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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남

화순 유마사(維摩寺)

by phd100 2020. 2. 20.


유마사(維摩寺)

전남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母后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627(백제 무왕 28)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보안은 이서면(二西面) 보산(寶山) 뒤에 보안사(普安寺)라는 절도 지었다고 한다.

고려 때에는 귀정암(歸靜庵)과 금릉암(金陵庵) 8개의 암자를 거느려 당시 호남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17세기에 경헌(敬軒)이 중건하였고, 가안(可安)이 나한상을 모셨다. 1889(고종 26) 전라도 관찰사 김규홍(金奎弘)이 중수하였고, 그 뒤로도 오호연·김해연 등이 중수한 바 있다. 1950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근래에 주지 박상규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 · 산신각 · 백운당 · 종각 · 일주문과 요사채 2동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 대세지보살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약사불상과 영산후불탱화, 지장 · 칠성 · 산신탱화, 제석천룡도 등도 함께 모셔져 있다. 종각에는 범종이 없는데, 지리산 화엄사로 옮겼다고 한다.

 

유물로는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된 유마사해련부도(維摩寺海蓮浮屠)가 유명하다. 절을 창건한 유마운의 부도로 전해지는데, 높이 2.54m이며 상륜부는 사라졌다.

 

그밖에 1.7m의 경헌대로사리탑(敬軒大老舍利塔)이 절 입구에 서 있다. 해련부도와 함께 1981년에 복원된 것으로 대석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또 근처에 1861(철종 12)에 조성된 현감 정원필의 영세불망비가 남아 있다.

 

한편 절 서쪽 계곡에는 길이 5m, 너비 3m의 보안교(普安橋)가 놓여 있다. 이 다리에는 유마동천 보안교(維摩洞川 普安橋)’라는 글자와 시주자로 여겨지는 백운거사 양연법(白雲居士 梁蓮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리를 놓기 위해 여러 명이 모후산 중턱에 있던 이 바위를 옮기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자 보안이 치마폭에 싸서 이곳에 갖다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유마사입구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올라가면 비탈길에 수 놓은 듯 피어있는 산국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태고의 정취를 자아내게 한 웅장한 산세와 광활한 옛터에는 춘풍추우(春風秋雨) 긴 성상에 많은 사연들을 간직한 채 쓸쓸한 모습으로 대웅전과 그날의 돌다리만 남아 있다.

 

<유마사의 전설>

유마사는 중국의 요동 태수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의 사연이 있는 곳이다.

 

유마운의 딸 보안은 천재 소녀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생후 7일만에 능히 말을 하기 시작했고 두살 때부터 글을 배워 열살이 넘어서는 백가이도(百家異道)의 학문을 다 필했다. 유마운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겨우 무남독녀를 얻었으나 보안이 태어난지 백일만에 그 어머니가 죽어 항상 외로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워낙 재주와 색을 겸비한 외동딸 보안의 깜직한 재롱에 재미를 붙여 재혼은 커녕 외도 한번 하지 않고 세월을 보냈다.

보안의 나이 일곱살 되 던 해 어느 날 태수 유마운이 친구 진성주(陣省主)의 탈상에 가려고 집을 나서자 보안이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 오늘 성주댁에 가시거든 제례에 참례하시고 돌아오시는 길에 사당 뒷곁 담마루 일곱번째 기왓장 밑에 진성주(陣省主)의 업신(業身)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꼭 찾아뵙고 오십시오.

 

유마운은 딸의 이 같은 말을 생각하고 오늘은 진짜 친구를 한번 만나보려나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성주(陣省主)집에 이르렀다.

정중하고 장엄한 제례의식은 삼현육각의 모든 악기와 율려(律呂)를 갖춘 풍악으로 시작되었다.

 

유마운은 평소의 깊은 정의를 술회하였다.

적어도 친구 진성주는 극락정토는 몰라도 도솔왕생은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평소 마음씨가 착하고 비단결같이 고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줄 알았고 간사한 오리(汚吏)들을 간하는 명주로서 모든 백성의 존경과 신의를 함께 하였으니 말입니다.

