훨씬 나이를 잡수신 보살이다.
하지만 글씨는 맨눈으로는 얼른 판독이 되지 않는다. 높이는 1.5m,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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