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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의령 수도사

by phd100 2020. 1. 1.


의령 수도사(宜寧 修道寺)

신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사찰로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 양편에 요사채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위에는 높다랗게 누락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지어 놓았다.

 

662년 신라시대 문무왕 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그 뒤 송운대사 유정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가 있어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수도사 감로탱(修道寺 甘露幀)>

경남 의령군 용덕면 수도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는 조선 후기의 감로탱화 1폭으로, 화기에 의하면 1786(정조 10) 평삼(評三) · 유성(惟性) · 성윤(性允) · 찰민(察敏) 7명의 화사가 참여하여 제작했다고 한다.

 

감로탱은 지옥 중생의 넋을 천도하는 반승의식(飯僧儀式)을 베풀어 극락교주 아미타불 일행이 서방정토로 인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감로탱은 다른 불화보다 민중의 모습이 다양하게 반영되고 있는데 그 전형은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확립되었다.

 

상주 남장사감로도(1701)를 비롯하여 김천 직지사감로도(1724), 하동 쌍계사감로도(1728), 여수 흥국사감로도(1741) 등 여러 점이 남아 있다.

수도사 감로탱은 이보다 뒤의 작품으로, 20051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8호로 지정되었다.

 

비단[絹本]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193.3, 가로 210.3이다.

화면에는 7여래(如來)와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아귀, 지옥과 죽음 장면, 그리고 현실의 모습을 담은 인물군 등을 표현하고 있다.

상단에는 극락으로 길을 인도하는 오색당번을 쥔 인로왕보살과 벽련대반을 싣고 가는 천녀들이 있고, 그 향우측에는 관음과 지장을 거느린 아미타불을 포함한 7여래가 강림하는 불보살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아미타여래를 포함한 7여래는 운문에 떠받쳐진 답할연좌(踏割蓮座) 위에 나란히 서 있는데, 특히 내영 형식의 아미타삼존은 상체를 약간 아래로 숙여 중생을 향해 손짓하며 강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뒤쪽으로는 선재동자가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을 들고 서 있다. 중단에는 중앙에 성대하게 차린 공양상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았고, 그 아래 두 아귀를 두고 작법을 거행하는 승중(僧衆)과 왕후장상 및 왕후궁녀 등을 두었다.

 

하단에는 욕계의 여러 장면을 구성지게 배치하였는데, 뇌신(雷神)을 비롯해 갖가지 죽음 장면과 지옥의 모습, 그리고 현실세계의 고통어린 모습 등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병자가 고통 받아 누워 있는 모습, 머리채를 휘어잡고 부부가 싸우는 모습, 화재로 인해 불 속에서 고통 받는 민초, 무녀가 굿하는 모습, 탈춤 추는 모습, 긴 나무 위에서 곡예를 하는 모습,

벼랑에서 약초를 캐다가 떨어지는 심마니의 모습, 물살에 휩쓸리는 모습이 있고, 갖가지 죽음의 장면으로는 수레에 깔려 죽는 모습, 말에 깔려 죽는 모습, 호랑이를 만나 죽음을 당한 모습, 말을 타고 화살·방패·총을 들고 전쟁하는 모습 등이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불화이지만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화면 아랫부분에 보이는 호랑이와 사슴의 모습은 민화적인 요소로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주조색은 연녹색 바탕에 주색과 녹색이 대비되는 설채에 부분적으로 청색을 가미하였으며, 각진 수묵의 암산 표현이 눈에 띈다.

 

18세기 감로탱에는 각 장면마다 방기명을 밝혀 도상 해석에 도움을 준다. 특히 여수 흥국사(1741)나 선암사 무화기 감로도(18세기)와 구성방법이 흡사하여 한 모본과 한 유파에 의하여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감로탱도 각 장면의 구성이나 인물묘사, 경전에 충실한 내용을 도설한 방기명, 주색과 녹색의 대비를 보여주는 설채법 등에서 18세기 후반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점 등 당시의 감로도 도상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석조아미타여래삼존상(石造阿彌陀如來三尊像)>

수도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아미타여래삼존상과 복장유물로, 20051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7호로 지정되었다.

주존불인 아미타불상에서 나온 복장유물이 200212월 도난당한 후 우협시인 지장보살상에서 불상개분기(佛像改粉記)가 발견되어 삼존상에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개분기에 聖上卽位十一年丙午(성상즉위십일년병오)”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 시기를 1786(정조 10)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때 상단(上壇) 후불탱(後佛幀)을 조성하면서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상의 조성 시기는 늦어도 1786년 이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설에는 1675(숙종 1) 조성으로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고, 1718세기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한편, 화원(畵員)으로는 평삼(評三) · 영종(永宗) · 유성(唯性) · 쾌성(快性) · 성윤(性允) · 우심(宇心) · 극찬(極贊) · 영휘(永輝) · 찰민(察敏) · 환영(幻永) 등이 참여하였다고 하는데, 이들은 1786년 후불탱과 함께 봉안된 감로탱을 제작한 화승들이다. , 후불탱 및 감로탱 등을 조성하면서 불상 개금을 동시에 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불상의 높이는 95.0정도이다. 아미타여래좌상의 왼쪽에는 보관을 쓴 보살상과 오른쪽에는 두건을 착용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본존 아미타여래의 좌협시는 관음보살, 우협시는 지장보살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인 상체를 아래로 숙여 불단 아래 예배자를 굽어보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본존은 결가부좌의 자세로 오른손을 다리 위에 걸치고 항마인을,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다리 위에 얹고 있다.

좌협시 보살상 역시 본존과 동일한 수인이며, 우협시는 좌우 손이 바뀐 모습인데 오른손 바닥에 뉴()가 부착된 방형인장으로 보이는 지물을 들고 있어 특이하다.

우협시의 경우 두부에 두건을 착용하고 어깨에는 보발이 흘러내리는 점, 방형인(方形印)의 지물 등 석장이나 보주를 쥔 일반적인 지장보살상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아미타불은 머리에 이중계주를 갖추고 방형의 얼굴과 넓은 이마 중앙에 둥근 백호를 표현하였다. 넓고 또렷한 코, 각진 콧등, 꽉 다문 입술과 양 귀는 두툼하면서도 간략하게 조각되어 있다.

착의는 편삼과 오른쪽 어깨 위에 가사를 반쯤 걸친 변형통견식이다. 가슴은 U자상으로 노출되어 수평상의 승각기 띠가 보이며, 하반신에는 군의를 입었으나 의습선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형식화되었다. 전반적으로 조선 후기 석조불상에서 보이는 형식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

지장보살상의 특이한 착의와 지물 등은 17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불상 제작의 지방화에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특히 삼존상의 수인과 의습 표현 등에서는 조선 후기 석재로 조성한 불상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우협시인 지장보살상 복장에서 수습된 불상개분기에 의해 이 삼존상의 조성 시기와 참여 화원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이 시기 각 지역간 불상의 도상적 흐름을 살펴보는 데 자료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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