제례가 끝나고 풍성한 시식에 얼근히 취한 유마운은 보안의 말이 생각나서 아무도 몰래 사당 뒤곁 담벼락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하나. , ‥‥‥ 일곱 번 째 기왓장을 살며시 들어 올렀다. ‘진성주의 혼신에게 도솔천궁의 즐거움이 얼마나 되던가 하고 물으려 했던 유마운은 들었던 기왓장을 그만 땅 위에 떨어뜨리고 혼비백산해 버렸다.

 

딸 보안이 진성주의 업신이 있다던 그 기왓장 밑에는 옛날의 진성주가 아닌 일곱 또아리를 틀고 있는 커다란 황구렁이가 혓바닥을 넘실거리며 찬바람을 훅 뿜어댔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유마운은 잠시 마음을 안정한 뒤 보안을 불렀다.

너 이놈 아버지께 그런 황구렁이를 보이게 하여 놀라 죽을 번 했구나.”

그런데 진성주가 무슨 업보를 받았기에 구렁이가 되었느냐?”

진성주는 일곱고을 태수로 잘 다스려 백성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습니다만, 그런데 아버지는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백성들을 얼마나 괴롭혔습니까? 어질고 훌륭한 진성주는 일곱또아리 황구렁이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사람의 몸을 잃고 열두 또아리 먹구렁이가 될 터인데 뭐가 그리 무섭다고 하십니까?”

에키 이놈아 아버지께 무슨 그런 악담을 하는냐? 그런 일이 나에게도 있을 수 있다니 그런 말 말거라.”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더라고 태수의 높고 귀한 지위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부귀공명을 누려 먹구렁이의 과보를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화를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잃지 않은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안아. 그럼 어찌하면 좋겠느냐?

아버지 그것이 그렇게 무서우세요?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디 또 있겠느냐?

그러시다면 제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하시했습니까?

하구말구. 구렁이의 몸만 받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고 참고 견딜 수 있지‥」

아버지, 구렁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참고 견디기는 어려워도 참고 견뎌 이기시기만 한다면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은 물론 세세에 낳았다가 헤어지는 이별의 고통이 없는 영원의 세계에 편히 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 저지른 일을 크게 후회하지 마시고, 제가 하자는 대로만 하십시오.

후회가 다 뭐냐? 그런 좋은 길만 있다면 돈이고 태수고 나에게는 하나도 필요 없다 어서 묘책이나 일러다오.

좋습니다. 그러시다면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모든 재산을 오늘저녁 안으로 저에게 양도해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유마운은 욕심 사납게 모아놓은 보석은 물론 논문서까지 모든 것을 보안에게 양도해 주었다.

이튿날 보안은 멀고 가까운 일가친척과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성대히 잔치를 베풀고 그 자리에서 자기 소유의 모든 재산을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소용대로 골고루 나눠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아버지를 모시고 길을 떠나니 한나라의 태수로 부귀와 영화를 함께 누리던 유마운은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헌 바가지 밖에 아무 것도 몸에 지닌 것이 없었다.

 

하루 가고. 이틀 가고 몇날을 걸었는지 유마운은 전신이 지치고 다리가 아파 더 걸어갈 기력이 없었다. 산마루 남쪽 조그만 동굴에서 며칠 쉬어 가기로 작정했다.

유마운은 동굴 속에 누워서 인생무상을 회고하고 보안은 마을에 내려가 먹을 것을 빌어오니 목구멍에 밥이 제대로 넘어 갈리 만무했다. 며칠을 쉬고 나서 보안이 길을 재촉했다.

 

아버지 또 가십시다.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어디로 가든지 저만 따라오세요.보안이 앞장 섰다.

 

뱀이 싫기는 했지만 차라리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더라면 뱀의 몸을 받고 말 것을 하고 유마운은 지난 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달이 휘영청 밝은 어느 날 밤, 유마운은 딸과 함께 은빛 찬란한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다.

조그마한 조각배를 빌러 타고 강을 건너는데. 배가 강 중류에 이르자 갑자기 폭풍이 일었다 배가 몇 바퀴 요동하더니 그만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신통하게도 보안은 물 한방울 발에 젖지 않고 물 위에 동동 떠 있지 않는가.

이것을 본 유마운은 자기생명의 다급함을 느끼고 보안을 부르며.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보안아! 나 죽는다. 나 죽어‥」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는 세상 물정에 미련이 있습니까?

미련이 무슨 미련이야. 나에게는 미련도 애착도 아무 것도 없다. 어서 나를 구해다오.」「아닙니다 아버지. 아버지에게는 아직도 무엇인가 다 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십시오.

