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석각 자웅석(雌雄石)
경남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 278번지에 경남도 민속자료 12호 명석 즉 운돌(鳴石)이라 호명되는 자웅석이 있다.
명석(鳴石)은 쉬운 말로 해석하면 눈물을 흘리는 돌, 우는 돌이라는 뜻이다. 행정구역명인 진주시 명석면은 바로 돌에서 시작되었다.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로부터 여진족이 고려로 침입해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전국에서 경계태세를 갖추기에 바쁘고 조정에서는 각 지역에 성을 수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당시 흙을 쌓아 만든 진주성이 수차례 수해로 무너지고 왜구에 의해 파괴된 시대였기 때문에 조정에서 튼튼한 돌로 성을 쌓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진주 군주와 백성들도 스스로 진주성을 돌로 쌓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겼다.
진주와 서부경남 일원에서 백성들이 동원되어 돌을 운반하는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축성에 참여했던 한 스님이 축성 일을 마치고 명석면 광제산으로 가려고 동전 마을을 지나다가 산위에서 빠르게 굴러 오는 바위 2개와 서로 만나게 된다.
“어디 가는데?”라고 스님이 묻자 두 돌이 바쁘게 가다가 잠시 멈추고 대답한다. “우리는 진주성 쌓는데 한 몫하러 간다”
스님이 돌의 말에 감화, 감동을 받았으나 “진주성 쌓는 일은 끝났다”라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두 돌은 그만 그 자리에 바로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신기리에 신기한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무지한 돌까지 보국충절을 나타내니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진주시 명석면의 유래가 되는 운돌 즉 명석이라고 호칭할 이유가 서로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다.
한 쌍의 모습이 남녀의 상징처럼 생겨 암돌과 숫돌이라 부르기도 하기 때문에 자웅석이라고도 한다.
한 쌍의 운돌은 동전 마을 입구에서 서로 보고 있고 인근에는 남녀 한쌍의 돌이 아홉번 절을 했다는 뜻을 가진 구배곡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나라에서 큰일이 생기면 돌이 운다고 하며 돌의 우국충절의 뜻을 기리기에 합당한 항일투사 김용익 선생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