그때 유마운이 달 그림자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니 상투 끝에 딸 몰래 감추어 놓았던 보석 하나가 유난히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그 보석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고 가엾은 백성들의 피와 눈물이 아닙니까? 그것을 아주 버리십시오.

그때 유마운은 참회의 눈물을 주루룩 흘렀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 비상용으로 딸 몰래 간직한 값진 보석이었다. 유마운은 아까운 것도 잊고 그것을 머리에서 떼어 멀리 강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나니. 신기하게도 물 속 깊이 가라앉던 배가 가랑잎 같이 스르르 떠올라 유마운은 마음을 놓고 마침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는 옛날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이제 아버지는 영생을 얻게 되셨습니다. 죽음과 이별의 고통이 없는 영원 속에 편안히 안식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저를 따라 오십시오.

정말 꿈만 같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백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사해를 집어 삼킬 듯 기염을 토하며 살았던 유마운이 어린 딸에게 구원을 청하게 되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생후 백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도 외로운 빛 하나 없이 꿋꿋하게 자라온 딸, 그의 사랑과 믿음의 전부였던 귀염둥이 딸 보안이 이제 딸이 아닌 생명의 은인이요.

구원의 스승이 된 것이다. 이제 보안은 그에게 있어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존경과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아버지와 딸은 몇날 몇일을 걸었는지 신발도 모두 헤어지고 부르튼 발바닥이 쓰리고 아픈 데도 겨우 도착한 곳이 전남 화순 모후산이다.

아버지는 날마다 싸리나무를 베어서 바구니와 삼태기를 만들고 보안은 그것을 장에 나가 팔아 먹을 것과 바꾸어 왔다.

 

한편 중국에서는 유마운 부녀의 소문이 날로 퍼져 마침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황제는 사랑하던 유마운 태수가 사라짐을 심히 애통해하던 왕은 곧 사신을 보내 사실을 확인한 뒤 각 고을에 방을 붙였다.

 

태수의 거처를 알리는 자에게는 황은(皇恩)의 보()를 내리리라.

그러나 이미 중국 땅을 떠나 물 맑고 산 좋은 조선 땅 구석에서 삼태기 장사를 하는 유마운인지라 누구도 쉽게 그 거처를 찾아낼 수 없었다.

 

보안의 나이 16세 되던 해 어느 날이었다. 전라도 무진(光州) 고을 원님이 순천 순방을 나왔다가 이 소문을 듣고 모후산을 찾아가 보았다.

과연 그는 조선 사람이 아닌 중국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손과 발은 뭉그러졌고 검게 탄 얼굴은 마치 시골 노인의 풍상을 연상케 했다.

굳게 다문 입, 넓은 이마에 아로 새겨진 주름과 허옇게 변한 수염만이 인생무상을 알릴 뿐 태수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붉게 타고 있었다. 밝고 깊은 안광이 누구도 그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였다.

 

원님은 말이 없는 거사의 묵연한 태도를 보고 무엇인가 도와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쌀과 소금, 옷가지를 주선해 보내고 영을 내려 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5~6동의 절과 평생을 걱정없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사산(寺山)과 불량답(佛糧畓)을 마련해 주었다.

 

절은 날로 창성해갔다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지고 개중에는 공부하기를 자청해 오는 운수납자(雲水衲者)들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 시끄러운 곳을 피하여 조용한 곳에 찾아든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해인사에서 찾아온 젊은 중 한 사람을 법당 부전으로 봉하고 함께 기거 할 스님으로 응일(應一)스님을 고르기로 정 했다.(부전스님 : 법당에서 부처님께 향촉을 올리며, 불공, 염불 등의 의식을 맡아 하는 스님을 노전스님, 지전스님, 부전스님이라고 하지만, 큰절에는 노전스님 아래 보좌하는 스님으로 부른다)

그러나 부전 스님은 공부에는 여념이 없고 보안의 뒤만 따르는 것이었다. 보안이 하는 일은 한사코 같이 하려 하고 보안의 말이면 사생을 판단하고 앞질러 행하였다.

그래서 보안은 몇 차례 글을 써서 그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고 하였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그러던 중 유마운이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

 

갖은 고생과 사바를 버리고 무고안온의 정토(淨土)에 나기 위해 사바세계를 떠난 것이다. 보안은 부전 스님과 같이 지극한 정성으로 아버지의 영을 모셔 장례를 치렀다.

유마운이 없는 절은 텅 빈 집만 같았다. 절을 찾아왔던 이들도 모두 떠나버리고 깊은 산, 넓은 도량에는 보안과 부전 스님 뿐이다. 이제는 부전 스님에게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게 되었다.

밤이 늦은 줄도 모르고 경내를 배회하며 서성대는 부전 스님의 들뜬 행동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보안은 참다 못해 편지를 써서 스님의 문전에 떨어뜨려 놓았다.

 

내 일찍부터 스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오나 우리는 생사의 근본을 끊고 불지(佛旨)를 증득(證得)하여 고해(苦海) 중생(衆生)을 건지려고 발원한 남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 발원을 등지고 윤회의 강에 탐닉하는 것은 짐짓 불자의 바른 행위가 아닌 줄 아오나, 스님께서 정히 그렇게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아까워 드리지 못할 것이 없아오니, 내일 저녁 열두시에 우물로 나와 주십시오.

장차 뜻이 맞으면 부부의 연을 맺고 평생 해로를 하겠아오니, 오실 때는 꼭 잊지 마시고 고운 채 하나만 가지고 나오십시오.

편지를 받아 본 부전 스님은 뛸듯이 기뻤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평생소원을 다 이룬 것처럼 온통 세상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어찌나 즐거운지 부처님 앞에 나아가 백배도 더 했다.

이튿날 아침, 부전 스님은 목욕물에 데워 그동안 흐렸던 몸과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고 저녁에 가지고 나갈 고운 채도 깨끗이 닦아 놓았다. 이윽고 밤이 돌아왔다.

 

약속시간 전부터 나와 기다리는 부전 스님의 마음은 고무풍선 이상으로 부풀어 있었다. 멀리 사뿐사뿐 보안이가 걸어 왔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인간계의 사람은 아닌 듯 싶었다. 어쩌면 그녀는 오늘을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녀가 오늘 밤부터 내 아내가 된다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그녀에 게 바치리라. 어느새 보안은 그의 앞에 나타나서

일찍 나오셨군요.

구슬처럼 맑고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스님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 여기 가져왔습니다.

보안은 깨끗하게 닦여진 채 바퀴를 한번 둘러보았다.

 

스님. 저 물 속에 둥근 달이 보이지요? 저 달을 이 채로 건져내는 것입니다.

스님이 달을 건지고 제가 그 달을 건져도 좋고, 둘이 다 건지지 못하여도 또한 좋습니다. 그러면 우린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께서 건지지 못하고 제가 건지게 된다면 우리들의 혼인 약속은 멀어지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스님이 그렇게 약속을 하시겠습니까?

 

스님이 생각해 보니 보안이 아무리 하늘에 별을 따는 재주를 가졌다할지라도 물속의 달이야 어찌 건져낼 수 있으랴.

 

좋습니다. 낭자께서 건지지 못하면 틀림없는 저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 꼭 그렇게 약속하겠습니다. 그럼 스님께서 먼저 건져 보십시오.

 

두 남녀는 약속을 한 뒤 스님부터 달을 건지기 시작했다.

열 번, 스무번 아무리 채 바퀴를 물 속 깊이 집어넣고 달을 건져도 달은 커녕 달 그림자 같은 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이마를 수건으로 닦으며. 부전 스님은 보안에게 채를 내밀었다

저는 안 되겠습니다. 낭자께서 건져 보십시오.

그러나 내심 그녀도 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안은 채를 들고 물 속 깊이 들어다 보이는 둥근 달을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두 손을 힘껏 들어 채바퀴를 꼭 붙들고 물 속 깊이 잡아 넣었다가 올렸다.

 

그런데 둥실둥실한 달이 채 바퀴 안에 담겨 있지 않은가! 참으로 진기한 광경이었다.

보안은 다시 달을 떠서 높이 들어 물에 부었다.

다시 뜨고 또 다시 부으니. 스님은 기가 막혀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환희와 희열에 들였던 부전 스님이 경이와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스님. 이제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 제 생각은 꿈에라도 갖지 마십시오.

 

한마디를 남기고 아리따운 선녀는 종종 걸음으로 별당으로 올라가버렸다. 스님은 당장에라도 그 물 속에 빠져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그래도 한가닥의 미련이 남아서 보안의 뒤를 따라 처소로 올라갔다.

부처님 뵐 면목이 없고 낭자 보기도 민망하였다. 세상만사에 도무지 흥이 없었다.

겉으로 보고 마음으로 위안을 받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마음속의 초조감은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러다 부전 스님은 중병을 않게 되었다. 그에게는 약이 없었다.

더구나 나무 뿌리나 풀잎사귀 같은 것으로는 구원할 도리가 없었다.

보안의 따뜻한 사랑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었다. 인정은 어쩔 수 없는 일 보안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그를 법당 안으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법당 안에 모셔진 탱화를 뚝 떼어 마루 바닥에 깔고 옷을 벗어 그 위에 던졌다.

스님을 보니 하도 딱해 내 몸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스님도 옷을 벗으세요.

그래도 스님은 불가의 법도가 있어 망설였다.

그것은 탱화가 아닙니까?

아무리 사랑이 좋기로서니 탱화를 깔고 누울 수 있겠습니까?

이놈! 너는 만들어 놓는 그림에 불과한 부처는 무섭고 진짜 살아있는 부처는 무섭지 않느냐?

보안이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깔고 앉았던 탱화를 들어 밖으로 내던지니 처염상정(處染常爭), 화과동시(花果同時)의 연꽃으로 변했다. 부전 스님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밖을 내다보니.

보안은 빨간 연꽃을 타고 하늘로 사라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보안이 아닌 백의관세음보살이었다.

아하. 이거 지금까지 내가 미쳤었구나 내가 미쳤어 관세음보살의 화신을 몰라보고 내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니‥」

스님은 후회와 참회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무쟁삼매에 들어 불가사의의 법신리신(法身理身)을 깨우치게 되었다.

 

보안은 다름 아닌 전생의 도반으로 누구든지 먼저 성불하는 사람이 후진을 꼭 이끌어 주기로 약속한 사이인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 염불과 참선으로 지혜를 연마하고 보시공양으로 많은 복을 짓는데 온갖 힘을 다 하더니, 그 공덕으로 거부장자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인물 좋고 머리 좋아 세상에 널리 그 이름을 떨치고, 또 인연 있는 친구를 구제하기 위하여 길 멀고 낯설은 이국 천리길을 찾아와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 구원의 방편을 내렸던 것이다.

 

스님은 은혜의 보답을 위해서 온갖 지혜와 정열을 다해 불법을 닦고 폈다.

절 이름을 보안의 아버지 유마운의 호를 따서 유마사(維摩寺)라 부르며, 그 딸 보안이 있던 방을 보안당(普安堂)이라했다.

 

보안이 놓았던 다리를 보안교(普安橋)라 하여 그 돌다리가 지금도 말없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이 달을 건지던 우물을 제월천(濟月泉)라 하고, 유마사 아랫마을을 유마리(維摩里)라고 지금도 불린다.

 

 

<모후산 (918.8m)>

모후산은 섬진7지맥의 한 봉우리로 백아산의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동복천을 앞에 두고 멈춰 선 곳이다.

이 지세는 자연스럽게 순천시, 곡성군과 화순군을 경계지으며 남북으로 뻗어있다.

 

주암댐의 담수와 더불어 삼면이 푸른 물줄기로 둘렀으며 멀리 무등산, 조계산, 백아산과 득량만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완만한 경사이나 코스에 따라서는 급경사지대도 있다.

 

고려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이 자비령을 넘어 쳐들어 오자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안동, 순천을 거쳐 이곳 산기슭까지 피난왔다고 하는데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모후산에 가궁을 짓고 환궁 할 때까지 해를 넘겨 1년여 남짓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산의 이름을 나복산에서 어머니의 품속같은 산이라 하여 모후산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또 모호산(母護山)이라 한 것은 정유재란시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한데서 연유하여 모호산이라 했다고 한다.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인 탓에 6.25 당시 빨치산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지금도 간간히 당시에 파 놓은 참호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산막골에는 광복전까지 15호 가량 거주하였으나 6.25난리통에 모두 소각당하고 폐촌되었다.

 

한편으로 빨치산의 본거지라 하여 유마사의 사찰건물은 모두 소각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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